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도입해 장애인 주도 복지 정책 만들자…예산 변화 없는 상황에서 달라지지 않을 것

▲ 지난달 30일 이룸센터 교육실 1에서 열린 장애인 복지서비스 현금지급방식 도입 가능한가에 참여한 토론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이솔잎 기자
▲ 지난달 30일 이룸센터 교육실 1에서 열린 장애인 복지서비스 현금지급방식 도입 가능한가에 참여한 토론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이솔잎 기자
장애인복지서비스에 대한 급여방식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제도가 한국 도입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한국장총)과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은 지난달 30일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복지서비스의 현금지급제도의 도입 필요성과 문제점 등을 공유하고 현금지급제도에 대한 장애계 및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현재 한국 장애계는 지난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장애인활동보조제도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이용권제도 등이 도입되면서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장애 당사자의 실질적인 선택권 등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장애관련정책은 대부분 장애를 의료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서 일방통행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삶의 주체성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날 일부 토론자들은 ‘현금지급제도를 도입, 장애인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자기결정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장애인복지 정책을 만들자’는 입장을 제시됐다.

그러나 ‘한국의 복지예산의 총량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서비스 급여 방식만 현금으로 바뀐다면 오히려 장애인 당사자의 사회적 생존 욕구를 예산에 끼워 맞추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상반된 반대 의견이 나오면서 현금지급제도에 대한 문제점이 대두됐다.

장애인복지서비스 현금지급방식 도입, 장애계 노력·비용절감 연구 등 필요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용득 교수는 한국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강화하기 위해 현금지급방식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용득 교수. ⓒ이솔잎 기자
▲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용득 교수. ⓒ이솔잎 기자
이는 장애인의 선택과 통제권 자기결정권을 증가시키고 시민으로서의 동등한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라는 것.

현금지급방식이란 직접서비스(현물서비스)에 상응하는 현금을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제도로 지난 1996년 영국 의회가 지역사회돌봄(직접지불)법을 제정하고 1995년 4월 시행에 들어가면서 이 제도가 정착됐다.

이 제도는 자산조사와 개인적 필요에 기초해 서비스 적격 판정을 받은 성인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의 계좌에 현금을 입금해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구매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공공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는 사용할 수 없다.

이에 지난 2003년 영국의 민간단체 인컨트롤은 장애인의 삶에 대한 자기주도지원모형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으로 개인예산제도를 개발했다.

이 제도의 경우 서비스 적격 판정을 받은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문제와 필요를 스스로 정의·평가해 자신에게 주어질 현금을 어떻게 사용할지 계획서를 지방의회에 제출하면 지방의회는 평가를 통해 최종적인 급여 수준을 결정해 개인 또는 위탁기관에 현금으로 지급한다. 장애인은 공공·민간 모든 서비스 영역에서 사회적 활동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이같은 제도 개발을 통해 영국은 ‘진짜 장애인을 선별해 무엇인가를 주는 정책’에서 ‘장애인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자기결정에 따라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것’, 즉 복지급부에 대한 내용은 바꾸지 않으면서 급부를 전달하는 방식을 바꾸면서 장애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권리를 증진하게 됐다.

이에 김 교수는 영국의 사례를 통해 추동요인 네가지 ▲자립생활기금 활용의 경험 ▲장애인 당사자들의 노력 ▲장애운동의 노력 ▲비용절감에 대한 연구 등을 설명하며 한국이 앞으로 현금지급방식 도입이 가능한지에 대해 설명했다.

김 교수는 “영국의 경우 장애인들의 노력과 장애운동이 제도 도입에 큰 역할을 했다.”며 “한국 또한 현금지급방식을 주도할 수 있는 장애인 중심 조직의 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경우 현금지급방식이 자리잡기 이전에도 자립생활기금, 제3자를 통한 간접지불방식을 활용해 현금지급에 대한 경험이 있어 현급지급방식의 유용성을 장애인들이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급지급방식 도입 당시 장애계 단체들이 주도가 돼 정책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장애분야에서 서비스에 대한 현금지급 경험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현금지급방식 도입을 위한 장애계 단체들의 움직임은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것.

