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도 없이 복지부에서만 논의하는 ‘대안’은 “의미 없다”
복지부 “장애등급제 폐지 대안의 입장정리 시간 필요”

▲ 2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장애등급제 폐지 대안, 장애인종합판정체계 개편 방향을 묻는다’는 주제로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
▲ 2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장애등급제 폐지 대안, 장애인종합판정체계 개편 방향을 묻는다’는 주제로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
장애인의 삶과 지원을 의학적인 획일적 기준으로 제한한다는 문제 속에서 시작된 장애등급제 폐지 논의.

장애등급제는 장애계 등의 긴 시간 노력 끝에 폐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며 정부는 2016년까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종합판정체계로 개편하겠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하지만 정부가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장애계와의 논의가 원활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2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 김정록·최동익·김용익·박원석·김미희 의원이 공동주최한 가운데 ‘장애등급제 폐지 대안, 장애인종합판정체계 개편 방향을 묻는다’는 주제로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는 범정부차원의 대안 논의기구 구성과 더불어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소득보장과 서비스 지원, 고용정책, 감면할인 등 체계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예산도 없이 복지부에서만 논의하는 ‘대안’은 “의미 없다”

장애등급제 폐지 논의는 2010년 10여개 장애계단체가 장애등급제 폐지와 관련한 공동대책위를 구성하면서 시작됐다.

같은 해 11월 보건복지부는 제1차 기획단인 ‘장애인서비스 지원체계 개편 기획단’을 구성했지만 장애등급제의 문제를 공론화 했다는 의미만을 남긴 채 이듬해 8월 5차 회의를 끝으로 중단됐다. 이후 대선을 통해 장애등급제 폐지가 공약으로 포함되면서 지난해 4월 박근혜정부가 제2차 기획단으로 ‘장애판정체계기획단’을 구성(지난해 12월 해산), 지난 4월에는 제3차 기획단 ‘장애종합판정체계개편 추진단’이 구성됐다.

세 번의 기획단이 구성되는 동안 특별할 만한 내용이라고는 정부가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시기를 2016년으로 발표했다는 것 뿐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는 평가다. 단 예산 계획이 없는 ‘공허한’ 복지부의 계획과 장애계와의 소통 부재만이 문제점으로 남겨졌다.

장애계에서는 이러한 기획단 구성을 ‘용두사미’, ‘아님 말고’, ‘독재정치’ 등으로 표현할 만큼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장애등급제라는 이름은 폐기가 기정사실화 됐지만 대선공약으로 약속됐다는 점과 장애등급제 폐지 계획이 발표만 됐을 뿐 방향과 원칙조차 선명하지 않다.”며 “오히려 최근 상황을 보면 정부가 의지가 있는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과거 두 번의 기획단에 이어 올해 구성된 장애종합판정체계개편 추진단 논의도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은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장애계는 물론 학계간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정부의 논의 과정을 질타하고 나섰다.

이에 장애계에서는 범정부 차원으로 장애계와 소통하는 추진단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추진단이 장애계의 참여가 적고 의사소통의 민주주의가 결여된 것은 오히려 표면적 문제로, 더욱 결정적 문제는 예산 계획과 타 부처와의 연계가 없다는 것.”이라며 “예산계획이 없다는 것은 결국 이름만 바꾸거나 측정도구만 바꾸겠다는 것으로, 타 부처 연계가 없다면 변화는 최소화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특히 예산계획이 수반되지 않는 현재 논의 과정도 장애등급제 폐지를 이끌어낸 의미에는 심각하게 제한적이 될 수 있다.

이에 박 상임공동대표는 “장애계가 장애등급제의 폐지를 외치는 가장 큰 이유는 장애등급제가 장애인의 권리를 은폐하고 예산에 맞춰 서비스를 제한하는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이후 소득보장과 고용지원, 감면할인과 서비스 전달체계 등을 어떻게 구성할 지에 대한 논의가 동반돼야 하지만 예산 계획도 없이 보건복지부 만의 추진단 구성은 무의미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혀 범정부차원의 논의 기구의 시급함을 시사했다.

장애등급제 폐지 ‘목표’와 ‘방향’ 정확해야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이후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장애인에게 지원되던 소득보장과 고용지원, 감면할인 등의 범위와 전달체계다.

이에 대해 성신여자대학교 이승기 교수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동등한 삶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목표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기본적 주장에 주목했다.

▲ 성신여자대학교 이승기 교수
▲ 성신여자대학교 이승기 교수
이 교수는 “실제 장애인실태조사를 보면 평균적으로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50% 수준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러한 차이는 사회구조와 인식 등 장애인의 노력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계에 대한 고민을 시사했다.

이날 이 교수는 의학적 기준과 소득보장 체계, 감면할인제도, 전달체계를 포함한 서비스 지원 부분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논의의 주요 쟁점을 분석했다.

가장 먼저 현행 장애등급제에서 가장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의학적 기준에 대해서는 “의학적 기준은 장애정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지만 어디에 어느 정도 사용하느냐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의학적 기준은 장애상태를 평가하는 사항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교수는 소득보장 체계에 대해 “장애로 인한 근로능력 상실분과 추가비용 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의 최저생계비 보장이 장애특성을 반영해 비장애인과 동등한 정도의 수준으로 장애인의 최저생계비가 보장돼야 한다.”며 “최저생계비로 해결되지 않는 이동·의료·안전·의사소통 등 내용은 장애인연금이나 장애수당 등 형태로 편성돼 정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면할인제도의 경우는 “기본적인 소득보장이 충분히 된다면 축소도 관계없을 수 있지만 전체적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고 전략적이고 단계적 접근으로 장애계와의 합의를 이루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교수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부분은 서비스 지원과 전달체계다.

현재 서비스지원을 위한 종합판정도구가 논의되고는 있지만,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변화될 부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이 교수는 “장애인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욕구가 있는지를 충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인력, 예산과 체계가 필요하다.”며 “목표와 방향이 정확하지 않은 장애등급제 폐지 논의는 자칫 이름만 없어진 장애등급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혀 정부의 적극적 의지와 장애계의 권리적 차원의 요구를 당부했다.

▲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이영재 서기관
▲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이영재 서기관
복지부 “장애등급제 폐지 대안의 입장정리 시간 필요”

한편 이 자리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구체적 답변보다는 내부적 논의가 마무리 되지 못했다는 말만을 남겼다.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이영재 서기관은 “종합판정체계 개편과 관련한 논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다는 장애계의 지적을 알고 있다.”며 “장애등급제 폐지와 대안 마련이 보건복지부 만의 노력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당연히 부처 등과의 협의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만 장애등급제 폐지라는 큰 틀의 합의는 있지만 개편 이후에 대해 복지부가 어떠한 입장으로 설계를 갖고 장애계단체와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내부적으로 입장정리가 필요해 시간이 걸린다.”며 “(장애계와) 속도를 맞춰 공론의 장을 넓혀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2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장애등급제 폐지 대안, 장애인종합판정체계 개편 방향을 묻는다’는 주제로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
▲ 2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장애등급제 폐지 대안, 장애인종합판정체계 개편 방향을 묻는다’는 주제로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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