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포럼 등 13개 단체, 장애인거주시설 정책에 대한 심의 청구
“시설은 장애인에 대한 구조적 차별… 탈시설 정책 적극 검토해야”

장애계가 유엔에 국내 장애인거주시설 정책에 대한 심의를 요청하고 나선다.

16일 한국장애포럼 등 13개 장애계·시민사회단체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한국의 장애인거주시설 정책에 대한 직권조사를 신청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8일 국회 본희의에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 선택의정서 가입동의안’이 통과됐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지난 2006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192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채택된 국제 조약이다. 우리 정부는 2007년 3월 협약에 서명했고, 2008년 12월 국회 비준 동의를 거쳐 2009년 1월 국내에 발효됐다.

선택의정서는 협약 당사국이 협약을 위반한 경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를 통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개인통보’ 제도와 ‘직권조사’ 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협약 부속문서다.

즉, 국내법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장애인권 문제에 대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조사와 심의를 받을 기회가 제공되게 된다.

우리나라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한 이후 선택의정서 비준을 미뤄왔다. 이후 장애계는 계속해서 선택의정서 비준을 촉구했고, 마침내 국회 문턱을 넘으며 지난 14일 국내에 발효됐다.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에 따른 ‘직권조사 신청 계획 발표 기자회견’ 현장. ⓒ국회의사중계시스템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에 따른 ‘직권조사 신청 계획 발표 기자회견’ 현장. ⓒ국회의사중계시스템

“탈시설은 협약에 명시된 권리… 시설 수용 폐지돼야”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한 목소리로 ‘탈시설 정책 추진’을 강조했다. 탈시설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기본적 권리인 만큼,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앞서 지난해 9월 유엔장애권리위원회는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공개한 바 있다.

해당 문서에는 탈시설의 목적과 과정을 설명하는 한편, ‘시설 수용은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지역사회에 참여할 권리를 침해한다’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이 모든 형태의 시설 수용을 폐지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협약 당사국이 시설 수용 생존자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이에 따른 배상 절차를 마련할 것을 명시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단체들은 유엔장애권리위원회에 국내 장애인거주시설 정책에 대한 직권조사를 신청하고, 정부가 장애인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도록 촉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한국 정부 직권조사 첫 번째 의제가 탈시설이 돼야 하는 까닭은 분명하다. 한국 정부의 1·2·3차 국가보고서에 대해 유엔이 가장 많은 코멘트한 부분이 바로 탈시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시설의 존재는 장애인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의미한다. 당사자를 위한 사회적 돌봄을 방기한 채, 오로지 가족들에게 돌봄의 책무를 부과한 체계 밑바닥에는 시설 정책이 있다.”며 “이제라도 정부는 탈시설 정책을 적극 검토하고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의원은 “국회 운영위원회 시절에 탈시설 문제를 집중 제기한 적이 있는데, 안타깝게 반대의 목소리에 부딪친 적이 있다.”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 실질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나서주길 바란다.”고 힘을 보탰다.

탈시설 당사자와 부모들의 호소도 이어졌다.

광진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신유다 활동가는 “7년간 시설에서 생활하며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던 중 상담을 받아 자립지원주택으로 가게 됐고, 현재는 센터에서 활동가로 일하며 자립해 살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일해서 받은 월급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어 좋다. 축구를 하면서 건강관리도 하고, 주말에는 취미생활도 즐길 수 있다. 시설 안에서는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모든 장애인이 자립의 꿈을 이루고 살아가길 바란다. 정부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소망을 전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수정 서울지부장은 “우리 사회는 장애인의 돌봄과 지원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체계를 갖고 있다.”며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거주시설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부모들이 원한다’고 말하곤 한다. 더 이상 그 삶의 무게를 거주시설을 유지하는 핑계로 삼지 말아주길 바란다.”며 “정부가 나서서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존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체계 구축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장애인신문·웰페어뉴스 박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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