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 1급 강창호씨, 활동지원 480시간서 노인장기요양 120시간으로 추락

일상생활 불가,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워’

제주 바다가 언듯 내려다 보이는 한적한 주택가 2층에 살고 있는 강창호(67, 지체장애 1급)씨는 50년 전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어 양 손만 움직일 수 있는, 최중증 와상 장애인이다.

유쾌한 성격 탓에 활동보조인들 사이에서도 인기 만점인 강씨는 소시적 음악감상실을 운영할만큼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다. 주변 사람들에게 음악을 씨디로 엮어 선물도 하고, 집으로 찾아오는 지인들과 담소도 나누며 평범한 하루를 보내던 강씨였다.

그러던 그의 일상은 국가가 정한 ‘노인'이 된 지난해 이후 악몽으로 변했다. 

만 65세가 되면서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대상에서 노인장기요양서비스 대상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기 전만 하더라도 하루 12시간씩의 활동지원을 받으며 때때로 병원에도 다녀올 수 있었다. 하지만 노인이 된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심한 감기때문에 병원 응급실에 다녀온 때를 제외하고는 그의 집 침대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

“이제는 대소변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 배를 눌러줘야 용변을 볼 수 있다.
예전(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때)에는 병원에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호스를 꼽아 연결했는데, 지금은 (병원에 갈 수 없어서) 그조차 불가능해졌다.

요양보호사가 오기 전까지는 소변이 꽉 차 배가 부풀어 올라 터질 것 같은 고통이 있더라도 참고 있어야 한다.

119? 병원까지 갈 수는 있지만 집에 데려다 주진 않는다. 어느 요양보호사가 2층인 여기까지 업고 올라오겠는가.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때나 가능했던 얘기다.”

하루에도 몇번씩 배를 눌러주지 않으면 소변을 배출할 수 없다고. 강씨는 활동지원 시간이 대폭 줄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 하나로 마음껏 용변볼 수 있는 자유가 사라진걸 꼽았다.
하루에도 몇번씩 배를 눌러주지 않으면 소변을 배출할 수 없다고. 강씨는 활동지원 시간이 대폭 줄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 하나로 마음껏 용변볼 수 있는 자유가 사라진걸 꼽았다.

강씨와 같이 중증의 장애가 있는 이가 ‘노인’이 된다는 것은 자립생활을 하더라도 또 다른 ‘시설’에 갇히는 것을 의미한다. 

만 65세 이상 노인이 되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에서 노인장기요양서비스로 전환하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던 장애인이 노인이 되면서 선택권이나 기존 지원을 받던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전환이 진행됐다. 일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잔류가 있었지만, 대부분 장기요양서비스로 전환됐고, 심지어 급여시간도 줄었다.

서비스 간의 질과 양의 차이로 인해 활동지원서비스가 더 필요할 시기에 대폭 축소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오전 8시에 요양보호사가 오면 용변을 보고 식사를 한다. 하지만 오전 10시 30분, 하루에 주어진  2시간 반의 시간 이후로는 혼자다.

이렇게는 살 수 없으니 수급비로 받은 돈 80만원을 들여 저녁 6시~9시까지 개별적으로 사람을 쓰고 있다.

예전에는 수급비 받은 돈으로 맛있는 걸 사서 지인들이나 활동지원인과 나눠먹기도 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강씨와 세상을 이어주는 안경. 잠망경 형태의 안경을 끼고 웹서핑은 물론 음악도 듣고 영화감상도 하고있다.
강씨와 세상을 이어주는 안경. 잠망경 형태의 안경을 끼고 웹서핑은 물론 음악도 듣고 영화감상도 하고있다.

강씨가 노인이 되기 전, 장애인활동비원서비스를 받던 때는 오전 8시~오후 2시, 오후 3시~저녁 9시, 저녁 10시~12시 등 480시간을 지원받았다. 그러다 지난해 9월, 노인장기요양서비스로 전환되며 120시간으로 대폭 줄어들어 오전 8시~10시30분까지가 강씨에게 주어진 시간 전부다.

