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시각장애인 시청권 무시한 방송3사 등 차별진정 기자회견 개최

“1988년 22살의 가난한 청각장애인이었던 저는 ‘올림픽’과는 상관없는 그들만의 축제로 방관자처럼 지내왔습니다. 들을 수 없어 모든 소리를 눈으로 봐야하는 저 같은 청각장애인을 배려해주지 않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손의 손잡고’는 항상 그들만의 것이었습니다. 30년이 흘러, 청년은 52살의 중년으로 변했고, 올림픽이 다시 개최됐지만 저에게 올림픽은 1988년에 겪었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차별진정인, 청각장애인 당사자 윤정기-

▲ 김철환 페이스북
▲ 김철환 페이스북

(가)장애벽허물기 등 장애계단체는 지난 1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방송 중 청각·시각장애인의 시청권을 보장하지 않은 방송3사와 정부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은 “지난 9일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중계방송에서 수어통역과 화면해설 방송이 일부에서만 제공해 한국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나 화면해설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이 개회식 중계방송을 제대로 시청할 수 없었다.”며 항의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하면 방송사업자는 장애인의 방송시청을 위해 자막, 수어통역 화면 해설 등을 제공해야 하며, 국가와 지자체는 ‘장애인복지법’ 제22조, ‘방송법’ 제69조, ‘한국수화언어법’ 제16조에 의해 방송사가 올림픽과 같은 국제적 행사를 중계할때 장애인을 위해 자막, 수어통역, 화면해설 등을 제공하도록 요청해야한다.

이에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한국농아인협회,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상상행동 장애와여성 마실, 성동느티나무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문화공간 등 장애계단체는 지난 13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 행사인 올림픽 개회식에서 방송사와 정부가 당사자를 도외시 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당사자 배제한 ‘모두’의 축제, 올림픽… 화면해설과 수어통역 제공해야

▲ 차별진정인 윤정기 씨가 발언하고 있다.
▲ 차별진정인 윤정기 씨가 발언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차별진정인 윤정기 씨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린지 30년이 지났지만 청각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다고 꼬집었다.

윤씨는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에는 누가 어떻게 매달을 따고, 저 장면은 무엇인지, 사람들이 왜 환호성을 지르는지,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는지, 소리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나는 알 수 없던 것들.”이라며 “이후 30년 사이 ‘장애인차별금지법’과 ‘한국수화언어법’을 제정했으며, 많은 인식의 변화 등이 있었다. 하지만 (청각장애가 있는 나는) 1988년 당시나 지금이나 ‘벽’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 벽은 나 같은 청각장애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 벽이 높고 두꺼운 나머지 올림픽이 끝난 후 이어지는 패럴림픽에서도 (청각장애인은) 소외됐다.”며 “지난 30여 년 간 느낀 소외감을 반복하지 않고, ‘소통’과 ‘화합’의 올림픽을 느낄 수 있도록 수어방송과 자막해설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다른 진정인인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오병철 소장은 “평창 올림픽이 국내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많은 기대를 갖고 개회식을 기다렸으나,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나에게는 중계방송이 상당히 미흡했다.”며 “올림픽을 두 번이나 치르는 나라임에도 시·청각 장애인의 시청권을 고려하지 않는 등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고,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한탄했다.

오 소장은 “평창 올림픽 개회식 당시 아나운서가 여러 설명을 했으나, 김연아 선수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떻게 성화를 봉송했는지, 각국 선수들은 어떤 순으로 입장했는지 등에 대해 눈에 보이듯 자세하고 설명해주지 못했다.”며 “평양예술단 공연도 예술단이 올라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 없이 음악소리만 들렸다.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차별 없이 평등하게 모든 것을 누릴 수 없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평화’와 ‘평등’을 강조한 올림픽이라면 누구나 차별 없이, 배제당함 없이 즐길 수 있는 올림픽이 돼야하지 않느냐.”며 “이번 개회식을 보면서 ‘장애인은 한국 국민도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게 무슨 ‘평화’와 ‘평등’의 올림픽인가. 평창에 못가더라도 시청을 통해 올림픽을 누릴 수 있도록 정부와 방송사는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재발방지를 위한 정부와 방송사 대책 마련 ▲앞으로 진행할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패럴림픽 등 관련 행사 중계방송의 수어통역과 화면해설 지원 ▲수어통역과 화면해설을 근본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조치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송법’, ‘장애인복지법’, ‘한국수화언어법’과 관련 시행령 개정 등을 요구했으며, 기자회견 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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