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수용·노역, 사망 등 인정 추가 105명… 총 657명 사망 확인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국가의 공식 사과, 피해회복 조치 권고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통해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마침내 형제복지원 사건이 35년 만에 첫 진실규명이 이뤄졌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4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서 제39차 위원회를 열고,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라고 판단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형제복지원은 지난 1960년 형제육아원으로 시작해, 1992년까지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강제수용하고, 수용 생활 중 강제노역과 가혹행위 등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발생한 시설이다.

앞서 지난 2020년 12월 10일 진실화해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1호 사건으로 접수했다. 지난해 5월 조사개시 이후 1년 3개월 만에 첫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번 진실규명은 전체 신청자 544명 가운데 2021년 2월까지 접수된 191명을 대상으로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과정에서 형제복지원 설치와 운영에 국가의 적극적 지원과 인권침해에 대한 묵인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다수의 자료를 최초로 확보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1987년 부산지검 울산지청 수사·공판 기록과 부산 각 경찰서 소장 즉심사건부, 구류자명부, 소년범죄사건처리부, 각 시설별 아동카드, 형제복지원 신상기록카드 등을 비롯해 보안사 문건, 정신과 약물 투입 목록 등을 입수했다.

그 결과, 진실화해위원회는 사건 35년 만에 ▲부랑인 단속 규정의 위헌·위법성 ▲형제복지원 수용과정의 위법성 ▲형제복지원 운영과정의 심각한 인권침해 ▲의료문제, 사망자 처리 의혹 ▲정부의 형제복지원 사건 인지, 조직적 축소·은폐시도 등을 밝혀냈다. 

이날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화해위원회 대회의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통해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무차별 부랑인 수용 근거 ‘내무부 훈령 410호’… 위헌·위법 확인

이번 진실규명에서 진실화해위원회는 무차별한 부랑인 단속과 형제복지원 수용의 근거인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인 내무부 훈령 제410호(1975년 12월 15일 제정)의 위헌·위법성을 확인했다. 

해당 훈령은 부랑인이라 지목된 사람을 어떠한 형사절차도 거치지 않고, 시·군·구청과 경찰이 합동으로 구성한 부랑인 단속반으로 하여금 수용시설에 보내 기한의 정함이 없이 강제수용하도록 했다. 

조사 결과, 내무부 훈령 410호는 법률유보 원칙,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적법절차 원칙, 영장주의 원칙, 체계 정당성을 모두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형제복지원 자료집. 원생들이 건물을 짓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형제복지원 자료집. 원생들이 건물을 짓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사망자 총 657명… 국민 사망률 대비 13.5배 높아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1986년까지 총 3만8,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1984년에는 최대 4,355명에 육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를 통해 밝혀진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는 657명이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5명이 많은 수치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최초로 확보한 사망자 통계, 사망자 명단 등 14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이같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한 형제복지원 수용자 중 ‘응급 후송 중 사망’ 등 의문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사망진단서도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의 사망자 수는 일반 사망보다 높게 나타났다. 

1986년 한해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는 135명으로, 당시 국민 사망률 0.318%보다 13.5배나 높은 4.3%로 집계됐다. 

결핵사망률은 더 높게 나타났다. 1986년 형제복지원의 결핵사망률은 0.41%로, 당시 국민 결핵사망률 0.014%와 비교해 29.2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규명 결과를 듣고 눈물을 보이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규명 결과를 듣고 눈물을 보이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정신과 약물 과다 투약으로 ‘화학적 구속’ 정황 드러나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에게 정신과 약물을 과다 투약해 ‘화학적 구속’이 이뤄진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 1986년 형제복지원에서 1년간 구입한 클로르프로마진(조현병 증세 완화제)은 총 25만 정이다. 이는 1년간 342명(당시 정신요양원 수용인원 총 395명)이 매일 2회 복용할 수 있는 양이다. 

