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성명서

또 한 명의 장애인의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도 억울한 장애인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연이은 비보에 깊은 애도와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다.

박근혜대통령의 거짓 공약으로 시작되었던 2013년은 중증장애인의 연이은 사망사건이라는 비극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던 박근혜대통령의 공약은 장애인을 우롱한 거짓말에 불과했고 장애등급심사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그로인해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들은 지금도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 12월 29일 오전, 대구시 달서구에서 장애등급3급 지체장애인 이모씨가 혼자 집안에서 휴대용 가스버너로 한약을 데우는 중 발생한 사고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사망한 이씨는 올해 56세로, 88세의 시각장애를 가진 노모와 단 둘이 살고 있었고, 기초생활수급을 받아 생활을 해왔다. 이웃의 증언에 의하면, 사망한 이씨는 2~3년 전에는 외출 등 사회활동이 가능했지만 장애가 심해진 최근에는 욕창이 생겨 주로 방에 누워서 생활하고, 혼자서 약을 복용해 왔다고 한다.

이토록 취약가정 중에서도 취약한 환경에 놓인 이씨 가족이었지만, 이땅의 장애인복지는 이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이씨의 삶을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정부는 그저 개인의 과실과 부주의라며, 이제는 이씨의 죽음까지 외면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란 말인가?

불과 며칠 전인 12월 17일, 경남 의령군의 한 무허가 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로 48세의 4급 지체장애인 강모씨가 사망했다. 화재의 원인은 전기장판 과열로 추정되었고, 강모씨는 기초생활 수급비로 혼자서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26년전 교통사고로 인해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었으며, 알콜성 치매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그 며칠 전인 12월 10일, 광주시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도 지체장애 1급 50세 박모씨가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박모씨 역시 기초생활수급자였고 86세 노모와 살고 있었다.

이들의 죽음뒤엔 정부의 방치와 무관심이 있었지만, 이들의 죽음 앞엔 아무것도 없었다.

맞춤형복지 떠들어대던 박근혜대통령의 사과도 없었고, 장애등급제와 행정편의적 제도로 장애인을 위기상태로 내몰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사과도 없었고, 일선에서 이들의 삶을 지원하고 위기를 예방했어야 할 지자체와 국민연금공단의 책임통감도 없었다.

사람이 연이어 죽었건만 누구하나 처벌을 받거나 잘못된 복지제도를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대구시의 이모씨는 장애등급 3급이다. 의령군의 강모씨는 장애등급 4급이다. 거동이 불편하고 위기상황에 처해있음에도 장애등급이 3급 혹은 4급이라는 이유로,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신청자격조차 없다.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던 박근혜대통령의 공약은 온데간데 없고, 지금도 장애인들은 장애등급심사의 공포에 떨고 있다. 등급심사 결과 등급이 하락이라도 하는 날엔 대구시의 이모씨처럼, 의령군의 강모씨처럼 그나마 알량한 복지제도의 혜택조차 끊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광주시의 박모씨는 1급장애인이었음에도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이용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86세 노모와 살고 있는 취약가정임에도 정작 당사자들은 이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잘 몰랐었고, 서비스 신청을 안했다는 이유로 또 방치되었던 것이다.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혈안이 되어서 하고 있는 장애등급재심사의 100분의 1만큼의 관심과 노력이 있었다면, 그들의 죽음은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광주시의 박모씨에게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를 했어야 했고, 대구시의 이모씨와 의령군의 강모씨에게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확대하거나 응급안전 대책이라도 마련을 하였어야 했다. 이것이 복지가 해야할 일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년전 서울에서 화재로 숨진 故김주영씨와 파주시에서 화재로 숨진 장애남매 지우와 지훈이의 희생으로 정부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일부 확대하고, 응급안전시스템을 시범적으로 도입하였다. 그러나, 24시간 장애인활동지원 제공을 약속했던 박근혜대통령의 공약은 또다시 파기되었고, 2014년에는 확대 계획조차 없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애초에 별도의 서비스판정기준이 있어서 장애등급제 기준은 전혀 불필요함에도 정부는 오직 장애등급제라는 악법을 유지하기 위해 장애인활동지원제도에도 3급이하는 서비스신청과 제공을 금지하고 있고, 이러한 박근혜정부의 고집으로 장애인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응급안전시스템을 도입하여 사고를 예방하겠다고 하며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 역시 장애등급으로 대상을 잘라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이모씨가 살았던 대구시 달서구가 바로 응급안전시스템 시범사업 지역이었고, 가정환경이 극도로 취약했던 이모씨도 장애등급을 이유로 서비스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것이다.

도대체 박근혜정부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연이은 장애인의 사망사건은 이 땅의 장애인복지제도의 사망선고에 다름아니다.

이들의 죽음 앞에 침묵하는 정부는 장애인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복지예산을 삭감하기 위해 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음을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지금이라도 당장 장애인들의 죽음 앞에 사죄하고 참회하라!

장애인들을 살해한 것은 장애등급제이다.

박근혜정부는 당장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위기환경에 놓인 장애인들에 대한 지원대책을 수립하라!

2013년 12월 31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투쟁 49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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