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노숙농성 400일 맞아 긴급토론회 열려
국가폭력 피해당사자들 “과거 청산위해 국회 나서야 하지만, ‘해결 하겠다’만 되풀이 하고 있어… 진화위법 개정으로 과거사위 다시 꾸려야”

지난 11일 형제복지원 노숙농성 400일을 맞아 국회의원회관에서 '국가폭력' 관련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국가폭력 피해당사자들이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법(이하 진화위법)’ 개정안 통과와 법을 근거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이하 과거사위)’를 다시 꾸려 진상조사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형제복지원, 서산개척단, 선감학원, 한국전쟁 유족 등 이른바 국가에 의해 발생한 인권유린사건. 피해 당사자들은 여전히 그 날의 기억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당사자모임 한종선 대표의 경우 진화위법 개정과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지난 11일 노숙농성 400일을 맞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진화위법은 반민주적,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 폭력, 학살 등을 조사해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내는 등 과거사를 정리하기 위해 지난 2005년 제정됐다.

법에 따라 과거사위가 설립돼 활동했지만,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의 활동 연장 거부로 종료됐다. 이로인해 법적 활동 시한에 묶여 현재까지 과거사에 대한 진실규명은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일부 국회의원들이 ▲과거사위 활동 재개 ▲과거사위 활동 종료에 따른 조사 중단 방지를 위한 ‘과거사 재단’ 설립 등 과거사 정리를 위한 활동의 연속·지속성을 확보하려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진실규명 범위에 대한 여·야당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어 개정안 통과가 미뤄지고 상황이다. 또 진화위법 등 과거사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안건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다.

“국가폭력 피해 고통,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진상규명 위한 ‘진화위법 개정안‘ 통과 촉구

이날 토론회에서 피해당사자들은 겪었던 피해를 증언하며 “우리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진화위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과거사위를 다시 꾸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한종선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맞춰 사회정화사업이라는 명분으로 경찰과 공무원을 동원해 거의 인신매매와 마찬가지로 납치하듯 시민을 부랑인 임시보소에 감금한 사건입니다. 끌려간 사람들은 부랑인 수용소에서 강제노역, 폭행, 성폭행 등을 당했고, 513명의 사망자가 있었음이 형제복지원 기록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공무원의 인지만으로 죄를 짓지 않은 일반 시민을 가둔다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이며, 법치를 중히 여기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까?

부산 형제복지원에 갇혀있던 모든 수용자들에 대한 진상규명 조차 하지 않은 채 피해생존자들은 다시 사회로 내보내졌습니다. 수용자들은 돌아갈 곳도 없는 신세가 됐으며, 이미 신체·정신적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들은, 국가가 갱생을 위해 사람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사회정화사업과는 반대로 오히려 수 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진짜 부랑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돌아갈 곳도 없이 거리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었습니다. 운 좋게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또 다른 시설에 갇혀 지금까지도 자유를 꿈꾸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무턱대고 ‘국가가 사과하고, 배상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잡아갔고, 평생을 형제복지원 안에서 당했던 그 기억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묻고 싶은 것 뿐 입니다.

사회정화사업은 한 개인이 진행할 수 없는 일이기에, 진상을 규명해야 합니다. 그 뒤 국가의 책임이 드러나 사과를 할 부분이 있다면 국가가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실종자, 유가족모임 한종선 대표 증언-

선감학원아동국가폭력피해대책위원회 김영배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1942년 일제강점기에 소위 부랑아를 수용해 소년병으로 키우기 위해 설립했다는 선감학원은 1982년 시설이 폐쇄될 때까지 경기도에서 직접 운영한 시설입니다.

선감학원 원생들은 겨우 8~9살의 어린 나이로 집주소를 모르거나 옷을 남루하게 입었다는 이유로 납치되다시피 끌려와 감금된 채 생활해야 했습니다.

학교를 가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고, 매일 축사, 밭, 염전 등에서 중노동을 하며 지냈습니다. 밥조차도 제때 먹지 못하고, 그마저도 반찬이라고는 썩어가는 새우젓이 전부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선감학원 선생들의 모진 매타작으로 어린 몸은 여기저기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이런 지옥 같은 생활을 견디다 못해 어린 친구들은 헤엄을 쳐 바다를 건너 선감도를 탈출하려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친구의 싸늘한 시신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가족과 생이별한 채 고아 아닌 고아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마치 범죄라도 저질러서 외딴 섬에 격리 됐던 것처럼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마땅히 밝혀져야 했던 선감학원의 진실이 지금껏 묻혔기 때문입니다.”