김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장애 관련 제도와 장애인 관련 법률 대부분이 장애인들의 노력에 의해 발전돼 왔다.”며 “따라서 현금지급방식 도입을 위한 장애계의 합의가 이뤄지면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그는 지난 2007년부터 시작된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등 바우처 사업을 통해 현금지급방식 도입된다면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바우처 사업의 경우 이용자에게 재원을 지원하고 이용자가 기관을 선택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전환하는 방식으로 기존 사회복지 서비스보다는 장애인의 선택권이 신장됐으며 이에 대한 장점을 장애인들이 점점 더 인식하는 추세이다.

더불어 한국정부도 현금과 비슷한 바우처를 이미 운영해 보았기 때문에 현금을 지급한다 해도 행정관리능력이 충분히 있을 것이라는 것. 이와 관련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요양보호사 활동이 어려운 시골 지역의 경우 특별현금급여의 형태로 가족요양비를 지급하는 등의 현금지급 뒤 정산하는 행정체계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

김 교수는 “만약 현금지급제도가 한국에 도입된다고 한다면 정부는 예산 증가를 가장 우려할 것.”이라며 “따라서 바우처 사업에 제도를 도입 시킨 뒤 시범사업 등을 통해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비용-효과 분석 및 기존제도와의 재정투입 비교연구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일선 공무원의 이해부족과 전문성의 갈등 ▲재정의 부족 ▲활동지원 직원 인력의 고용 등과 관련 지원 서비스 부족 ▲가족 고용의 문제 ▲제공기관의 치열한 경쟁 등을 현금지급제도의 쟁점으로 제기했다.

그는 “영국의 경우 지방정부 사회서비스국으로 서비스 진입창구가 단일화됨에 따라 보편적이고 공평한 서비스 접근성이 보장될 수 있었다.”며 “현금지급제도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서비스별 진입창구를 시·군·구로 단일화하는 방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승기 교수는 현재 서비스 비용을 현금화하는 것과 관련, 한국에서 가장 근접한 형태로 시행되고 있는 바우처 사업에 현금지급제도를 도입해 서비스비용을 현금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김 교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 교수는 “제한된 영역이라 할지라도 실행이 가능한 사업에 현금지급제도를 도입해 확장을 도모하고 정부의 개입과 조정이 강화되는 형태로 전체적인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체계를 바꿔 나가는 작업을 병행해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이 상황에서 예산을 늘리고 줄이는 것은 국가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현금지급제도를 운영해 나갈 것인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현금지급제도의 경우 개인적 상황에 맞춰 이뤄지는 방식이므로 도입을 시킨 뒤 현금지급 이후 현금사용 등에 대한 모니터링과 서비스 평가 등을 통해 장애인의 삶에 기여하는 제도로 향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산 총량에 변화 없이 서비스 급여 방식만 바뀐다면 ‘오판’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이솔잎 기자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이솔잎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현재 복지예산의 총량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서비스 급여 방식만 현금으로 바뀐다면 장애인 당사자의 사회적 생존 욕구를 예산에 끼워 맞추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김 교수가 제시한 영국 사례에 대해 “지난 2012년 영국 노동연금부는 이미 현금지급방식과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자립생활기금의 신규 수급자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올해부터는 기금 자체를 폐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결국 현금지급방식이 제도 형식상 아무리 좋아도 긴축 기조를 가진 정부의 정책 방향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영국의 사례를 빗대어 볼때 OECD 국가 중 복지예산 비중이 최하위 수준인 한국에서 현금지급방식 도입 주장은 오히려 열악한 장애급여 소득보장과 서비스 영역 두 제도 사이에서 근본 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임시방편만 내놓는 모습이라는 것.

아울러 박 상임대표는 서비스 제공자로 가족으로 고용하는 문제가 현금지급제도에서 중요한 논의지점이라고 강조했다. 가족에 의한 서비스가 허용이 될 경우 기존에 가족에게 전가했던 돌봄의 책임을 사회화한다는 의미로 해설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상임대표는 “이는 서비스 인력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가족에 의한 서비스를 허용한다면 서비스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며 자립생활운동의 근본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며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도 해결이 안돼는 상황에서 현금지급방식 도입 가능성을 논의해야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비마이어 김도현 발행인은 박 상임대표의 의견에 동의하며 “어떠한 지원 체계를 논의하기 이전에 예산의 확보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토론과 논쟁도 결국 탁상공론에 불과 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이준미 사무관은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사업을 통해 개인별 서비스 제공 등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금지급방식 도입이 필요한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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