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사자를 위한 인권센터 설립 및 운영이라니!

경기 등 최근 치른 사회복지사협회 선거 등을 지켜보면서 감회가 남다르다. 사회복지 노동자를 위해 인권센터를 설립하거나, 운영 활성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걸 보면서 그리 낯설어만 하던 ‘인권’이 어느덧 우리 옆에까지 왔구나 싶다.

알다시피 사회복지사 보수교육 과목에 ‘인권교육’이 포함된 것도 이른바 ‘도가니’ 사건을 겪고 나서야 가능했으며, 지금도 (이럴 때만 필요한) 1급 사회복지사 자격증 소지자가 아니면 인권 강의를 할 수 없다. 수많은 경험과 경륜이 있는 인권활동가라도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그것도 1급 자격증이 없으면 사회복지사들을 위해 강의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막힌 구조에서 사회복지 노동자들의 권익과 인권을 지키겠다는 취지로 인권센터 등을 만들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장족의 발전이란 말인가. 

하지만 한편으론 포장만 그럴듯한, ‘공염불’에 그치는건 아닐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른바 ‘윗선’에서 생각하는 인식과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욕구 간의 간극차가 커 보이기 때문이다. 제보자 입장에선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일인데, 운영자 입장에선 ‘또 하나의 센터’에서 하는 사업 프로그램 정도로 여기고 쉽게 접근하는건 아닐지. 

일례로 모 지역서 사회복지 노동자를 위해 야심 차게 인권센터를 개소했으나 단 한 건의 상담 접수나 제보가 없는 ‘개점휴업’ 상태에 놓인적이 있다. 어떻게 운영하길래 그럴까 들여다봤더니 역시나였다.
인권 교육을 담당했거나 그마저도 해본 경험이 없는 사회복지사들이 중심 돼 (다른 데서 그렇듯) 변호사나 노무사 등을 연계해주거나 자문해주는 것을 골자로, 사회복지기관에서 (대상자) 상담하듯 세팅해놨으니 시작부터 문 걸어잠근 셈이다.  

생각해보라. 제보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 건 기본 중 기본, 철저히 자신 중심에 서서 끝까지 싸워주며 때로는 소송대리까지 해주길 바라지만 인권 구제활동 경험이 없는 이들이 (인권 감수성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윗사람에게 결제맡아가며 이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을까.
또 ‘찍히면 죽는다’며 ‘한 다리 건너면 다 알 수 있으니 입조심 하라’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인 사회복지계에서 모 법인을 통하면 인권센터에 누가 상담을 했는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구조를 탈피하기 전까지는 인권센터를 신뢰할 수 없다. (법인이라는 배후가 있다 보니) 제보자보다 이해관계자와 친분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서 자신의 사건이 외부로 유출 안될 거라는 믿음을 갖기 힘든 데다 상담받아봐야 결국엔 자기 스스로 모든 걸 다해야 하는 인권센터를 뭣하러 찾겠는가.   

  ▲ 지난해 9월 19일 개최한 공공운수 사회복지노조 집단진정 기자회견 모습 @김기홍 페이스북  
▲ 지난해 9월 19일 개최한 공공운수 사회복지노조 집단진정 기자회견 모습 @김기홍 페이스북

이렇다 보니 사회복지계는 인권침해를 당해도, 기관 내 횡령 등 비리를 목격해도, 성추행이나 성희롱 등을 겪거나 목격해도 어느 한 곳 보호받을 수 있는 시민단체조차 미비하고, 공적 시스템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장애계의 경우 여전히 부족하긴 하지만, 오랜 노력 끝에 장애인 인권단체 외에도 권익옹호기관, 인권침해예방센터 등 공적 시스템도 생겼다. 또 공익 소송을 진행해주는 변호사도 늘어나 인지를 통해 개입은 물론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개입해 함께해주는 이들이 생겨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최근 한 복지시설에서 벌어진 비리 의혹을 고발하고 바로잡기 위해 이들과 함께 해줄 관련 단체 등을 수소문했으나 속시원히 나서주겠다는 단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성희롱 문제에 이어 인권침해 상황이 벌어져도 피해자 뒤에서 힘 돼줄 단체를 찾기는 쉽지 않다. 피해자가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고 언론 등에 대외적으로 알리려고 하면 피해자에게 압박이 될만한 이들이 나서서 ‘조용히 해결해도 될 일을 왜 시끄럽게 알려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만드냐’고 오히려 타박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국가기관은 ‘차라리 당신네가 경찰에 신고하라’는 식으로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해 피해자를 좌절시키는 일도 있었지만, 또 다른 관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해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취재를 위해 기자와 함께 했음에도 이리 어려운데, 일개 개인들은 신고나 할 수 있을까. 현실은 이지경인데 ‘인권’이라는 간판팔이에나 몰두했던 이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의식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나 대신 목소리를 높인 이를 (시끄럽게 했다는 이유로) 오히려 왕따시키거나 ‘평온했던 시절’ 운운하며 가해자 편에 서는 이들이 생겨난다. 입을 땠다가는 나만 피해본다는 의식을 수십여 년 간 학습해온 이들은 윗사람으로부터 대놓고 돈 상납을 요구받아도, 거주인을 학대하며 교묘히 횡령하는 현장을 목격하더라도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런 문제를 부조리를 막기 위해 노조를 만들자고 하면 ‘시끄러워지는 게 싫다’며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비난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기자가 본 2018년 사회복지 조직문화의 현실은 밑바닥을 못 벗어나고 있어 보인다.  

장애인 등 ‘이용인의 인권 보장’에 관한 규정이 까다로워지면서 ‘우리 인권은 어디서 찾냐’는 볼멘소리가 들려오곤 한다. 당연히 사회복지 노동자의 인권도 보장받고, 지켜져야 한다.
허나 간과하는 게 있다. ‘인권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자신들의 희생이 있어야만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다. 남의 손으로 만들 수 없는 가치다.
사회복지계는 어떤가. 자신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손해 입거나 피해를 보더라도 나와 내 직원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 높이거나 싸워본 적 있나. 심각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언제까지 더딘 인식변화만 탓하며 한탄하고 있을 겐가.
포장지만 그럴싸한, 알맹이 없는 신규 사업(?)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더 많은 내부 고발자들이 나서야 한다. 안심하고 고발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소송 등이 끝날 때까지 고발자들 옆에서 함께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