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회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대상 수상한 김종훈 씨

▲ 한빛예술단이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다.
▲ 한빛예술단이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다.

문화, 예술, 예능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쌓은 장애 예술인들을 위한 ‘제 11회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이 시작되기 전 식장의 한편에 공연준비로 분주한 사람들이 보였다.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무대를 준비하는 사람들. 이들은 시각장애가 있는 음악인들로 구성된 한빛예술단 단원이다.

한빛예술단 김종훈 음악감독의 대상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사전 리허설을 준비 중인 단원들. 뒤늦게 도착한 김 음악감독은 아내와 함께 예술단원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리허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허설이 시작되고 자리를 잡은 김 음악감독의 곁에는 마이크가 놓였다. 단원들과 짧은 합주연주를 마친 뒤 누구의 악기소리가 좋고, 누구의 악기소리가 긴장했는지 파악해 단원의 이름을 불러주며 긴장을 풀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김 음악감독은 “시각장애인들은 소극적으로 되기 쉽다. 평소 누군가의 의지해 따라다니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며 “그런데 음악에서도 그렇게 따라다니게 되면 개인의 개성있는 연주가 나오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단원들에게 매순간 스스로가 지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연주에 임하라고 조언한다.”며 “결국 합주는 개개인의 소리를 잘 모아서 멋있고 웅장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 김종훈씨가 리허설을 하며 단원들에게 연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 김종훈씨가 리허설을 하며 단원들에게 연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바이올린’과의 첫 만남

현재는 한빛예술단의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지만 그는 각종 콩쿠르에서 상위권에 입상하고 현재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며 재능을 펼치고 있는 유능한 바이올리니스트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부모님 덕분에 태어난 순간부터 클래식을 접했다. 시각장애가 있어 청각이 예민했던 그는 유독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좋아했는데 특히, 바이올린 소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김 음악감독은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을 접했다. 마침 입학했던 초등학교에 바이올린부가 있었고 처음에는 놀이처럼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즐거운 놀이처럼 시작했던 바이올린은 그가 중학생이 되자 그의 평생 친구가 됐다.

그는 “사춘기가 되면서 참 생각이 많았다. 나를 뒤돌아보게 되고 미래를 고민하면서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많이 생각하게 됐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각장애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던 시기.”라며 “그 시기에 유일하게 그 모든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시간이 바로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였다. 그 순간에는 나를 짓누르던 그 많은 고민에서 벗어나 아예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기분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김종훈 씨
▲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김종훈 씨

쉽지 않은 ‘바이올린’

모든 고민을 떨쳐낼 만큼 행복하게 만들어주던 바이올린을 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 현을 집는 일은 몸의 감각으로 익힐 수 있었지만, 전문적으로 연주를 배우기 시작하자 연주하는 자세를 만드는 일이 발목을 잡았다.

바이올린은 악기를 어깨에 얹어놓고 활을 높이 들어 연주한다. 이때 활을 잡는 팔의 자세를 잡는 일이 중요한데 연주 외에 쓸모없는 힘이 들어가는 자세가 되면 연주를 망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김 음악감독은 “대부분 바이올린을 배울 때 선생님들의 자세를 보고 자신들의 모습을 거울로 보면서 따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런데 선생님의 모습을 보거나 거울을 보면서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활을 기가 막히게 쓸 수 없겠구나 생각이 들어 좌절했었다.”고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모두의 도움으로 완성된 ‘바이올린 연주’

좌절도 잠시. 그에겐 좋은 선생님뿐만 아니라 좋은 친구와, 좋은 이웃 그리고 좋은 부모님이 있었다.

그는 “선생님의 도움이 정말 컸다. 나를 지도할 때면 내가 선생님의 어깨와 팔을 만져보도록 도와주고 매번 수업 때마다 나의 자세를 봐주고 잡아주는 과정을 반복했다.”며 “그렇게 좋은 자세를 잡는 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나니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하면서 어머니께서 나를 위해 큰 달력에 큰 악보를 그려주셨다.”며 “그 악보를 모두 모으면 트럭 한 대도 넘는 분량.”이라고 설명했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 씨가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상의 대상을 수상했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 씨가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상의 대상을 수상했다.

시각장애가 있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매번 악보를 그렸고, 아들이 성장해 독일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그 기회를 놓치게 하지 않기 위해 비용 마련에 또 쉬질 못했다.

그런 어머니의 노력으로 김 음악감독은 유학길에 올랐지만 힘겨운 유학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유학을 가서 바이올린을 더 공부를 하는데 고도의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시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그래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를 위해서 힘들게 돈을 모아 유학을 보내준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에게는 음악 외에 선택권은 없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이어 “참 감사하게도 그 힘겨운 생활에서 도움을 주는 이웃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응원과 격려로 다시 힘을 냈다.”며 “결국 베를린 음대를 최고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그때 그가 느꼈던 절망감과 절심한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결국 바이올린을 통해 음악이 됐고, 그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히 악기를 연주만하는 것이 아닌 마음을 담아서 연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결국 음악이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해주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김 음악감독은 “재능이 있지만 교육과 연주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는 선배 음악가로서 그들과 함께 연주하고 활동하는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 내가 받았던 감사함을 조금이라도 나누는 길이 될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더불어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장애가 있어서 ‘나는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하루 빨리 그런 생각을 바꾸라고 말하고 싶다.”며 “한 사람이 자신의 꿈과 재능을 펼치는 일은 끝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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