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간 노동착취, 폭행, 명의도용 피해… 수사기관과 종교계의 대책마련 촉구
장애계,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 열어 재수사 촉구하고 고발장 접수

“32년간 사찰 내에서 지적장애인이 노동력착취와 폭행, 명의 도용 등의 피해를 당했습니다.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닙니다. 축사에서, 염전에서, 고물상에서, 중국집에서……지적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처해 있는 비참한 삶의 상황이 이렇습니다.

수사기관을 찾아가 호소해도 부실하게 수사하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합니다. 개탄스럽습니다.”

서울 소재 모 사찰에서 장애인이 수십 년 간 노동력착취와 폭행, 명의도용 등의 피해를 당한 사건이 알려졌다.

하지만 노동력착취와 명의도용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폭행 혐의에 대해서만 약식기소 재판이 진행됐다.

이에 10일 오전 장애계단체가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는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부실수사를 규탄하는 한편 “사찰에서 발생한 장애인에 대한 노동력 착취와 학대사건에 대해 철저한 재수사를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에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목소리를 모았다. 

더불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기자회견이 끝난 뒤 해당 사찰 주지스님을 노동력착취와 피해자 명의도용으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장을 접수, 조계종 총무원을 항의 방문해 종교기관의 책임 있는 대처를 촉구할 예정이다.

서울 소재 사찰에서 벌어진 32년간의 학대… 쉴 틈 없이 일하고, 못한다고 맞고, 명의도용으로 49개 계좌 개설돼 수 억 원 펀드 투자

기자회견을 진행한 장애계에 따르면 사건은 이렇다.

지적장애가 있는 A씨는 1985년 서울 소재 절에 들어간 이후 32년간 노동력 착취와 폭행, 명의도용 등의 피해를 당했다. 쉴 틈도 없이 밥 먹는 시간만 빼고는 일만 했고, 일을 잘 하지 못한다고 툭하면 맞고 괴롭힘을 당했다.

그러던 중 2017년 말 이곳에서 가까스로 탈출해 동생에게 도움을 청했고, 서울노원경찰서, 서울북부고용노동지청,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 수사를 요청했다.

사찰에서 피해자 명의를 도용해 아파트 두 채를 매매한 사실, 피해자 명의로 49개의 계좌가 개설돼 수 억 원에 달하는 돈이 펀드에 투자됐던 사실을 피해 장애인 가족들이 뒤늦게 발견해 수사기관에 수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피해 장애인을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피해자의 호소를 묵살했고, 명의를 도용해 금융·부동산 거래를 한 점에 대해서도 수사대상에 포함하지 않고 불기소 처분했다는 것이 장애계의 설명이다.

가해자는 폭행에 대해서만 단순폭행죄로 약식기소 재판을 받고 있다.

더욱이 피해 장애인 A씨와 함께 탈출한 지적장애인 1명은 다시 절로 보내졌고, 지적장애인으로 의심되는 또 다른 1명을 포함해 2명의 피해자가 있어 즉각적인 수사와 분리조치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학대피해 장애인 외면하는 수사기관, 종교계의 안일한 인권감수성도 문제”

장애계는 수사기관의 철저한 재조사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수사기관은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에서 정한 ‘사법 및 행정절차에서의 차별금지 및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가 있다.

더불어 지난 4월 대법원이 염전노예사건의 국가배상 판결에서 ‘도움을 청한 장애인을 염주에게 되돌려 보내기까지 한 경찰관의 잘못’, ‘노동실태 등 철저한 조사 없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가해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노동청 근로감독관의 잘못’ 등이 밝혀져 수사관행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관행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장애계의 입장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 김강원 국장은 “수사기관에 의뢰하고 호소해도 부실하게 수사하거나 수사조차 안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학대 피해 장애인을 외면한 수사기관은 반드시 각성하고 재조사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아직 사찰에 남아있는 피해자로 추정되는 지적장애인에 대해서도 조사를 실시하고, 피해자에 대한 내실 있고 철저한 지원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매번 사건이 알려지면 경찰청과 보건복지부 등은 대책을 내놓지만 요식행위일 뿐, 사건은 계속되고 있다.”며 “형사 사법 절차가 장애인을 지켜내는 기관으로 자리 잡지 못하면, 아무리 장애인 관련 기관들이 있다 하더라도 장애인 학대 상황은 발견되지도 지켜지지도 못한다.”고 호소했다.

종교계 역시 책임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강원 국장은 “특히 종교시설은 종교라는 이유로 각종 감시망을 벗어나 있다. 종교를 가장해, 선의를 가장해 ‘돌본다’는 명목으로 수급비를 착복하고 폭력과 학대를 해왔던 유사 사례들이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고, 김성연 사무국장 역시 “종교계의 안일한 인권감수성이 문제다. 종교는 지역사회에서 평등하고 행복하게 사는 바탕이 돼야 한다. 반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종교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