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진행된 장애판정체계 개편 연구결과 간담회에는 연구진과 장애계의 대립 끝에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나 비판이 불가피해졌다.

이날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 52개 장애계 단체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장애등급제 폐지 뒤 이를 대신할 장애판정체계에 대한 개편 연구결과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이 주최로 연구 중인 장애종합판정도구 발표와, 장애의 의학적평가에 대한 설명이 준비됐으나, 의학적평가 발표를 하기로 예정돼 있던 교수진들이 참석하지 않아 장애종합판정도구 설명만 이뤄졌다.

연구진, “개인별 맞춤형 장애판정도구로 장애등급제 폐지할 것”

▲ 한신대학교 재활학과 변경희 교수.
▲ 한신대학교 재활학과 변경희 교수.
이날 한신대학교 재활학과 변경희 교수가 발표한 장애종합판정체계 개편 방안에 따르면 장애종합판정에 장애인 개인의 경제적 상황을 포함한 사회·환경적 요인 및 욕구 등을 반영해, 기초근로능력 등을 포괄적으로 사정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 지원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연구진이 발표한 장애종합판정체계에 의한 서비스 연계의 경우, 단순서비스를 지원할 때는 복지욕구와 사회 환경을 종합해 인지하고 있는 희망서비스의 경우 서비스로 인계한다. 인지하고 있지 않은 서비스를 희망하는 경우에는 정보제공과 함께 서비스로 연계한다.

또한, 활동지원서비스 등 통합적 서비스 지원을 희망하는 경우에는 복지욕구, 사회환경과 함께 통합적 지원을 위한 ‘장애인서비스 지원조사표’를 통한 평가를 종합해 정보 제공 및 서비스를 연계한다.

장애인서비스 지원조사표는, 장애상태로 인한 기능제한 평가와, 장애인들의 개별성을 감안해 실무자들의 전문성과 재량권을 최대 인정하기 위해 각 평가항목에 특이사항을 기재할 수 있도록 설계함을 원칙으로 만들어졌다.

장애인서비스 지원조사표의 구성은 ▲영역1(기본 정보) ▲영역2(복지 욕구) ▲영역 3(서비스필요도 62개항목) ▲영역4(개인별 서비스 제공계획)으로 이뤄졌다. 영역 3은 △3-1 일상생활 평가(26개), △3-2 장애 특성(19개) △3-3재활 평가(17)개로 세부적으로 구성돼 있다.

또한 장애인서비스 지원조사표의 기본정보에는 장애유무, 장애유형, 발견시기, 신체상태, 건강상태, 보장구 등으로 구성됐다. 사회환경에서는 가구특성, 주거상황, 차량 소유 등 사회활동, 등교활동 유무 등의 교육활동, 근로취업, 건강상태, 경제상황 등 7가지를 기재하도록 돼 있다.

아울러 복지욕구는 ▲소득 ▲의료 ▲주거 ▲교육 ▲직업 및 고용 ▲차량 및 이동 ▲일상생활 ▲할인 및 감면 ▲각종세금 공제 ▲문화여가 ▲기타 등 11가지 구성으로 서비스 희망 여부를 묻고 있다.

서비스 필요도는 이동이나 동작의 어려움 등 기초평가와 함께 옷 음식물 넘기기, 잠자리에서 자세 바꾸기 등으로 지원 불필요, 방법 등 지원 필요, 부분적 지원 필요, 전적 지원 필요 등 4가지 부분 중에서 기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변 교수는 “장애유형에서 풀어내기 어려운 항목들이 많아 69개의 항목에 모든 장애 특성을 넣는 것이 어려웠다.”며 “오늘 간담회를 통해 자신에게 의견을 제시해주면 그것을 적극 반영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애계, “이번 간담회의 의미 모르겠다”

장애종합판정도구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등 일부 장애계 측에서 “이미 정해진 종합판정도구를 갖고 ‘공언’하는 수준의 간담회.”라며 질타하고 나섰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오늘 발표한 변 교수는 이미 공언된 판정도구에 장애계단체를 줄 세우게 하는 느낌이 강했다.”며 “우리 논의가 판정도구와 관련 지어진 부분이 장애등급제 폐지와 관련돼 있지 않았다는 것도 큰 문제고, 욕구 해소 위주의 판정도구로는 장애등급 폐지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장연 남병준 정책실장은 “지금 우리는 등록제를 포함한 전체 장애유형에 대한 이야기, 판정, 체계 등이 우선적으로 논의돼야 하고 여덟 번 째로 논의될 만한 것이 판정도구.”라며 “왜 지금 이처럼 중요한 간담회에서, 나중에 논의돼야 마땅할 판정도구가 우선적으로 발표되고 있느냐. 심기가 굉장히 불편하다.”고 질타했다.

이 같은 지적들에 대해 변경희 교수는 “장애등록이 아닌 장애유무만 있다. 유무까지 안보는 나라는 없지 않으냐. 장애에 영역이 넓고 좁음은 있지만 유무를 안 보는 나라는 없다.”며 “오늘 어떠한 질타도 감수하며 이 자리에 나왔지만, 아무런 의미 없는 비판은 자제해야 되지 않나. 이런 불만들이 많으면 정부 측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하지 않는 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발표 뒤 이어진 질의는 몇 명의 장애계 단체장의 질문을 제외하고는 전장연과 연구진간의 말싸움이 주가 돼 제대로된 질의 및 응답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참가자는 “오늘 간담회는 연구진이 발표한 방안에 대해 다 같이 논의하고 고민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왜 일부 장애계의 의견을 모두의 의견인 것처럼 왜곡해 우리를 배제하느냐.”며 강한 불쾌감을 표현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만약 우리의 의견 제시가 장애계를 배제했다고 생각했다면 굉장히 유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간담회의 시작 자체에서 본래 목적과 어긋났기에 이러한 의견을 제시한 것 뿐.”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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