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편리하고 안전한 유니버설디자인 적용 피난기구… 정책 개선 필요”

▲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유니버설디자인 정책 방향 모색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유니버설디자인 정책 방향 모색을 위한 세미나'를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었다.

피난설비에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유니버설디자인환경 정책 방향 모색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유니버설디자인(Universal Design)은 장애의 유무, 성별, 연령, 국적 등과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 또는 ‘보편적 디자인’이다.

▲ 최규출 교수
▲ 재난취약계층을 위한 피난기구의 유니버설디자인 적용방안에 대해 최규출 교수가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교통약자의 이용편의 증진법’ 등이 시행되고 있지만, 한국장애인개발원에 따르면 “대상 시설의 용도, 면적 등에 따라 편의시설 적용범위를 법률마다 차등 적용할 뿐만 아니라 최소한으로 규정해 장애인의 편의시설 체감이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동원대학교 건축소방학부 최규출 교수는 먼저 현행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피난기구 설치 등의 한계에 대해 짚고 넘어갔다.

최 교수는 “대표적으로 건축법 시행령 제34조는 건축물의 직통계단 설치에 대한 기준으로 ‘거실 각 부분부터 계단에 이르는 보행거리는 30m 이하가 되도록 설치, 주요 구조부가 내화구조 또는 불연재료인 경우 50m 이하로 설치, 16층 이상의 공동주택에서는 40m이하로 설치하도록’ 돼 있다. 또한 스프링클러 등 자동식 소화설비를 설치했을 때 75m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시야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너무 먼 거리.”라고 말했다.

건축물 설계 초기부터 고려해야 하는 조건, 사회 인식 개선 필요

최 교수는 피난 기구의 유니버설디자인 적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피난설비의 유니버설디자인 적용방안으로 ▲건축법에 따른 피난시설 ▲소방법에 따른 피난기구 ▲유도등과 유도표지 등을 제시했다.

최 교수가 제시한 건축법에 따른 피난 시설은 피난계단, 특별피난계단, 피난안전구역, 대피공간 등으로 건축물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다.

▲ 피난안전구역
▲ 유니버설디자인이 적용된 피난계단. ⓒ한국장애인개발원

피난계단의 경우 건축물의 바닥면적에 따라 너비나 길이를 결정해 설치하도록 돼 있어 가장 효율성 있는 피난수단이지만, 계단을 직접 오르내릴 수 없는 휠체어 이용인에게는 가장 불편한 피난로다.

최 교수는 “유니버설디자인 기술을 적용한다면 피난계단의 한 부분에 경사로를 배치해 평상시에는 일반계단으로 사용하고 긴급재난 시 경사로를 펼쳐 휠체어가 이용할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피난계단 유니버설디자인 적용
▲ 특별피난계단. ⓒ한국장애인개발원

배연설비가 있는 면적 3m² 이상의 부속실을 통해 연결되는 특별피난계단은 피난계단과 같은 구조로 설치된다. 전실과 부속실은 화재 시 연기의 침입을 막아 피난계단보다 더 안전하고 가장 쉽게 피난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휠체어가 회전하거나 다수의 휠체어가 동시에 머무르기에는 비좁다.

별도의 피난 공간인 피난안전구역은 30층 이상의 고층건물에만 설치하기 때문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최 교수는 “2층 이상인 건축물의 매 층마다 설치해야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으며, 평상시 일반 공간으로 쓰다 재난 시 피난안전구역으로 쓰는 경우에는 화기에 강한 내연재료로 실내를 조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방열과 방연이 가능한 방화문을 설치하면 모두가 화재가 발생했을 때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디자인 적용 공간이 된다고 전했다.

또 최 교수는 아파트 발코니 부분에 설치된 대피공간에 대해 “3m² 크기로 설치하도록 돼 있지만, 휠체어 이용인이 사용하기에는 비좁은 공간.”이라며 “내부에서 화재에 60분 이상 견딜 수 있는 내화구조로 규정했지만, 실제 시험 결과 30분 뒤 실내온도가 180℃ 이상 올라갔다.”고 지적했다.

이에 “장애인·비장애인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대피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일반 건축물은 당해 층면적의 10% 면적을 확보해야 하고, 공동주택의 경우 화재가 발생한 층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추가 설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현재 피난기구, ‘재난취약계층’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

소방법에 따른 피난기구로는 완강기, 구조대, 승강식피난기, 사다리, 피난트랩 등이 있다. 최 교수는 이 가운데 신체적장애 등으로 거동이나 활동에 제약이 있는 사람을 가장 고려한 피난기구로는 ‘구조대’를 꼽았다.

이유인즉 완강기는 현재 건축물에서 많이 사용되는 피난기구지만, 재난 시 설치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탈출 할 수 있어 장애가 없는 경우에도 신속함이 떨어지는 피난기구로 분류됐다.

