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집이 삶을 삼키는 비극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성명] 집이 삶을 삼키는 비극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 웰페어뉴스 기자
  • 승인 2019.08.2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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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행동 성명서

- 전주 여인숙 화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며 -

어제, 전주시 완산구의 한 여인숙에서 발생한 화재로 세 명의 거주자가 목숨을 잃었다. 노구의 몸에 고단한 노동과 열악한 주거를 감내하고, 끝내 그 고통의 총체였을 화마에 목숨을 잃은 고인들을 추모하며 영면을 빈다. 집 답지 못한 곳에 산다는 것이 이유가 된, 집이 삶을 삼키는 죽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작년 1월, 서울 종로구의 한 쪽방에서 난 불로 주민 한 명이 숨지고, 며칠 지나지 않아 같은 구의 여관에서 불이 나 여섯 명이 숨졌다. 같은 해 겨울에 발생한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는 일곱명이나 되는 인명을 집어 삼켰다. 쪽방, 여관, 고시원, 여인숙... 집이 가난한 이들에게 범접할 수 없는 상품이 된 이후 이런 ‘아류’ 집들은 가난한 이들을 노렸고, 열악한 것에 비례해 높은 임대료는 거주민들의 목숨값 마저 요구하고 있다. 

나름의 대책은 있다. 국토부는 여인숙, 고시원, 쪽방 등과 같은 비적정 주거 거주자들에게 매입 또는 전세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주거복지로드맵’(2017.11)과 ‘취약계층·고령자주거지원방안’(2018.10)을 통해 이를 활성화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입주대상의 확대와 생계·주거급여 수급자에 대한 보증금 면제를 제외하고는 아직 이렇다 할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입주신청시 병역과 결혼, 알코올과 질환에 대한 정보, 수입 대비 저축액 비율 등을 신청서 상에 빼곡히 써 넣도록 하는, 타 제도에는 유례없는 차별적 제도 운영의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물량 자체가 태부족한 고질적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국토부 훈령은 “기존주택 매입임대·전세임대주택 공급물량의 15퍼센트 범위”로 물량을 정했으나, 집행에서는 아무런 준거가 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16년 이후 매해 1,000호 남짓한 물량을 공급하고 있는데 이는 전체 매입·전세임대주택 물량의 2.5%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올해 7월 훈령 개정으로 입주대상자가 확대되어 특단의 공급확대 계획이 없다면, 물량 부족 문제는 한층 심화할 수밖에 없다. 실제 참사가 난 전북지역의 경우 제도 시행 이후 현재까지 공급된 주거취약계층 매입·전세임대주택 총량은 고작 36호에 불과하다. 과연, 고인들이 생전에 이 제도를 신청했다면 선정될 수 있었을까?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 수나 있었을까? 

전주시 완산구에 따르면 화재가 난 여인숙은 숙박업으로 신고돼 있었으나 건물은 주택으로 등록되었다 한다. 숙박시설 등 건축물의 용도를 정한 건축법 개정(1999.2.8) 전에 신고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또한 여인숙 운영자는 공중위생법이 정한 위생교육도 매년 수료하여, 해당 여인숙은 소방안전과 관리의 행정적 간섭에서 온전히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었다. 복수의 언론에 따르면 7~80대의 고인들은 여인숙에서 월세를 내고, 폐지를 수집하며 생활하였다한다. 두평 밖에 되지 않는 오래된 목조 건물에서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고 방 안에서 취사생활을 해야 했다. 여인숙은 머물 뿐 떠날 수 없는 그들의 집이었다. 개정 공중위생관리법(2012.1.10)은 생활형 숙박업 조항을 신설, 이곳에 취사시설과 창문, 객실별 욕실 등을 설치하도록 하였다. “장기 투숙자를 대상으로 객실 내에 취사시설까지 갖추고 호텔보다 저렴한 가격에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숙박업”(공중위생관리법 시행령 개정문)을 제도 내 포섭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소위 ‘레지던스’라 불리는 생활형 숙박시설은 가난한 이들의 지불능력 훨씬 너머에 있다. 결국 주거취약계층은 열악하고 낡은 목조 슬라브조의 건물에 만족해야 하고, 일반 숙박시설의 방 안에 휴대용 버너를 들여야 한다.

집 답지 못한 곳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이 빼앗기는 일이 반복될 때 마다 우리는 모든 비적정 주거지에 공히 적용되는 주거기준을 마련하고,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라 요구해 왔다. 올해 서울시는 ‘서울형 고시원 주거기준’을 발표하였으나 정책 지향을 선언한 것에 불과하고, 국토부 역시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국토부 고시) 개정 논의를 하고 있으나, 이 역시 고시원에 한정된 대책으로 주거지로 이용되는 모든 비적정 거처를 아우르지 못한다. 영국의 다중주거시설에 대한 허가제도(무허가 시 무제한의 벌금 부과 등 제재), 미국의 SRO에 대한 건축 기준(주택바우처를 받기 위해서는 기준을 충족해야 함)등을 참고하여 모든 비적정 주거지에 최소한의 주거·안전 기준을 마련하고 준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건축법, 다중이용업소법, 공중위생법 등 기존 개별법들의 틀 안에서만 사고할 일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약 37만 가구(주택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 2018)가 열악한 비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다.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그곳이 어디든 모든 비적정 주거지에 대한 주거·안전 기준은 속히 마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