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엑스포시민광장 2,000여명 운집

대전광역시 척수장애인협회는 지난 20일 오후 3시부터 밤 9시까지 대전엑스포시민광장에서 척수장애인을 비롯한 중증장애인, 그 가족, 자원봉사자, 사회복지시설 및 단체 종사자, 지역주민 등 2, 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4회 중증장애인 극복프로젝트 오뚝이대회’ · ‘제5회 한밭사랑愛창작가곡제’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이날 오뚝이대회는 중증장애인의 삶에 대한 동기부여와 함께 귀감 받는 사례를 발굴표창하고, 복지유공자를 격려해 장애인과 시민이 화합과 소통하는 계기로 진행됐다.

대전척수장애인협회 황경아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 자리에 참석하신 장애인 여러분이 I am 오뚝이대회의 주인공이다. 어려운 현실을 극복한 사례를 발굴해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는 동시에 이들에게 도움을 준 복지유공자·봉사자 여러분들의 빛나는 노력의 성과에 격려와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이번 오뚝이대회에서 오뚝이 대상에 김용자 씨, 장애수기대상에 황혜선 씨가 선정돼 대전시장 으로부터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이 밖에도 모두 19인이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

같은날 진행된 창작가곡제는 대전척수장애인협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히, 장애인신문사, CMB대전방송, 리누갤러리의 후원으로 진행됐다. CMB대전방송 생중계와 재방송이 된다.

CMB대전방송 김설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이황교 씨의 가창공연과 함께 오푸스앙상블오케스트라 연주와 소프라노와 테너 바리톤의 하모니가 어울러져 깊어가는 가을밤에 어울리는 다채로운 공연이 진행됐다.

뿐만 아니라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음악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교육을 위해 10인을 선발 ‘중증장애인 예술가 양성 교육’을 3개월간 진행했다. 그 중 최선화 씨의 꿈과 희망이 담긴 ‘나 그리고 나’를 선정됐다. 행사당일 노주호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발표됐다.

대전척수장애인협회 황경아 회장은 “제5회 한밭사랑愛창작가곡제”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진정한 교류와 협력, 통합의 메시지가 되길 바라며 침체돼 있는 우리 가곡이 널리 보급되길 바란다." 는 말을 남겼다.

한편 대전광역시척수장애인협회는 대전시의 중증장애인 회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대변함으로써, 척수장애인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척수장애인을 비롯한 영세 중증장애인들의 의료, 직업, 교육을 통한 진정한 사회통합과 건강한 사회를 구현하는 데 앞장서며 대전광역시 발전을 도모하고자 지난 2004년 5월 설립됐다.

이번 오뚝이대회에서 수기공모대상의 작품을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을 게재한다.

작 은 손 (황혜선, 시각1급)

작고 예쁜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고 편안한 엄마 뱃속에서 열 달 살고 희망을 안고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엄마는 손가락을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어 발가락도 세어봅니다.

왜 세는지는 모르지만 엄마이니까 세게되네요. 백일이 되어서 친척들이 모여 하는 말 “눈이 엄마와 똑 닮았다”며 수군거리네요.

이어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슬픔이 나를 짓누릅니다. 우리가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네요. 저는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인데 우리 아이가 유전이라 하네요. 세상을 등지려고 모진 마음을 여러 번 먹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어요. 친정엄마가 앞 못보는 딸을 결혼시킬 때 하신 말씀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저에게 큰 힘을 주었습니다. 여자가 아닌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를 위해서라면 용광로 같은 더위 속에서 살을 에는 듯한 한 겨울 추위에도 이겨내야만 했어요. 낫질, 고추 따기, 쓰레기매립장, 어린이집, 오일장등에 일을 해야만 했어요. 때론 보리밥이나 라면을 며칠씩 먹기도 했지요. 아이들이 밥이 왜 이러냐고 물을 때는 돈 많이 벌거든 맛있는 것을 많이 사줄게라고 달래기도 했어요. 이후 우리 세 식구는 대전으로 이사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인의 도움으로 시각장애인 특수교육기관인 안마수련원을 입학하여 2년을 열심히 공부한 끝에 지금은 안마사로서 밤낮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이상한 눈(시각장애)을 가지고 태어난 아들은 20살이 넘도록 군대도 가지 못하고 사회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여 집에만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바라보는 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했습니다. 다 큰 아들이 집에서 혼자 컴퓨터 게임에 빠져서 세상과 담을 쌓았어요. 나는 아들에게 안마를 배우던지 나가서 독립을 하라고 하면서 싸울 수도 없었어요. 언젠가는 본인의 마음이 돌아서고 정신을 차리겠지요. 그것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46살의 젊은 여자로써의 제 인생을 포기하고 엄마로써 열심히 살아보자고 이를 악물기로 했어요. 안마사로서 열심히 일하며 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회원님들께 봉사도 하였습니다. 서구지회, 여성회, 빛나눔자립센터등에서도 일하며 웃음을 잃지않고 밝게살려고 웃음치료도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뒤늦게 사회복지공부를 사이버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밤낮없이 한소네를 듣고 다니며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서인지 아들은 맹학교에 입학하여 안마를 배워 일을 하게 되었어요. 엄마의 용돈을 주기도 하고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하면서 봉투를 주기도 하네요. 아들이 평생 동안 컴퓨터만 할 줄 알았는데 너무나도 고맙고 자랑스러워요. 저에게는 고난의 긴 터널만 있을 줄만 알았어요. 그러나 터널을 지나 그 끝에는 희망의 빛이 보이네요. 비록 작고 힘없는 손이지만 우리 아들의 손을 꼭 잡아봅니다. 여태까지 아들에게 못했던 말을 하고자 합니다. 엄마는 너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다오. 아들아! 엄마가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