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광화문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노제’ 열려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의 부모는 내 아이가 행복한 세상에서 살기를 희망합니다. 내가 죽어서도 사회에서 보호 받고 안전하게 말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천륜을 끊어내는 것이 현 정부의 복지정책입니다. 내 아이를 시설에 맡기려면 친권을 포기해야 하고요. 내가 죽어도 내 아이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부양의무 기준에 속해 있으면 사회에서 보호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게 현 정부의 정책이고 현실입니다. 20년 뒤에는 제 영정사진이 이 곳에 놓여 있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싸울겁니다. 내 아이에게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말입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말입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재형 부회장 발언 중-

부양의무 기준으로 스스로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굿이 광화문 일대를 울렸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부양의무 기준이 존재하고 있다. 부양의무자 범위는 ‘본인의 배우자와 1촌내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다.

또한 연락이 닿지 않는 부모, 자식, 사위, 며느리에게까지 부양의무를 지우고 있다. 부양의무자에게 소득이나 재산이 있으면 부양의무가 있는 것으로 간주, 기초생활수급권이 필요한 대상자가 성인이 돼서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는 현실이다.

결국 빈곤은 대물림되고 가난의 책임은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된다.

▲ 7일,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노제에 참석한 참석자가 국화꽃을 놓고 있다. ⓒ이솔잎 기자
▲ 7일, 부양의무 기준 폐지를 위한 노제에 참석한 참석자가 헌화하고 있다. ⓒ이솔잎 기자
이러한 문제는 지난해 2월, 서울 송파구에서 살고 있는 세 모녀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현행 기초생활보장법과 부양의무 기준의 문제점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개정기초생활보장법에서 부양의무 기준의 소득기준을 완화하고 12만 명의 신규 수급자를 발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 부양의무 기준으로 수급을 받지 못하는 인구 117만 명의 1/10수준에 불과하며, 3년간 줄어든 수급자 20만 명보자 적은 숫자에 불과하다.

특히 장애계단체와 기초법개악저지빈곤문제해결을위한민생보위(이하 민생보위)가 폐지를 주장했던 부양의무자 기준, 근로능력 평가 등은 그대로 남아 있어 개정기초생활보장법 또한 사각지대의 해소 효과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장애계단체 등은 7일 광화문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노제’를 진행했다.

이들은 부양의무 기준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죽음의 이유인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촉구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바랐습니다

이날 추모발언자로 나선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양영희 회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현 정부의 복지정책을 비판했다.

▲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양영희 회장 ⓒ이솔잎 기자
▲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양영희 회장 ⓒ이솔잎 기자
양 회장은 “우리 어머니는 현재 78세다. 언제나 강해보였던 어머니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보살펴 주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힘겨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 이제는 내가 어머니의 보호자가 돼드려야 하는구나’라고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오히려 노모인 우리 어머니가 아직까지도 나를 돌봐줘야 하는 상황이지 않은가?”라며 개탄했다.

그는 “왜 사회는 나를 부모에게 못할 짓을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인가? 왜 부모가 천륜을 끊을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자립에 대해 처음 배울 때 ‘장애는 개인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이다. 따라서 사회가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현 정부는 장애를 사회문제로 보지않고 개인문제, 가족의 문제로만 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어 “광화문 농성장에 11개의 영정사진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오늘 이름모를 이들의 영정사진이 놓여질 것이다. 돌아가신 넋에게 묻고 싶어졌다. 우리가 당신들의 안녕과 평안을 바라야 하는 건지, 아닌지 말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사회에 분노하고 항의해서 이들과 같은 죽음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현 부양의무 기준을 통해 정부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 사무국장은 “가난한 이들은 죽음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외치고 있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현 정부는 개정기초생활보장법을 통해 부양의무 기준을 완화했다고 하지만 소득기준만 완화됐을 뿐 부양의무자 기준, 근로능력 평가 등은 그대로 남아있다. 즉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정부는 부양의무 기준 폐지에 대해 예산이 없어서, 혹은 효를 실천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도덕적이기 때문에 등의 이유를 붙이지만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은 보장한 뒤에 효와 도덕성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가족이 서로의 안녕을 바라고 도움을 주는 관계이기는 하지만 나로 인해 혹은 내 가족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죽임을 당하고 사회에서 정하는 최소한의 삶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가족이라는 의미는 모두 쓸모없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 7일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노제에서 진혼굿을 펼치고 있는 이삼헌 씨. ⓒ이솔잎 기자
▲ 7일 부양의무 기준 폐지를 위한 노제에서 진혼굿을 펼치고 있는 이삼헌 씨. ⓒ이솔잎 기자
이와 더불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사회가 죽인 이들의 죽음에 대해 정부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사람이 죽으면 불쌍하구나 생각하고 한번 울고 말 한 마디 건넬 뿐 그들이 무엇 때문에 스스로 삶을 놓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러면 부양의무 기준이라는 칼날은 다시 우리를 겨누고 또 다른 죽음을 양산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 죽음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또 죽음이 일어나 다시 이 자리에서 노제를 지내는 모습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부양의무 기준 폐지를 위해 우리는 끝까지 싸우자.”며 노제를 마쳤다.

아울러 노제가 끝난 뒤 단체들은 광화문 해치마당까지 행진이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부양의무 기준 폐지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추진연대 박김영희 상임대표는 “부양의무 기준은 장애가 있는 가족에 대한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 시키는 것.”이라며 “이로 인해 가족이 수급권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극이 발생한다.”고 다시 한번 꼬집었다.

이어 “이렇게 부모와 자녀의 천륜을 끊게 만드는 것이 부양의무 기준.”이라며 “우리는 부양의무 기준 폐지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노제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영정사진들은 광화문 역사에 위치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지하 농성장에 놓였다.

▲ 7일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노제가 끝난 뒤 광화문 해치마당으로 행진을 하고 있다. ⓒ이솔잎 기자
▲ 7일 부양의무 기준 폐지를 위한 노제가 끝난 뒤 광화문 해치마당으로 행진을 하고 있다. ⓒ이솔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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