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농인이 모든 생활영역에서 권리가 보장되는 수어 환경조성을 촉구한다

-제43회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차별은 없이’, ‘기회는 같이’, ‘행복은 높이’를 슬로건으로 한 마흔 세 번 째 장애인의 날, 한국농아인협회(채태기 회장)는 농인이 더 이상 차별받지 않고, 공정한 사회참여의 기회가 보장되는 세상에서 살아 갈수 있는 환경조성을 요구한다. 농인은 교육, 복지, 보건·의료, 노동, 문화·예술, 사법·행정 등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접근성의 제약으로 사회적 장벽을 경험하고 있다.

농교육 현장은 조기교육에서부터 수어가 배제되고, 통합교육에서는 수어통역 자체가 거부되어 제대로 된 수어중심의 교육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 청각장애 학생들이 수어를 통한 말과 글을 배우고 있지 못해 수어 언어권의 침해로 농교육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은 농학교에 농인의 언어인 수어가 사라지고, 농학생이 없다. 그 이면에는 소리를 듣는 것이 우월하다는 사회적 인식(청능주의)가 맞물려 무분별한 인공와우 수술 확대가 또 하나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인이 아닌 부모의 결정으로 시행되는 와우 수술은 ‘청각장애의 극복’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현실은 이들에게 청인도 농인도 아닌 또 다른 사회적 낙인을 덧씌우고 있다.

농인은 건강권에 있어서도 다양한 차별과 제약을 겪고 있다. 장애인실태조사(2020년)에 따르면 다른 장애유형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병원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실은 장애인건강권법이 시행되면서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정병원에서 조차 수어통역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진료를 받고도 정보를 알 수 없는 차별적인 현실에서 농인은 건강하게 살 권리마저 포기하게 하고 있다.

농인의 의사소통 지원을 위한 수어통역서비스는 사회전반의 여러 영역에서 요구되어 지면서 전문성을 갖춘 수어통역사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수어통역서비스의 질 역시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그러나 통역 품질에 대한 우려는 국립국어원의 한국수어활동조사(2020년)에서 농인의 34.6%가 수어통역사의 통역 품질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최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방송 뿐 아니라 인터넷·모바일 환경에서도 접근권 향상으로 수어방송의 편성율이 확대되면서 통역의 품질에 대한 농인의 관심과 우려는 어느 때보다 크다.

한국수화언어법이 시행되고, 코로나19로 공공영역의 수어통역 지원이 확대되면서 한국수어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아졌다. 또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수어를 영상으로 정보화하여 수어 기반의 의사소통 접근이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한국수어는 아직도 시혜적이고 자선적인 차원에서 제공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서비스로만 인식되고 있어 권리로서의 보장은 미약하다.

한 사람의 농인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 의사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수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차별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수어로 제한 없이 지식을 배울 수 있어야 하며, 한국수어로 모든 지식이 기록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한국수어를 습득하고, 학습할 수 있는 권리와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한국수어가 자유롭게 통역되고 번역되는 수어 친화적인 환경으로 우리사회가 변화될 때 농인에 대한 청인들의 시선도 변화될 수 있다.

2023. 4. 19.

한국농아인협회

*칼럼과 기고, 성명과 논평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