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효니 프로젝트, 발달장애인 편견을 날리다
[칼럼] 효니 프로젝트, 발달장애인 편견을 날리다
  • 전진호 논설위원
  • 승인 2017.07.0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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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이다.

서울에서의 업무를 마치고 집에 가는 비행기를 타니 중국인 관광객 자리를 국내 가족단위 여행객이 대신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돌도 안돼 보이는 아이들을 앉은 부모들이 내 좌석 앞, 뒤, 옆자리에 보이길래 귀경길 이 평탄하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비행기가 이륙하자 기압차 때문인지 아이 하나가 울음보를 터뜨리기 시작했고, 주변 아이들도 연달아 빽빽 울기 시작한다.

아이들 울음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엄마들 표정은 하얗게 질려갔다. 하지만 어떤 여행객도 이들에게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거나, 타박하지 않았다.

아이니 우는 거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우리는 조금 불편하게 느낄지는 모르지만 드러내놓고 불쾌함을 표하지 않는 게 지극히 상식이다.

발달장애인에게만 유독 가혹한 잣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들이 유독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는 잔혹한 잣대를 들이 대곤 한다. 당연한 권리조차 누군가의 ‘동정’어린 마음이나 ‘시혜’가 없으면 눈총 받고 비난이 쏟아지는 현실. 권리를 주장하며 바꿔보고자 노력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들에 대한 싸늘한 인식은 여전하다.

‘소리 질러도’, ‘과잉행동을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 앞에 발달장애가 있는 이들의 특성이 이런 거라 보여주고, 거리를 활보하면서 인식을 바꿔나가고, 정당한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걸 모르는 바 아니나 현실 속에선 쉽지 않은 이야기다. 나는 괜찮지만 나머지 가족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우리 아이가 잘못한 게 아니지만 다른 이들에게 눈총 받기 싫어서, 혹시나 돌발 상황이 벌어질까 봐 지래 겁먹고 비행기나 기차 타는 걸 주저하며 움츠러들기만 하던 엄마들이 모여 일을 냈다. 200여 명의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들이 전세기를 끌고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내려온 것.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비행기 여행을 포기해 온 현실을 알리고, 발달장애가 있는 이들 도 기꺼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어머니들의 애끓는 마음이 ‘효니 프로젝트’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뜻맞는 소수가 여행을 떠나는 것도 쉽지 않은데 200여 명이라니!

이들 중에는 휠체어 이용객 등 다양한 장애유형의 편의 또한 고려해야 하는지라 여행을 업으로 하 는 이들도 진행하기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 힘은 발달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동등한 상식선에서, 차별받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준비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장애인 여행권’이 본격 화두가 된지도 10여 년이 넘었고, 수많은 장애인 여행객이 제주를 찾고 있으나 숙소서부터 차량, 여행지, 식당... 편의시설을 잘 갖춘 곳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바다가 보이는 펜션에서 낭만과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던 소박한 꿈은 200여 명이라는 인원과 편의시설 때문에 포기해야 했고,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특장버스(제주도 내 2군데 업체뿐이다)를 구하지 못해 막판까지 애태웠다. 다행히 제주특별자치도장애인종합복지관의 특장버스 지원과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협의회의 특장차를 빌려 해결할 수 있었다.

여행전문 사회적 기업 제주생태관광은 해설사를 파견해 절물휴양림에서 참가자들과 함께하는 생태체험을 지원했으며, 제주특별자치도는 참가자들과 해녀들의 특별한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또 제주에서 활동하는 가수, 연주가, 무용가 등이 이들만을 위한 감동의 공연을 펼쳐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기도 했다.

자칫 상처를 되새기는 작업이 될뻔한 작업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을 통해 치유되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 이게 여행이 주는 마력아닐까.

효니 프로젝트, 발달장애인 여행권 확보 초석되기를

사실 장애인 당사자의 처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여행을 활용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휠체어 이용자들은 휠체어 리프트 차량 구하는데 애를 먹고, 턱없이 들어갈 수 있는 식당과 숙소 찾는데 고생하고 있으며, 제2의 ‘효니’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효니 프로젝트’의 남다름은 바로 여행 이후의 모습이다.

일회성 이벤트만으로는 세상의 변화를 꾀할 수 없다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대중들의 인식 변화를 위해 만화라는 즐거운 매체를 활용해 발달장애인 여행권의 중요성을 세상에 알렸으며, 조만간 여행 기록을 담은 동화책을 발간해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라고.

여행의 성공적인 마무리 소식이 알려지자 각지에서 같은 콘셉트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문의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오는 28일에는 미국 샌디에이고를 방문하는 ‘미니 효니프로젝트’가 미국 내 발달장애아를 두고 있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작은 씨앗 하나를 제 대로 흩뿌린 건 확실한듯하다.

제주의 푸른 하늘과 쪽빛 바다를 그리워하는 수많은 ‘효니’들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염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