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자(79)할머니는 요즘 계속 걸려오는 전화로 정신이 없다. 남한산성 꼭대기에서 등산객들에게 김밥과 도토리묵, 닭죽과 삼계탕, 소주를 팔며 평생 모은 돈을 기부한 이후부터 할머니를 취재하고자 찾는 곳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할머니는 그저 아이들을 돕고 싶어서 한 일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인생살이는 다소 굴곡진 삶이였다. 서울 왕십리에 살던 10살 때부터 김밥을 팔며 장사를 시작한 박씨는 6·25전쟁 중이던 1951년 남편을 만났지만, 아이를 낳지 못해 헤어진 뒤 평생 궂은일을 마다않고 장사를 하며 재산을 모았다. 평생 장사를 하면서 억척같이 돈을 번 할머니에게 주위사람들은 구두쇠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내기도 했었다.

남한산성 꼭대기에서 20년간 매일 등산객들에게 김밥과 도토리묵, 음료수 등을 팔던 박씨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갈 곳 없는 정신지체장애인들을 집으로 데려와 아이들을 밥 먹이고, 대소변을 치우며 살고 있기도 하다. 재단 관계자는 “박 할머니가 자라나는 아이들이 공부할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며 “배고프고 몸이 아파 학업을 중단한 아이들을 돕는 데 써 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평생 장사를 하며 살아온 박 할머니는 산성 꼭대기까지 짐꾼을 불러 쓰면 웃돈을 줘야 했기 때문에 직접 지게를 지거나 머리에 이고 짐을 나를 정도로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다. “한겨울, 한여름이 제일 힘들었지. 겨울엔 짐을 들고 올라가다 눈길에 넘어질 때도 많았고, 푹푹 찌는 여름날에 짐을 들고 가면 어지럽거든.” 할머니는 그날 번 돈을 헝겊에 싸서 장작더미 속에 보관했다. 그렇게 모은 돈 3억원, 할머니의 피땀 어린 정성이 아이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현재 박 할머니는 장애인 7명과 살고 있다. 박 할머니는 "내가 죽거든 아이들을 잘 돌봐 달라"며 집 명의를 천주교 작은형제회 공동체 앞으로 해놓았다. 박 할머니가 나눔을 실천하게 된 계기는 1년 전부터 몸이 불편해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였다. “아프니깐 생각나더라, 내가 힘들게 번 돈으로 좋은 일을 하고 떠나야겠다. 박 할머니는 돈이 없어 배고픈 아이들, 돈 없어 제때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평생 모은 3억원을 어린이 재단에 기부했다.

어렵게 번 돈 일수록 그 가치를 알 수 있다며 자신의 큰 액수의 기부액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값지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나눔의 실천은 박 씨 할머니의 선행이 더 아름다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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