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행위 해당한다”면서 판결에는 교통사업자 승강 설비 설치만
장애계 “1심과 사실상 같은 판결… 유감, 실망, 개탄”

국가와 지자체, 교통사업자들 상대로 제기된 장애인 등 교통약자 시외이동권 소송 항소심에서 법원은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0부(부장판사 배준현)는 25일 장애인 김모씨 등 5명이 국가와 버스회사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 소송 항소심 판결 선고에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의한 장애인의 이동 권리가 있고, 이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면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서 금지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차별구제와 손해배상 중 받아들여 진 부분은 ‘교통사업자가 휠체어 승강설비를 도입해야한다’는 판단 뿐이었다.

국가와 지자체에 대한 청구는 기각됐다.

이에 원고측 변호인과 장애계 단체들은 “국가의 의무가 인정되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긴 싸움 끝 항소심… 국가와 지자체는 빠지고 교통사업자 ‘일부’ 책임

해당 소송은 지난 2014년 휠체어 이용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의 시외이동권을 보장하고자 제기됐다. 지난 2015년 7월, 1심 재판부는 교통사업자들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반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경기도 등 행정기관에 대한 청구는 모두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소송 원고들과 법률대리인단은 항소를 제기했다.

긴 싸움이 계속됐지만 25일 항소심에 판결 선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판부는 “1심과 논리적 구조는 달라졌지만, 전반적인 청구인용 여부는 대동소이하다.”고 설명했다.

먼저 저상버스 도입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개정됐고, 최근 시행령 입법 예고가 된 상황이기에 구체화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손해배상은 “피고들의 고의나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과 관련해서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계획 등에 구체적 도입 시기나 범위 등을 확정하지 않았다고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나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불인정했다.

다만 교통사업자들에 대한 승강설비 책임이 인정됐다. 재판부는 “금호고속은 시외버스에 대해, 명성운수는 시내버스 중 광역·급행·직행좌석·좌석형버스에 대해 휠체어 승강설비를 제공하라.”고 판결했다.

장애계 “국가 책임 인정 없어 유감… 이번 판결에 실망”

판결선고 직후 장애계 단체는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지평의 김태형 변호사는 유감을 나타냈다.

김 변호사는 “1심은 행정기관에 대한 내용은 기각됐고, 교통사업자에 대해서만 일부 인용됐었다. 항소심도 사실상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경기도가 책임있는 자세로 정책을 펼치고, 법원도국가의 의무를 인정해 줬으면 진일보 된 정책이나 제도가 만들어 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현하는 한편  “향후 상고나 대응에 대해서는 법률대리인단과 장애계 단체와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상버스가 도입돼 있지 않은 시외 고속버스는 장애인들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 . ⓒ정두리 기자
저상버스가 도입돼 있지 않은 시외 고속버스는 장애인들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 . ⓒ웰페어뉴스DB

판결 선고를 지켜본 장애인 당사자들의 분통 섞인 목소리도 이어졌다.

서울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오영철 소장은 “아직도 휠체어 장애인은 버스를 타고는 서울과 경기도를 벗어날 수 없다.”며 “장애인들이 교통을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논리.”라고 토로했다.

이어 “국가와 지자체, 버스회사들은 실리와 이득만 생각할 뿐, 장애인 이동권을 배제하고 있다.”며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이번 판결에 다시 한 번 실망했다.”고 말했다.

한울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양선영 소장은 “저상버스가 없어 내 고향 전주에 버스를 타고 가본 적이 없다. 저상 버스가 생기면 고향에 마음 놓고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저상버스를 위한 기술적 문제는 없다. 정부가 예산을 들이거나 책임지지 않아서다.”라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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