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지원서비스 등급하락으로 어려움 겪고 있는 김은성 씨

▲ 김은성 씨.
▲ 김은성 씨.

활동지원서비스 수급자격 갱신조사로 인해 등급이 하락된 김은성(44)씨. 김 씨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실은 4차선 교차로를 지나 오르막길에 위치한 건물 4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자 김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인터뷰를 위해 회의실 안으로 안내하는 김 씨의 발걸음은 꽤나 조심스러웠다. 김 씨의 자리에서 회의실까지는 단 몇 걸음. 하지만 김 씨에게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 한 발 한 발 내딛어야 하는 거리다.

20살 후반에 시각장애 판정을 받은 김 씨는 빛 조차 가늠할 수 없는 전맹이다. 익숙한 생활공간도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우며 일상을 보내야 하는 김 씨에게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은 공포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활동지원 1급→ 2급 나형으로 하락… 직장 퇴사까지 고민

그런 김 씨에게 ‘큰 일’이 생겼다. 지난 5월 장애인활동지원법 시행에 따라 진행된 활동지원서비스 수급자격 갱신조사로 등급 1급에서 2급 나형으로 하락돼 활동지원 시간이 약 80여 시간 깎이게 된 것.

이로 인해 김 씨의 일상생활도 무너지게 됐다. 오전에는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가로, 오후에는 기업에서 헬스키퍼로 일하는 김 씨에게 등급하락으로 인한 시간 축소는 직장 퇴사까지도 고민하게 한다.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부담을 주기 싫어서 지난해 독립을 결정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활동지원서비스로 인해 사회생활이 가능할 수 있게 됐고 이로 인해 김 씨는 삶에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김 씨에게는 ‘사치’가 될 상황.

그래서 김 씨는 조금 위험한 방법을 선택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가사지원 등에는 활동지원 시간을 사용하지 않는다.

가끔 동생이 와서 해주는 음식들과 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청소도 김 씨가 직접 한다. 그러다 보니 이곳저곳에 멍이 한가득. 턱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장애물을 감지하지 못해 머리를 부딪히기도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지난해 동생네에서 독립하면서 독거가구로 인정돼 198시간을 받게 됐어요. 그때도 활동량이 많아서 다 사용할 때가 대다수였지만 그래도 2~3달에 한 번 꼴로는 약 10시간 정도를 다음 달로 이월해 사용할 수 있었죠. 그런데 이제는 그러지도 못해요. 그나마 직장인들에게는 40시간을 더 지원해준다고 해도 154시간인데 이 정도 시간이면 한 달도 못가서 금방 없어지죠. 지금도 시간이 거의 다 떨어져서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장애인 활동지원 사이트 갈무리.
▲ ⓒ장애인 활동지원 사이트 갈무리.

장애 유형·특성 반영 안 된 인정조사표… 시각·청각·지적·발달 유형 등에는 ‘무의미’

현재 장애인활동지원법상 활동지원제도는 활동지원급여 측정을 위해 방문조사 직원이 장애인 당사자의 집을 방문해 인정조사표를 토대로 당사자가 원하는 신체·정신적 기능상태, 서비스욕구 등을 파악·조사한다.

그러나 이 인정조사표는 △활동지원인정조사 기준이 매우 협소하고 △장애유형이 고려되지 않았으며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점 등이 문제점으로 제기 되고 있는 상황.

특히 신체장애유형과 특성에 치우쳐 있어 시각·정신·지적·발달장애유형 등에 대한 등급 하락 문제가 지속 발생하고 있다.

김 씨는 이러한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장애유형·특성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김 씨에 따르면 지난 5일 정부 관계자들과 면담자리에서 시각장애인들이 활동인정조사표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자 정부 관계자들은 ‘현 인정조사표에 대해서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했다.

하지만 현재 인정조사표는 인정등급 판정을 위한 기본조사 ▲일상생활동작(ADL) ▲수단적 일상생활 수행능력(IADL) ▲장애특성고려 ▲사회환경고려 등 4개영역, 24개 항목들로 구성돼 있다. 이와 더불어 추가 급여 제공을 위한 조사 7개 영역, 욕구 조사 3개 영역 등이 포함돼 있다.

이를 토대로 방문조사 직원은 ‘밥을 혼자 먹을 수 있나요’, ‘용변 처리를 혼자 할 수 있나요’, ‘옷을 혼자 입을 수 있나요’ 등을 질문하고 난이도 별로 점수를 측정하는 데 이 같은 방법은 시각·정신·지적·발달장애유형 등과 특성과는 거리가 멀다.

김 씨는 “시각·정신·지적·발달장애유형 등은 대부분 자신이 익숙한 생활환경에서 혼자 밥을 먹고 용변처리도 가능하다. 하지만 시각장애가 있는 경우 옷은 혼자 입을 수 있지만 옷이 뒤집혀 있는지 아닌지 색깔은 어떤 색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또한 밥도 혼자 먹을 수 있지만 국이 넘치지 않고 제대로 끓여지고 있는지, 반찬이 상했는지 등을 구분할 수 없다.”며 “일상 생활환경에서도 이러한 어려움이 있는데 만약 새로운 환경으로 나가게 된다면 더 위험한 상황에 닥칠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인정조사표는 검토할 대상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장애유형 등을 고려한 조사 문항이 없기 때문.”이라며 “장애유형 등에 대한 유형과 특성에 대한 이해도를 기른 뒤 인정조사표 개발을 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활동지원서비스 ‘당연한 권리’… 개개인의 삶 반영된 지원 필요

장애 유형과 특성, 그리고 이들의 삶을 토대로 활동지원 등급이 정해져야 한다는 김 씨.

김 씨는 현재 등급 재판정을 위해 이의제기를 신청한 상황이지만 언제 재심사가 이뤄질지 모른다. 그래서 시간을 아끼고 아껴가며 사용하는 중이지만 7월 한 달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걱정이다.

시간을 그 전보다 많이 달라는 것도, 지원을 확대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된 인정조사표를 통해 등급이 하락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김 씨의 주장이다.

“지난 5일 정부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 당사자에게 주는 혜택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라고. 그렇다면 단순히 종이 한 장 가지고 활동지원 등급을 결정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의 특성을 보고 그에 맞는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이렇게 등급이 계속 하락 돼 시간이 축소되면 우리는 집에만 있으라는 소리하고 다를 것이 없다고 봐요.”

한숨섞인 목소리와 함께 말을 마친 김 씨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회의실을 지나 업무 자리로 돌아갔다. 그 몇 걸음 사이 동안 장애물에 몇 번이나 부딪힐 뻔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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