최 교수는 “완강기의 경우 새로운 제품 개발이 필요하다. 모두가 사용하기 위해서는 밧줄 끝에 이송낭을 달아 이송망 안에 피난자를 실어 내려 보내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전했다.

▲ 승강식 피난기
▲ 승강식 피난기. ⓒ한국장애인개발원

승강식피난기는 바닥에 설치된 공간으로, 피난자의 몸무게로 내려가는 무동력 피난기구다. 이는 국가화재안전기준에 따라 재난취약계층에 적합한 것으로 돼 있지만, 공간이 너무 좁아 휠체어 이용인은 사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입구와 공간을 가로와 세로 1.5m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 구조대
▲ 구조대. ⓒ한국장애인개발원

그나마 사회복지시설이나 노인병원 등에 의무 설치하는 구조대가 가장 많은 사람을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 구조대는 규격화 된 자루를 펼쳐 피난자가 미끄럼틀을 타듯이 대피하는 형태의 피난기구다. 하지만 이 역시 설치해야만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활동능력이 부족하면 자루를 펼치기 어렵고, 입구의 높이가 1m 이상이기 때문에 들어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

최 교수는 “누구나 한 번의 동작(one touch)으로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입구와 출구 모두 스스로 들어가고 나올 수 있도록 높이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탈출할 때 피난자의 안전을 위해 속도 감속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머지 사다리와 피난트랩은 유니버설디자인 적용자체가 어려운 피난기구로 꼽혔다. 사다리는 설치가 쉽지만 누구나 혼자 사용할 수는 없으며, 피난트랩 역시 구조가 사다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유니버설의 기본 ‘다양함 포용’이 곧 안전

청각장애 또는 시각장애가 있는 피난자의 안전실태도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설치되는 피난 유도등과 유도표지는 장애유형에 대한 고려가 없는 실정이다.

▲ 유도등
▲ 유도등의 종류. ⓒ한국장애인개발원

유도등은 안전한 피난로로 안내하는 표시등으로, 피난구 유도등, 통로 유도등, 복도통로 유도등, 거실통로 유도등, 계단통로 유도등이 있다.

유도표지는 피난로 방향을 표시하는 표지로 긴 통로나 복도 등 벽면에 설치한다.

▲ 유도표지 유디
▲ 유도등의 방향 표시. ⓒ한국장애인개발원

하지만 대부분의 유도등과 유도표지에는 (점멸 경광등 또한 마찬가지로) 정확한 방향 표시가 없어 청각장애가 있는 피난자에게는 지체와 혼란을 주기 쉽다.

소리를 통해 위험 또는 대피를 알리는 경보 역시 시각장애가 있는 피난자에게는 지체와 혼란을 주기 쉬운 상태다. 화재경보의 소리가 일괄적으로 크기 때문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이야기다.

최 교수는 “물론 빛이나 소리를 적절하게 이용한 유도장치와 피난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시장성이 부족한 특허제품에 그치고 있다.”며 “정부가 개발금을 지원하고, 법에서 의무설치로 규정한다면 관련 제품의 개발과 보급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시각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 이진원 센터장은 사고에 대비해 미리 제대로 된 피난 안내도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12조 ‘피난안내도의 비치 또는 피난안내 영상물의 상영’에 따라,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업소에 피난계단·피난통로·피난설비 등이 표시된 피난 안내도를 갖추도록 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하지만 시각장애인을 고려한 구체적인 지침은 한국에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다중이용업소 가운데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일하는 공간조차 피난 안내도를 갖추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저시력 등 다양성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미관 요소와 공간상 제약 등을 이유로 정보가 작게 표시돼 있다. 이는 비단 저시력 뿐만 아니라 시력이 좋지 않은 노인 등에게도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시력인과 노인의 안전하고 원활한 보행과 길찾기를 위해 공공안내표지판 등의 최소기준을 제안했다. 이 센터장은 “시력과 시야를 고려해 달대형·기둥부착형, 달대형·벽면부착형의 조합 등으로 설치해야 하며, 경로를 결정해야 하는 지점의 안내표지판 크기는 폭을 최소 450mm 이상, 바닥형 안내표지판의 크기는 최소 450mm×700mm 이상으로 설치해야 된다.”고 제시했다.

▲ 시인성 논슬립
▲ 계단 단차에 설치한 시인성 논슬립. ⓒ한국장애인개발원

또 “계단 단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롤 고려해 계단 단차에 시인성(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논슬립을 설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장애인권익지원과 정용수 사무관은 “최소 규제였던 편의증진법이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편의증진을 위해 세부적으로 관련 법 개정에 노력할 것.”이라며 “다른 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제도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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