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목소리 찾기’ 캠페인에 “농인에게 필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존중”
“농인 위한 기술적 노력은 ‘긍정’… 수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우려’

23일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장애계단체는 KT '목소리 찾기‘ 이벤트에 대한 차별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했다
23일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장애계단체는 KT '목소리 찾기‘ 이벤트에 대한 차별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했다

“저는 목소리를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제 목소리는 수어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I기술을 통해 목소리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으며,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 농인 인권활동가 김유진 씨 발언 중

지난 1일 KT에서 공개한 ‘마음을 담다’ 캠페인 영상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해당 영상은 인공지능(AI) 기술로 농인(청각장애인)의 가족이나 친인척의 목소리를 합성, 이를 농인의 목소리로 구현해 선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적 공헌 활동이라는 호응이 쏟아진 반면, 자칫 농인의 언어인 수어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조장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수어로 소통하는 것이 아닌, 가상의 목소리로만 대화가 이뤄지는 모습 속에서 비장애인들에게 목소리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것.

23일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이하 장애벽허물기) 등 장애계 단체는 KT 목소리 찾기 이벤트에 대한 차별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제기했다.

진정서에는 ▲장애인관련 광고 제작 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안 마련 ▲목소리 찾기 KT광고 유보 ▲30일까지 진행 중인 목소리 찾기 신청자 모집 유보 ▲농인 가족의 목소리를 수어 등으로 변환하는 광고 제작 등이 담겼다.  

KT가 공개한 '마음을 담다' 캠페인 영상. ⓒKT
KT가 공개한 '마음을 담다' 캠페인 영상. ⓒKT

“농인을 위한 광고 취지는 동감… 수어가 음성언어보다 낮은 언어라는 인식 확산 우려”

KT의 이번 캠페인은 청각장애인 김소희 씨의 목소리를 인공지능 음성합성 기술로 구현해 선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영상은 23일 기준 1,000만 뷰를 넘어갈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자아냈으며, TV광고로도 송출되고 있다. 또한 오는 30일까지 농인을 대상으로 ‘목소리 찾기’ 신청자 모집도 받고 있다.

농인을 위한 노력이 담긴 광고이지만, 농인의 언어인 수어가 자칫 음성언어보다 낮게 보일 수 있다는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 장애벽허물기의 주장이다.

여러가지수어연구소 강재희 대표.
여러가지수어연구소 강재희 대표.

여러가지수어연구소 강재희 대표는 “분명한 것은 농인의 언어는 수어다. 지난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돼 수어와 음성언어가 동등한 것은 물론, 한국어의 하나로서 인정받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KT의 광고를 보면, 농인들이 수어가 아닌 음성언어를 원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며 “음성으로 가족을 연결하는 것도 좋지만, 수어가 차별받고 있다는 것을 보아야한다. 또한 광고를 통해 이러한 차별이 확산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애벽허물기 김주현 대표는 “농인을 위한 KT의 노력이 엿보인 영상이었다. 하지만 해당 영상이 광고로 퍼져나가며, 일반 국민들이 음성언어가 더 우월하게 비춰져 수어는 낮은 언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농인 가족 간 수어로 소통하는 모습 ‘無’… “수어와 농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 지적

특히 소통의 방식을 영상 속에 담아내는 방식에도 아쉬움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해당 영상에는 농인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준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목소리를 찾고 싶은 농인들을 모집하는 등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 끈을 이어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는 반응이다.

다만, 영상 속에서는 농인 당사자와 가족 간에 소통을 수어로 풀어가지 않고, 기술적으로 구현된 음성언어로만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 부분에서 영상 의도와는 달리, 음성언어를 선택하게 하는 ‘사회적인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칭찬해줄만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농인이 있는 가족 간에 수어로 소통을 못하니, 음성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왜 농인이 있는 가족 간에 수어로 소통이 되지 않는가.”라며 질문을 던졌다.

이어 “이는 수어에 대한 편견, 농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수어가 아닌 음성언어를 사용하도록 광고를 하면 사회에 내재돼 있는 편견은 더 증폭되고 확대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장애벽허물기 김철환 활동가는 “이번 사태는 인공와우 보급을 시작할 때와 닮아 있다. 그 당시 많은 회사들이 인공와우에 대한 광고를 하면서 청각장애를 완치할 수 있고, 청각장애가 불행인 것처럼 묘사하는 일이 벌어졌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발전하는 기술은 전 인류가 혜택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당사자와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잘못된 차별과 편견이 발생할 수 있다.”며 “앞으로 KT만이 아닌, 다른 기업들에서도 이 같은 광고들이 쏟아질 우려가 있어 차별 진정을 제기할 것,”이라고 진정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KT '목소리 찾기' 캠페인 차별 진정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KT '목소리 찾기' 캠페인 차별 진정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장애인신문·웰페어뉴스 박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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