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약 이행 첫 심사 결과에 대한 분석과 이행 강화 위해 전문가들 모여

장애등급제 개선과 UN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등 한국이 안고 있는 숙제들이 UN장애인권리위원회 심의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지난달 3일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에 대한 첫 심사를 받은 한국,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는 7일 오후 프레지던트호텔에서 ‘UN장애인권리협약 이행 강화를 위한 토론회’를 열고 각계의 의견을 모으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심사를 통해 한국 사회 속 장애인 권리의 문제들을 세계적 흐름 속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그 변화가 필요함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더불어 장애인권리협약 정신에 입각한 사회 변화와 이에 따른 법과 제도 개선, 이 모든 과정을 관리·감독 할 수 있는 체계 마련 등이 촉구됐다.

장애등급판정제도 개선과 차별적 조항 담은 법률 개정 등 ‘산적한 숙제’

한국이 UN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하고 처음으로 받은 심사의 결과가 지난달 3일, UN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견해를 통해 발표됐다.

2008년 12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하고 이듬해 1월 협약이 발효된 한국은, 정부가 첫 번째 심사보고서를 제출하고 민간에서도 함께 보고서를 제출해 지난 9월 말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심사를 받은바 있다.

한국이 심사를 통해 받은 최종견해는 3개 부문에서 66개 항이 포함, 우려 및 권고사항에 대한 다수의 의견이 서술됐다.

최종 견해에 제시된 주요 권고사항은 ▲현행 장애등급판정제도를 검토해 장애인들의 특성·상황·욕구에 부합하도록 수정할 것 ▲활동지원서비스를 확대 적용할 것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장애여성에 관한 성폭력 및 가정폭력 예방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성인지적 관점을 도입할 것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제고를 위한 캠페인 강화 ▲모든 유형의 대중교통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현행 대중교통 정책 점검 ▲장애인이 겪는 모든 폭력·착취·학대 조사와 가해자 처벌, 피해 장애인에 대한 배상과 접근 가능한 쉼터 제공 ▲모든 공공시설 및 작업장에 접근성 기준을 적용 ▲조력의사결정으로 방침을 바꿔 피후견인의 자율성 선호도를 존중할 것 ▲장애를 이유로 자유의 박탈을 허용하는 기존 법률 조항 폐지 ▲장애당사자의 소득수준에 따라서 활동보조서비스 이용금액을 산정할 것 ▲대한민국이 수화를 공식어로, 점자를 공식문자로 지정하는 법안을 채택 할 것 ▲보험가입을 제한하는 상법 732조 삭제와 생명 보험과 관련한 장애인권리협약 25조 (마)항의 유보 철회 ▲최저임금의 혜택 대상에서 배제된 장애인들에게 보상을 할 수 있도록 보조임금 제도를 도입 등이다.

 “사회의 변화를 위한 국민 모두의 관심 필요”… 종합적인 중장기 계획이 수립도 제안돼

최종견해에는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장애인 권리 이행을 위해 풀어야 할 수 많은 과제들이 지적됐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회의 반응과 관심을 어떻게 끌어내고 변화 시켜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 UN장애인권리위원회 김형식 위원
▲ UN장애인권리위원회 김형식 위원
장애인권리위원회 김형식 위원는 한국 보다 먼저 국가 보고서를 심사 받았던 외국 사례를 전하며 최종견해를 사회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간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에 따르면 멕시코의 경우는 장애를 의료적 모델로 바라보던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장애인을 ‘불쌍한’ 이미지로 방송에 비추며 모금을 하던 한 재단에 대한 개선 권고가 최종견해에 포함됐기 때문. 해당 재단은 개선권고를 받아든 초반에는 불편한 태도를 보였지만, 결국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변화의 논의를 멕시코 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에 퍼져있는 재단 전체와 함께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는 송부 받은 최종견해를 온 사회가 공유하며 진지한 공공 토론에 부쳐졌다. 지탄받아야 할 것은 받아들이고 장애인 권리를 위해 힘을 얻어야 할 부분을 공론화 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는 것.

김 위원은 “한국에서는 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해 누가 관심을 갖고 어떤 경로로 변화를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촉구 활동이 필요하다.”며 “장애인과 관련 기관, 장애계 언론들만 관심을 갖는 ‘우리들만의 이야기’로 끝내서는 절대 안된다.”고 당부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150여 국으로, 충분히 그 의미를 찾아 이행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 반면 고속도로를 달리듯 경쟁적으로 비준했던 나라도 있다.”며 “멕시코와 오스트리아 등 나라가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견해를 바탕으로 장애인 권리를 사회에 알려가는 기회를 만들어 낸 것처럼, 한국 역시 모든 국민이 장애인 권리에 대한 ‘성적표’를 함께 받아들고 변화를 고민할 수 있도록 관심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국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권리 의식에 대한 UN의 권고에 대해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이석구 소장은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제시했다.

▲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이석구 소장
▲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이석구 소장
이 소장은 “한국 정부의 국가보고서 심의는 우리가 장애인과 관련한 사회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고, 어떠한 원칙을 갖고 풀어나가야 하는가를 재확인 해 줬다.”며 “장애인권리협약의 이행을 위해서는 국내법과 제도 및 정책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하고, 이를 토대로 종합적인 중장기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 소장이 가장 중요하게 제안한 것은 전략적 접근과 이행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다.

최종견해에 담긴 권고 하나하나는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점이 아닌 만큼, 연구와 토론으로 합의를 이끌어내고 법과 제도 및 정책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중장기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 여기에는 반드시 논의기구가 필요한데,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와 유형·정도·성별 대표성과 균형, 논의기구의 상설화가 중요하다. 더불어 구체적 기능과 역할, 예산 등을 담보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도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이 소장의 제언이다.

더불어 이 소장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리·감독 체계 구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 역시 장애인당사자의 실질적 참여를 전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