-선감학원아동국가폭력피해대책위원회 김영배 회장 증언-

서산개척단진상규명대책위원장 정영철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1961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세워졌고, 당시 사회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사회우범자, 출소자, 범법자 등 실적위주 검거 방법으로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였습니다. 이들 가운데 선량한 청소년, 소녀들까지 불량인으로 취급해 붙잡아 왔고, 당시 끌려온 사람이 약 1,700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거주하던 곳은 형설촌이라 불렸으며, 집단수용소와 같았습니다. 정부는 서해 갯벌을 개척·개간해 1세대 당 1정보(3,000평)씩 무상 분배해 자립의 길을 걷도록 하겠다는 계획으로 당시 강제노역에 동원돼 불모의 땅을 개척·개간했는데, 형설촌의 생활은 비참함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습니다.

식량이 생산될 때까지 국가에서 계속 지원했어야 했는데, 개간·개척을 시작한지 5~6년 뒤 지원을 중단해 사업이 실패했습니다. 수용자들은 지원이 중단되자 도저히 살아갈 방도가 없어 탈출을 시도했는데, 도망가다 붙잡혀 와 두들겨 맞아 죽은 사람도 수 십 명입니다.

그동안 정부는 서산개척단 형설촌 주민과 지역농민들이 불모지를 개간하는데 조금의 지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온갖 수모와 인권유린을 당하면서도 피땀을 흘려가며 개척·개간한 땅인 잡종지를 정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농지로 용도변경하며 이것을 국유지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대별로 소득세를 징수했고, 농사를 지은 다음에는 국유재산을 무단으로 점유해 농사를 지었으니 대부 계약을 해서 임대료를 내라고 요구했습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현행 ‘국유재산 관리법’만을 근거로 저희와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실제로 정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국가가 만들었는데, 여기에 대해 책임을 지고 해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서산개척단진상규명대책위원장 정영철 회장 증언-

한국전쟁유족회 비상대책위원회 김광호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한국전쟁유족회 비상대책위원회 김광호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한반도의 기쁨도 잠시, 남북으로 갈라지는 민족의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남한의 국가권력은 공산주의 적대 정책을 통치의 수단으로 꾀했고 그 과정에서 반대하는 입장, 단체, 개인을 적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들은 예비검속, 국민보도연맹, 부역자 등으로 분류돼 적법한 절차가 무시된 채 재판도 없이 학살되거나 무차별적 체포, 불법 감금으로 인권을 유린당했습니다.

그 수는 대략 100만 명에 이릅니다. 학자나 기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국 각지의 위렵탑과 위령제 위패에 새겨진 희생자 수를 봐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 신청기간이 짧아 과거사위에 진실규명 신청을 못했거나 5·16군사 쿠데타에 의해 부관참시돼 2차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바로 과거사위를 재가동하는 일입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해 반성 없이 새로운 역사를 쓰려는 것은 산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전쟁유족회 비상대책위원회 김광호 위원장-

지난 2016년 9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과 유족, 시민단체가 ‘과거청산 입법토론회’를 공동주최했고, 그 뒤 진화위법 개정안 등 7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어 2017년 7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소병훈 의원,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 정의당 추혜선 의원, 유족,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가 ‘진실과 정의를 향한 과거청산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과거사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문제해결’을 100대 국정과제로 꼽았고,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 잡겠다’는 국회의원들의 한결같은 다짐과 약속이 있었기에 진화위법이 금방이라도 개정될 줄 알았지만, 올해 연말이 되도록 안건상정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70년동안 진상규명과 유해 발굴을 요구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사건 유족들과 국가공권력에 의해 납치, 감금돼 폭력과 강제 노역에 시달렸던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사건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라며 “국회와 정부는 과거의 잘못을 밝히고, 사회 정의를 세움으로 다시는 국가 범죄가 재발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국회와 정부에 진화위법 개정을 통한 과거사 진상규명, 배상과 명예회복을 위한 후속조치 실시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국가폭력에 희생된 유해 발굴, 추모·위령사업 실시 중·장기적 위령 추모사업 등 명예회복과 학술연구무화사업, 과거사 기록을 체계화 해 관리 할 수 있는 ‘진실화해 재단 설립’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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