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장애인야학… 연금공단 대전 ‘임대 거부’
갈 곳 잃은 장애인야학… 연금공단 대전 ‘임대 거부’
  • 정두리 기자
  • 승인 2017.03.29 16: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대료 내고 정당하게 임대하겠다는데”… 인권위에 진정 접수
▲ 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는  임대거부를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판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기로 하고, 29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 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는 임대거부를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판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기로 하고, 29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인 장애인 60여 명이 공부하고 있는 모두사랑 장애인 야간학교(이하 모두사랑야학)가 이전을 앞두고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보통은 이사를 앞두고 ‘임대료’ 걱정이 크겠지만, 이들은 ‘장애를 이유’로 한 임대주의 거부에 부딪쳤다. 심지어 민간건물도 아닌 공공기관, 국민연금공단 대전지역본부 소유의 건물을 임대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할인조건까지 알려주던 대전지역본부… 갑자기 ‘부적합’ 입장 바꾼 이유는?

모두사랑야학은 대전에서 17년 째 성인 장애인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초·중·고 검정교시 교육 과정과 평생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따른 학교 형태의 장애인 평생교육시설로, 현재는 (구)대전서구청 건물 1층을 사용해 왔다.

그러던 중 건물이 주차장 부지로 사용 확정되면서 오는 6월까지 다른 장소로 이전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전시청과 대전교육청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건물 보증금 2억 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약속했고, 이사할 곳만 찾으면 되는 일이었다.

이사할 곳을 찾던 중 지난해 말 대전시 서구 탄방동에 위치한 대전지역본부가 소유한 건물의 2층을 임대한다는 정보를 얻고 임대 문의를 했다. 무엇보다 장애인을 위한 교통 접근성이 좋은 곳이었다.

대전지역본부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협의가 진행되던 지난해 11월 공문을 통해 임대 조건과 할인조건, ‘교육시설로 용도 변경을 해야 한다’는 사항까지 덧붙여 안내를 받았다.

▲ 성인 장애인 60여 명이 공부하고 있는 모두사랑 장애인 야간학교가 이전을 앞두고 임대거부로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 성인 장애인 60여 명이 공부하고 있는 모두사랑 장애인 야간학교가 이전을 앞두고 임대거부로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일 뒤 국민연금공단 본부(이하 연금공단 본부)에서 발송된 공문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모두사랑야학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6일 연금공단 본부가 발송한 ‘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 임차협조 의뢰에 대한 회신’ 공문에는 ‘장애인화장실 및 장애인용 승강기가 없어 이용하는 데 불편이 예상되며, 건축물 허가(업무시설에서 교육시설로 용도 변경)사항에 해당돼 장애인 야간학교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정하다’는 답변이 담겼다.

이후에도 모두사랑야학은 대전지역본부에 지속적으로 임차를 문의했지만, 지난달 21일 대전지역본부 는 임대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내왔다. 당초 할인조건까지 안내하던 입장이 바뀌어버렸다.

대전지역본부의 공문에는 야학이 ‘노유자시설’에 해당해 소방 및 제반 안전시설이 용도에 적합하지 않아 ‘임대 부적합’하다는 판단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모두사랑야학은 “장애인야간학교는 엄연히 장애인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따른 ‘장애인평생교육시설’로, ‘노유자시설’에 해당하는 소방시설이나 안전관리 관련 규정을 근거로 임대를 거부하는 것은 부적합하다.”며 “오히려 편의시설과 소방설비에 대한 규정은 대전지역본부가 공공기관으로서 법적으로 설비해야 하지만 위반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이것은 초기에 임대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장애인 시설이라는 이유로 거부를 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법 해석을 한 차별.”이라며 “국가의 공공기관이 임대사업을 하며 장애인의 교육공간 임대를 거부하는 것은 민간보다 엄격한 기준에 근거해 시정돼야 한다.”고  질타했다.

장애를 이유로 배제·거부하는 엄연한 ‘차별’… 인권위에 진정 접수

모두사랑야학은 이번 사안을 엄연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판단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기로 하고, 29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 모두사랑야학 오용균 교장은 임대를 거부하는 국민연금공단 대전지역본부를 향해 장애인차별이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 모두사랑야학 오용균 교장은 임대를 거부하는 국민연금공단 대전지역본부를 향해 장애인차별이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모두사랑야학 오용균 교장은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임대비를 내고 임대를 하려고 하지만, 공공기관이 장애를 이유로 임대를 거부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며 “기자회견을 하고 진정서를 접수해 대전지역본부의 행태를 고발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학생들과 함께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 이유는 당당한 우리의 입장을 알리기 위해서.”라며 “연금공단과 대전지역본부는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박명애 이사장은 “장애인들이 학교에 갈 수 없고 공부를 할 수 없었던 것은 내 탓도, 부모의 탓도 아닌 국가가 장애인을 무시했기 때문.”이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 된지 10년이 지나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지만, 여전히 장애인은 차별 받는 ‘몰상식’ 한 사회.”라고 개탄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재화·용역 등의 제공에 있어서의 차별금지와 토지 및 건물의 매매·임대 등에 있어서의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과거 인권위의 결정례에도 이러한 사안을 명확히 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사무실 임대 과정에서 장애를 이유로 임대를 거부한 것은 차별이라고 인정했다. 당시 피진정인은 민간 건물이었고, 이번 사안은 공공기관의 임대사업이다. 여기에 그 분노가 더해지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는 “장애인들은 아직도 집을 구할 때 임대료 보다 집주인의 거절을 더 걱정한다. 그리고 법에도 나와 있는 차별행위를 공공기관이 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며 “인권위의 분명한 시정권고로 다시는 차별·배제·거부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특히 이번 사안은 다른 장애인 야간학교들에게도 중요한 관심사로, 문제 해결에 뜻을 함께 하겠다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장애를 이유로 한 임대 거부를 어렵지 않게 마주하는 상황에서 인권위의 결정이 명확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

노들장애인야간학교 한명희 사무국장은 “장애인들에게 야간학교는 단순히 공부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시설과 집에만 있던 삶에서 나와 사람을 만나고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는 ‘혁명적’인 공간.”이라고 의미를 설명하며 “모두에게 똑같은 하루를 만들어가는 공간, 장애인 야간학교와 그 일상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 기자회견에는 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 학생과 야간학교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 기자회견에는 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 학생과 야간학교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 대전 모두사랑 장애인 야간학교이 이전을 앞두고 임대 공간을 찾던 중,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에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 대전 모두사랑 장애인 야간학교이 이전을 앞두고 임대 공간을 찾던 중,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에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