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작품 윤동주 또는 정용철, 작자미상으로 떠돌아
솟대문학 “장애인 작가들의 지적 재산권 보호할 수 있는 계기 되야”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어보겠지요

그러면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 사람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하겠습니다.

위의 시는 20년 전 뇌성마비 시인 김준엽이 쓴 작품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이다.

그런데 이 시가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윤동주 또는 정용철, 작자 미상 등의 이름으로 떠돌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억울한 사연은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에 의해 전해졌다.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시7편을 제출하기 위해 김준엽 시인이 가장 아끼는 작품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김준엽 시인의 활동보조인이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이 인터넷 상에서 좋은 글로 사랑받고 있는 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확인한 결과 타인의 이름으로 떠돌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

솟대문학이 이 사안을 조사한 결과 김준엽 시인이 20여년 전 하이텔 사이버문단을 통해 자신의 시들을 발표하며 문학활동을 했는데, 1995년 봄 서울에 있는 한 출판사에서 시집을 발간해주겠다고 시작품들을 받아간 뒤 문을 닫게 돼 시집이 출간되지도 못한채 작품을 돌라받지 못했음이 밝혀졌다.

솟대문학에 따르면 이후 월간 ‘좋은 생각’ 1995년 9월호에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제목으로 좋은생각의 발행인 정용철 시인의 작품으로 게재, ‘내 인생이 끝날 때’라는 제목으로 수정 발표되기도 했다.

김준엽 시인의 시 제목 황혼을 그대로 사용한 ‘내 인생에 황혼이 오면’이란 작품은 작자 미상으로 인터넷 상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시는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으로 윤동주 / 정용철로 작가가 표기되기도 하고 윤동주로 알려졌으나 작자미상으로 표기될 뿐 그 어디에도 김준엽 이란 작가의 이름은 없었다.

김준엽 시인은 중증뇌성마비로 손가락 하나조차도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펜을 입에 물고 시를 써서 2011년에는 첫 시집 ‘그늘 아래서’를 출간했고, 새해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있는 당당한 시인이다.

그리고 뇌성마비 종목인 보치아 국가대표선수로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출전을 앞두고 있다. 또한 대구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재학하며 시인과 운동선수, 사회복지전문가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밝혀진 어느 무명 시인의 억울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강탈당한 저작권을 되착기 위한 호소가 전해졌다.

방귀희 발행인은 “김준엽 시인의 작품이 윤동주의 작품으로 둔갑한 것은 그만큼 장애인 작품이 우수하다는 증거.”라며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김준엽 작품임을 밝혀 저작권을 뇌성마비 시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런 장애인 작품 도용 사례가 적지 않기에 장애인작품 보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방귀희 발행인은 이번 사건이 장애예술인들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방 발행인은 “단순히 문단에 등단하거나 상을 받고, 책에 게재된 작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작품을 도둑 맡은 꼴.”이라며 “이 사건은 그동안 장애예술인들의 활동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적 예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장애예술인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활동할 수 없었던 사회 환경도 문제.”라며 “이러한 억울한 사연이 밖으로 드러나면서 장애인들의 예술 활동의 권익이 지켜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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