일상생활은 물론 식사, 용변 등 활동지원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강씨는 수급비를 털어 저녁 6시~9시까지 개별적으로 사람을 사서 쓰고 있다.  

이로 인한 지출로 인해 강씨가 한달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은 3만 여원 남짓. 

지역 주민센터와 적십자사 등에서 제공하는 도시락과 밑반찬 서비스 등으로 그야말로 ‘연명' 중이다. 그나마 여동생 집에 얹혀살고 있기 때문에 주거비 등이 들지 않아 개별 서비스를 이용할 엄두라도 낼 수 있었으나 임대아파트 등에 사는 이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국민연금공단 사람 2명이 와서 (노인장기요양) 등급 심사를 했다. 지금의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고 해 계속 받을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니 등급 외 판정을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

거동은 고사하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 등급을 받겠나. 결국 1등급을 받았다.

이렇게는 살 수 없어서 주민센터에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포기한다고 했더니 ‘그러면 아무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멀쩡한 서비스를 나이가 들었다고 못받는게 말이 되는가. 하루 하루 사는게 고통스러워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마저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이 한탄스럽다.”

이론상으로는 65세 이상 노인이 되더라도 노인장기요양서비스 대신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으나 사실상 불가능하다. 관점자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김태훈 활동가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노인장기요양) 등급 외 판정을 받으려면 별도의 지원없이 일상 생활 영위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중증의 장애가 있는 이들은 언감생심, 이로 인해 왕성히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중증장애인들은 자신의 노동력과 일상생활의 가능함을 서류 등으로 증명해야 하는 웃픈 일이 빚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왜 성격이 다른 서비스를 연동해 놨을까, 이에 대해 김 활동가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 중에는 뇌졸증이나 노인성 질환 등으로 인해 장애 등록이 가능한 인구가 많기 때문에 서비스를 선택가능하도록 했을때 역전현상을 우려해 문제가 있는걸 알면서도 막고 있는듯 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7년 12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던 장애인이 만 65세가 되면 갑자기 생활특성 등이 변화하는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으로 노인복지의 대상으로 간주, 장애인을 자립생활의 주체에서 요양과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장애인을 고려한 수요자 중심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장애 특성과 환경에 따라 노인장기요양급여와 활동지원급여 중 선택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 개정을 권고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장관은 선택권을 부여할 경우 활동지원급여로 수급자가 편중될 가능성이 높아 추가 재정 확보 문제도 검토해야 하고, 유사 건강상태를 가진 65세 이상 장애 노인과 장기요양서비스를 받는 노인 간 서비스 급여량 차이에 따른 형평성 문제를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불수용 입장을 밝혔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최근 3년 간 만 65세 도래로 활동지원 수급에서 노인장기요양 수급으로 전환한 802명 서비스 이용시간'을 살펴본 결과  511명이 월평균 56시간 감소했으며, 무려 월 307시간이 줄어든 사례도 드러났다. 이들 중 활동지원 1등급 장애인 344명은 노인장기요양서비스로 전환 후 모두 서비스 이용시간이 감소했으며, 월평균 77시간, 일 평균 2시간 이상 줄어들었다. 

윤 의원이 지난달 29일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이에 대해 지적하자 박능후 장관은 “지적을 공감하며, 최중증 독거, 취약계층에 제한을 푸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며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았으나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제는 이 침대가 내 무덤이다.

젊을땐 작은 사업도 하며 물질적으로 어려움도 없었고, 지인들도 많아 외롭지 않게 살아왔지만 지금은 돈도 없고, 일상생활 영위 자체가 어려우니 사는게 고달프고 힘들다.

청와대에도 청원을 하고 보건복지부 등에 질의를 하고, (제주)시청, 동주민센터 등에도 물어봤으나 법이 그렇게 돼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사람나고 법났지, 가족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움직일 수 있으면 복지부 장관 집 앞에라도 찾아가 드러누웠을텐데.... 고통스럽지 않게 노년을 마감하고 싶은게 그렇게 어려운 꿈일까 싶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