1986년 형제복지원 회계에서 지출된 ‘정신환자시약비’는 약 1,267만 원으로, 일반환자시약비 약 1,015만 원보다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진실화해위원회가 최초로 입수한 형제복지원 정신과 약물 구입 목록에는 정신과 전문의약품으로 정신분열증과 양극성장애 치료제인 ‘할로페리돌’, 간질성 경련과 부정맥치료제인 디펠과 마약류에 해당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인 ‘바리움’, ‘달마돔’ 등도 포함돼 있었다. 

이밖에도 형제복지원은 수용자 가운데 부적응자나 반항자에게 임의적으로 약물을 투여하고, 정신요양원을 소위 ‘근신소대’로 활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 현장.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 현장.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보안사, 안기부 등 형제복지원 집중 관리… 실태 드러나자 조직적 은폐 시도

진실화해위원회는 정부 부처와 기관들이 형제복지원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실태가 드러나자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하려했던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진실규명에서는 문건을 확보해 보안사가 형제복지원을 집중 관리한 것이 밝혀졌다. 

앞서 보안사는 형제복지원에 수용되어 있는 납북귀환어부 김모 씨(당시 29세)를 감시하기 위해 보안사 요원을 위장 침투시켰다. 

보안사는 1986년 5월 8일 이 수사공작을 ‘갈채공작’으로 명명하고 승인했다. 보안사는 ‘형제복지원을 불순분자에 의한 조직적인 집단행동 유발가능성이 높은 집단’, ‘교도소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를 하는 곳’으로 판단했다. 

보안사는 당시 형제복지원 원장으로부터 서약서를 받고, 지속적으로 관리체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또한 안기부 주재로 관계기관이 모여 형제복지원 대책회의를 했다는 보안사 문건도 최초로 공개됐다. 

지난 1987년 3월 24일 안기부 2국장 주재로 안기부 회의실에서 ‘형제복지원관련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열렸다. 형제복지원 원생 30여 명이 집단 탈출해 실태를 폭로하고, 다음날 대책회의가 열린 것이다. 

같은 해 3월 26일에는 청와대 정무 2수석, 안기부 2국장, 내무부 차관, 대검 차장, 치안본부장, 총리비서실장, 부산시 부시장 등 고위급이 참석한 가운데 형제복지원 개편 방안을 논의했다. 

이와 함께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지고 검찰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보건사회부가 부랑인 강제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진실화해위원회는 부산시와 경찰, 안기부 등 부산지역 모든 기관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것으로 확인했다. 

부산시의 경우 피해자와 가족들의 진정·소송을 회유하고, 원장과 측근들이 다시 형제복지원 법인을 장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줬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근식 위원장이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이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화해위원회 “피해자에 공식 사과, 피해회복 위한 실질적 조치해야”

진실화해위원회는 해당 사건을 ‘경찰 등 공권력이 적극 개입하거나 이들의 허가와 지원, 묵인하에 부랑인으로 지목한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절차 없이 단속, 형제복지원에 장기간 자의적 구금한 상태에서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 실종 등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결론 내렸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가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회복,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국가는 각종 시설에서의 수용·운영 과정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시행해야 하고, 국회는 지난 6월 2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을 조속히 비준 동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부산시에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조사·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위해 적합한 예산, 규정, 조직을 정비할 것을 권고했다.

향후 진실화해위원회는 관계기관에 권고사항을 통지하고, 이번 진실규명에는 포함되지 않는 진실규명 신청자들에 대해서도 조속히 단계적으로 진실규명에 나설 계획이다.

진실화해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은 “지난 2005년 출범한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 3건의 시설 강제수용 신청 건이 접수됐으나, 당시에는 시설수용 문제를 ‘국가범죄’로 인지하지 못했다.”며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에 의한 총체적 인권침해 사건임을 종합적으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이어 “오랜 시간 기다려온 형제복지원 사건의 인권침해 진실이 드러난 것은 피해자와 유가족, 사회단체 등이 기울인 노력의 결과.”라며 “2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의 계기가 된 이번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진실규명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장애인신문·웰페어뉴스 박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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