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아인협회

[성명] 무너진 농교육 개혁,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한국농아인협회는 6월 3일 농아인의 날 맞아 붕괴 된 한국 농교육의 재구조화와 청각장애학생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또한 수어 없는 청각장애인 교육환경이 청각장애학생을 또래에게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현실을 국가와 사회가 인식하고 농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윤석열 정부가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한다.

농교육은 2007년 완전한 변환기를 맞았다. 농학교(청각장애학교) 학생 수가 일반학교 통합교육 학생에 처음 역전되어 현재는 전체 청각장애 학생 중 19.9%만이 농학교에, 80.1%는 일반학교.

반면 농학교는 통합교육 정책 방향으로 인해 정체성과 방향성을 잃고 중증·중복 장애학생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구화중심의 교육방식과 수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교사로 수어가 교수·학습언어로 사용되지 못하는 환경 등 구조적 문제로 교육의 질이 낮아지고 청각장애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외면하는 상황이다.

정당한 편의 제공, 수어가 전제된 교육

통합교육을 받고 있는 청각장애학생의 상황 역시 좋지 않다. 통합교육 환경에서는 다양한 교육적 편의와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음성언어 중심의 교육환경은 물리적 통합에만 그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장애인교육법(IDEA)에 따라 수어통역사들이 배치되고, 40개 주(洲)에서 2015년부터 수어를 제2외국어로 인정해 교과목으로 신설해 농인과 관련된 전문지식과 수어능력을 갖춘 수어교사를 채용하고 있다. 또 영국과 일본의 일부 농학교에서는 이중언어로 농교육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통합교육은 청각장애학생들이 의사소통 문제로 학교생활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래학생과의 상호작용을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수어 교과목 조차 없다. 또한 정당한 권리인 수어통역과 자막, 속기 등이 제공되고 있지 않으며, 이를 요구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정당한 권리조차 외면되어 수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청각장애학생의 경우 학습권 침해는 물론 학교생활 전반이 고립과 격리의 생활이다. 청각장애학생은 개별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한 채 자신의 발음을 신경쓰며, 교사와 친구들의 말소리를 놓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수학급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청각장애학생은 함께 공부하고 있는 다른 유형의 장애학생(발달장애학생)을 지원하고, 심지어 특수교사의 보조교사 역할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중언어 교육 필요

 현재 학교와 사회는 청각장애학생에게 수어보다 ‘듣고 말하기’를 가르치려 하고, 인공와우와 보청기 등 청각보조장치로 듣고 청인처럼 소통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인공와우는 수술 후 청각적 언어이해력을 갖추는데 최소 수년간의 시간이 요구되는 청력훈련과 언어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후 얻게 되는 음성언어 구사력은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어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한국어를 제2언어로 읽기 및 쓰기 능력을 배양하는 이중언어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교육은 한국어 중심 교육으로 진행되면서 농학교에서 조차 수어교육이 없으며, 통합교육을 하는 일반학교는 수어교육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어 수어교육을 경험조차 할 수 없다. 또 다수의 청각장애아동의 부모들은 자녀가 음성언어에 익숙해지길 바라며, 특히 인공와우 수술을 시킨 부모는 자녀가 구화를 배우길 바라며 학교에서 수어교육 받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장애유형별 전문성 갖춘 교사 양성 및 배치 필요

한국어 중심의 농교육환경은 수어를 못하는 교사의 배치로 한국수어가 교수-학습언어로 사용되지 못하는 학교가 양산되면서 수어 없는 농학교가 만들어지고 있다. 농교육 붕괴의 또 다른 이면에는 교사의 전문성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특수교사 양성은 장애영역을 고려하지 않는 보편성을 기반으로 교사를 양성하고 있어 대학들은 특수교육대상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발달장애를 중심으로 과목을 개설하고 있어 장애영역별 특수성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 대학에서 배출되는 농학교 교사는 청각장애에 대한 특수성과 관련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현장에 나오고 있어 전문성 약화가 곧 교육의 질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피해는 청각장애학생이 고스란히 당하고 있어 장애영역별 전문성을 갖춘 특수교사가 교육현장에 배치 될 수 있는 교사 양성체계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교육부의 농교육 실태 파악 부재

 또 농학교·농교육 붕괴의 책임은 장애학생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의 안일한 행정에서도 찾을 수 있다. 현재 특수교육은 발달장애학생 중심의 교육정책이라 할 정도로 시·청각장애학생을 비롯한 소수유형의 특수교육대상자들은 교육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이러한 정책적 기류는 교육부의 특수교육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현재 청각·시각장애 학교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증의 중복장애학생으로 인해 학교와 교육의 정체성에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들 특수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중복장애학생의 현황조차 파악 하고 있지 못하다. 이뿐 아니라 청각장애학교 교원의 수어통역사 자격 취득 여부에 대한 실태 역시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국농아인협회는 무너진 농교육을 전면 재구조화하여 수어 중심의 농교육 환경이 조성되어 청각장애학생들이 배제되지 않고, 청인학생들과 동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대책을 윤석열 정부와 교육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한국 농교육의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농학교와 일반학교(통합교육)의 농(청각장애)교육 실태조사를 요구한다.

둘째, 수어중심의 농교육 환경을 조성하라

- 농학교 교육과정에 수어 교과를 정규교과목으로 편성하고, 제1언어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

-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에 수어를 배울 수 있게 수어교과목의 제2외국어(선택교과목) 지정

-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학생의 교육권 실현을 위한 교육통역 지원을 활성화하고, 전문 교육통역사 제도 도입

- 농학교 교사의 농문화에 대한 이해 및 수어 전문성 강화

셋째, 특수교사 양성체계를 개편하여 전문성을 갖춘 교사를 배출하라

- 장애영역별(청각, 시각 등) 특수교사 배출을 통한 교육 전문성 강화

청각장애학생의 학습 전달력과 농인의 정체성 형성을 위한 농인교사의 양성 및 확대

대학 내 농교육학과 개설

넷째, 청각장애학생의 교육권보장을 위한 종합 대책을 수립하라.

-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국립 한국수어학교’ 설립 포함

2023. 5. 29.

한국농아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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