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행위 차단 목적으로 보조기기 제한… ‘수능 편의제공 개선을 위한 시각장애학생 증언대회’

수학능력평가시험(이하 수능)에서 시각장애 수험생에게 정당한 편의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지난 22일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수능 편의제공 개선을 위한 시각장애학생 증언대회’를 열고, 시각장애인들의 경험을 토대로 편의제공 실태를 알아보고 대안 마련을 촉구하는 자리를 가졌다.

“1.7배 연장시간으로는 비장애인들과 정당한 경쟁에 한계 있다”

▲ 2013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응시자 박인범 씨
▲ 2014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응시자 박인범 씨
2014학년도 수능 응시자인 시각장애인 박인범 씨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시각장애학생들에게 수능시험에서 점자 시험지나 전맹인 경우 1.7배의 연장시간 등 편의제공을 해주고 있지만, 이러한 제도만 갖고서는 비장애인들과 정당하게 경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박 씨의 증언에 따르면 언어영역에서 지문에 쓰여 있는 여러 기호를 찾아 문제를 푸는 문제들의 경우 시각장애인은 기호가 나올 때까지 점자를 읽어야 하고, 미니카세트를 이용해 문제를 푼다해도 카세트 자체가 기호의 북마크와 같은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눈으로 기호를 찾아 바로 문제를 풀어가는 비장애인들과 정당한 경쟁이 아니라는 것.

박 씨는 “지문을 읽어내는 속도부터 비장애인과 점자를 읽는 시각장애인 사이에는 시간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점자에 익숙하지 못한 중도 시각장애인이 시험을 볼 경우는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더 크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녹음 테이프가 도입됐지만 문제에서 요구하는 지문이나 기호를 다시 찾는 시간 등을 합쳐보면 여전히 문제를 다 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수능시험에서 점자정보단말기 사용 허가해야… “부정행위 방지 충분히 가능해”

▲ 2013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응시자 한성현 씨
▲ 2014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응시자 한성현 씨
2014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응시자 한성현 씨는 수능시험에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 사용이 허가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씨는 “점자 판은 글씨를 쓰는 것과 달리 한 점 한 점을 눌러서 써야 하고, 점자로 필산을 할 경우 한 번 생각난 내용을 쓰고 그것을 읽기 위해서 점자지를 빼야 한다. 또 수정 할 때에도 한 부분을 고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써야 하는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수능시험장에서 한소네 사용이 가능했다면 문제를 푸는 속도와 답을 적거나 수정하는 데 불필요하게 소요되는 시간낭비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한소네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정보단말기로, 6점 점바를 이용한 물리적 키보드로 이뤄지고 기본적 문서작업은 물론 한글, 영어, 수학기호 등을 표기할 수 있다.

그러나 한소네는 무선인터넷과 라디오 등 기능을 담고 있어 부정행위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현재는 수능시험에서 사용이 불가하다.

이와 관련해 서울맹학교에 재학 중인 서인호 씨는 “한소네를 수험용으로 만 사용가능하도록 프로그램을 설치한다면 부정행위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미 국가공인 점역교정 자격증 시험 등에서는 수험용 한소네 프로그램을 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수험용 한소네는 국가공인 점역교정사 자격증 시험을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이 활용 중이다. 이 프로그램을 한소네에 설치하면 파일관리, 문서작업, 미디어를 제외한 모든 기능이 사라지며, 문서작업 또한 hwp, txt, doc 등 일반적인 파일은 보이지 않고 bri, brf와 같은 점자 문서만 사용 가능하게 된다.

▲ ⓒ힘스인터내셔널/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
▲ ⓒ힘스인터내셔널/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2005년부터 점역교정사 자격증 시험에서는 수험용 한소네 프로그램을 설치한 한소네로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보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점자정보단말기 수험용 버전의 사용, 파일 오류에 대한 문제를 위한 시험 전 각서 작성, 점자 정보단말기의 수험용버전 확인 등 부정행위에 대한 엄밀한 검사 등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는 시각장애인 시험 응시자 중 70%가 점자정보단말기를 사용하고 있다.

서 씨는 “한소네가 수능에 도입된다면 자유로운 문서작업이 가능하므로 지문에 밑줄을 긋는 등 점자처럼 일일이 빼거나 점자지를 교체하지 않아도 신속한 메모 기능이 가능하기 때문에 시험과 문제를 접하는 한계가 완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
공익인권변호사의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김재왕 변호사는 한소네 등 수능에서 시각장애인이 사용하게 되는 보조기기들을 부정행위 가능성을 이유로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명백한 장애인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에 따른 ‘정당한 편의제공’은 장애인의 장애유형·정도·성별·특성에 맞게 제공하되 원칙적으로 장애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때에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장애인복지법 역시 교육기관은 시각장애 학생의 학습을 위해 그 학생에게 점자정보단말기, 화면확대기, 컴퓨터 등의 보조기기를 제공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계 법령에 따라 교육기관에 점자정보단말기 등 보조기기를 시각장애학생에게 제공하고, 맹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한소네라고 불리는 점자정보단말기를 지원받아 사용 중.”이라며 “정당한 사유 없이 시각장애인이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또 “보조기기의 특성상 부정행위 등의 우려가 있다면 그 부정행위 가능성을 없애는 방안을 모색해야지, 그러한 노력을 보이지도 않고 보조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차별에 해당한다.”고 역설하며 한소네를 포함한 보조기기를 수능에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박홍근 의원
▲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박홍근 의원
한편, 이번 증언대회에 참여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이번 증언대회에 앞서 긴 지문을 읽는데 어려움을 겪고, 수학 방정식을 암산으로 풀어야 하며, 영어 독해 문제를 원어민의 음성만으로 풀어내야 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먹먹했다.”며 “시각장애인들이 어렵게 준비한 수능시험에서 문제를 푸는데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지 못해 손 놓고 있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물론 그동안 점자문제지·녹음테이프 제공, 1.7배 시험 시간 연장 등이 제공되고 있지만 이거 가지곤 불충분하다.”며 “수능시험에 보조기기를 허용하는 등 공평한 기회 속에서 공정한 시험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장치와 제도가 마련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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