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주의에 대한 난상토론 진행, 당사자 빼고 장애운동을 논할 수 없다 VS 당사자주의를 뛰어넘는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

▲ 한국장애학회는 지난 19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장애인운동사를 주제로 한 2017 춘계 학술대회를 진행했다.
▲ 한국장애학회는 지난 19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장애인운동사를 주제로 한 2017 춘계 학술대회를 진행했다.

‘장애운동에서 당사자주의는 이념이나 가치가 될 수 있는가’. 해당 질문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오고가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장애학회는 지난 19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장애인운동사를 주제로 한 2017 춘계 학술대회를 진행했다.

학술대회 발제를 맡은 동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유동철 교수는 한국의 장애운동사를 이야기하며 당사자주의의 등장과 장애운동의 분화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 DPI 2대 회장이었던 이익섭 교수는 당사자주의를 장애인의 정치 연대를 통해 장애인을 억압하는 사회환경과 서비스 공급체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비판‧견제함으로써 장애인의 권한과 선택, 평가가 중시되는 장애인복지를 추구하며 그 결과 장애인의 권리, 통합과 독립, 그리고 자조와 자기결정을 달성하려는 장애인 당사자 주도의 발전된 권리 운동이라고 정의한다.

유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정의는 당사자주의가 불평등에 대한 저항, 정치 세력화, 자기대표성을 핵심 요소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과연 당사자주의가 장애운동의 핵심 이념이 될 수 있는지, 당사자주의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승기 교수.
▲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승기 교수.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승기 교수는 당사주의는 이념이나 가치가 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장애운동이 장애인을 위한 복지 만들고, 여러 가지 차별도 없애겠다는 목표로 한다면, 과연 그것이 없어진다고 장애해방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며 “근본적으로 이 사회는 차별이 바탕에 깔려있다. 장애해방이 된다면, 장애가 아닌 다른 요인들로 차별을 받을 수 있다. 즉, 근본적인 것. 가령 인간의 존엄성 같은 그런 것들을 위해 장애운동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당사자주의가 갖는 한계점은 장애를 너무 심하게 앞에다 두고 이야기하는 것에 있다.  사회구조 측면에서 바라보면 여성, 노동자, 다문화 가정이 겪는 차별과 장애인이 겪는 차별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그런데 당사자주의를 이야기하고 장애의 이야기에 집중하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인간 본연이 추구하는 가치. 궁극적으로는 장애가 없는 상태에서도 인간으로 존중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이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 주장에 토론 참석자 대부분은 당사자를 뺀 장애운동은 존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실장.
▲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실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실장은 “장애운동에서 장애를 빼면 뭐가 남는가.”라며 “장애운동에서 장애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어 “나는 당사자주의가 논리적 설득력은 떨어지지만, 정치력 설득력은 강력한 국내산 장애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당사자주의가 장애운동이 추구하는 근본 이념이 될 수는 없지만, 현실에서는 굉장히 유용한 도구다. 가령,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 본인이 어떤 제도나 지원을 이야기하면 공무원들은 대부분 이해한다. 정책 제도를 위해 어려운 이론을 말할 필요가 없다. 당사자가 요구하는 것 자체로 모든 필요성, 이유 등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당사자주의는 전술적인 도구지만, 그것이 장애해방을 위한 이념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 당사자주의가 이념이 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를 빼고 장애해방을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부연 설명 했다.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전지혜 교수는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장애운동과 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장애운동은 차이가 있다고 전하며, 당사자주의를 긍정했다.

전 교수는 “이승기 교수는 장애인을 위한 제도 지원, 시스템 마련 등이 해결 되도(장애인으로 겪는 차별이 해결되도) 사회 여러 곳에서 존재하는 차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차별에 저항하며 인간존엄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운동에서 그것은 일부분일 뿐이다. 가령, 장애인식개선운동을 통해 비장애인에게 장애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는 부분에서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장애운동은 그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험한 억압, 부당함에 저항하는 측면에서 당사자주의를 뺄수는 없다. 물론 당사자주의가 가치나 이념이 되기는 어렵다. 다만, 그것들과 관계돼있는 말임에는 틀림 없다.”고 전했다.

학회에 참석한 장애당사자들 역시 당사자가 빠진 장애운동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이정하 대표는 “노동 운동하는 노동자가 노동자성을 잃게되면, 자본가 그룹의 노예가 된다. 나 자신을 장애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사회 여러 운동(여성, 노동자, 장애인 등)을 하고 있는 주체들이 당사자성을 잃게 되면 투쟁 동력은 사라진다. 목표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당사자성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은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중요한 쟁점.”이라고 사회운동에서 당사자가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특히 서울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김주현 회장은 사회 곳곳에서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하며, 당사자주의가 학술적 논쟁보다는 실천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은 ‘난상토론’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의사소통보완기기를 통해 토론을 해야 하는 김 회장의 경우 즉흥으로 이야기할 수 없어, 토론에 제대로 참여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모든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혼자서 AAC로 글을 입력하고 토론이 끝난 후 따로 생각을 전달해야 했다.

김 회장은 “나는 언어장애가 있기 때문에 기존 토론회처럼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발표하는 것이 아닌, 생각을 주고 받는 난상토론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다.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아 유감스럽다.”며 “언어장애인에게도 충분한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방법을 찾는 것. 이런 것이 당사자주의의 실천이다. 논쟁보다는 실천전략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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