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로 질식, 의식 없는 상태… “국가가 떠넘긴 책임 짊어진 장애인 가정의 현실”

▲ 화재현장에는 누나와 동생의 신발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안서연 기자
▲ 화재현장, 박 씨 남매의 신발이 나란히 놓여있다. ⓒ안서연 기자
지난달 29일 오후 6시경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의 한 아파트 14층에서 불이 났다. 같은 아파트 15층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119 소방대원들은 집 안방에서 의식을 잃은 박준희(가명, 여·13) 학생과 남동생 박준수(가명, 11, 뇌병변장애 1급) 학생을 발견했다.

유독가스를 마시고 쓰러진 남매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지만, 사건이 일어난 지 사흘이 넘은 1일 현재 아직까지도 의식불명 상태다.

사건 당시 집에는 남매만 있었으며, 박준수 학생은 뇌병변 1급 장애로 혼자 움직이지 쉽지 않은 상태였다. 박준희 학생은 불이 나자 동생을 데리고 안방으로 피신했지만, 문틈으로 들어오는 유독가스에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남매의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떡집에서 일을 마친 뒤 10월까지 집주인에게 집을 비워주기 위해 이사갈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남매의 아버지는 막노동을 해서 생계를 꾸려오다 일이 일정치 않자 4개월 전부터 공장에서 일을 시작, 일손이 부족해 밤 10시까지 야근을 해야만 했다. 남매의 어머니는 오전 동안만 떡집 종업원 일을 하다가, 얼마 전부터는 오후까지 시간을 늘려 4시~6시 정도가 돼야 집에 돌아왔다.

방과 후, 남매는 어쩔수없이 둘이서만 집에 있어야 했던 상황. 남매의 부모는 ‘평소 어린 딸이 동생을 보살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남매의 어머니에 따르면, 박준희 학생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로 일반 중학교를 다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괴롭힘과 폭력에 지쳐 일반 중학교에 가길 거부했고, ‘동생을 돌볼 수 있다’며 동생이 있는 특수학교 진학을 택했다.

▲ “아들이 의사소통을 못해요. 퇴근후에 들어가서 내가 먼저 인사해야 되요. 안방에 딱 들어가 인사를 하면 아들놈이 항상 나한테 해주는 게 있어요. 내가 항상 메고 다니는 가방이 있거든요. 그거 벗기고, 잠바 벗기고, 양말 벗기고. 리모컨을 갖다 줘요. 그런 아이예요 우리 작은애는.” ⓒ안서연 기자
▲ 남매의 부모는 ‘평소 어린 딸이 동생을 보살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안서연 기자
남매의 어머니는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딸이 쉬는시간마다 동생을 찾아가 잘 있는지 보고, 많이 챙겨준다고 했다.”고 전했다.

남매의 아버지는 “준수가 대·소변을 잘 못가리는데, 대·소변이 마려우면 준희 손을 잡고 화장실로 들어간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준희가 준수의 뒷처리를 하고, 집에서는 준수가 학교에서 속옷에 싼 것을 치웠다. (아빠 엄마가 없을 때) 준수가 배고프면 준희가 밥 챙겨서 주고, 한참 있다가 또 배고프면 과자 주고, 물 떠다주고, 졸리면 같이 옆에서 잤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13세의 박준희 학생이 중증장애인인 동생을 돌보기는 쉽지 않았을 것. 더구나 화재현장에서 몸을 가누기 힘든 동생과 함께 대피하기란 더욱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장애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장애인 가정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최석윤 회장은 “정부에서는 장애어린이를 대상으로 지원되는 것이 많다고 하지만, 직접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활동지원서비스와 장애아동재활치료바우처(발달재활서비스)밖에 없다. 그마저도 부족하다.”며 “지난 8월 5일자 시행되고 있는 장애아동복지지원법에 따르면, 무한 돌봄 및 가족 지원 등이 이뤄져야 하지만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등급제 및 대상 제한, 부족한 시간(급여량), 본인부담금 등으로 당초 관련 법 제정 취지와 다르게 시행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남매의 부모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지만, 신청했다고 하더라도 박준수 학생이 지원받을 수 있는 시간은 월 60~80시간으로, 하루 2~3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최 회장은 “지금 장애어린이에게 이뤄지고 있는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으로는 학교가 끝나고 치료실에 간다거나, 복지관에 간다거나, 오로지 ‘이동’할 때 밖에 쓸 수 없다. 취지와 달리 현실적으로 생활 보조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특수학교도 마찬가지로 장애학생이 대상인 만큼 치료사 배치 및 적절한 서비스가 이뤄져야 하지만,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보조 인력 지원 또한 세분화해 당사자들의 환경과 여건에 맞는 서비스 지원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애아동재활치료바우처는 장애어린이의 원활한 재활치료를 위한 것으로, 장애어린이 1인당 매달 22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장애어린이의 경우 잔존 능력 향상, 학습 능력 개발, 사회성 향상을 위한 물리·재활치료가 필수인데, 바우처만으로는 필요한 치료를 모두 받을 수 없는데다가 이마저도 소득 기준에 따라 차등 지원하고 있다.

대부분의 치료실이 사설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애인부모는 평균 월 30~100만 원의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복지관 등의 비영리기관은 턱없이 부족해 대기 시간이 길어 이용할 수 없으며,  농·어촌은 사설 치료실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최 회장은 “정부는 인력과 예산을 내세우기만 할 뿐, 장애어린이에 대한 환경을 개선할 의지가 없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권리를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가 전부 짊어지고 있는 꼴.”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남매의 어머니는 1일 웰페어뉴스와의 통화에서 “둘 다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혼수상태여서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하루 빨리 깨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지난 29일, 불이 나자 누나는 중증 장애가 있는 동생을 데리고 안방으로 피신했지만, 문틈으로 들어오는 유독가스에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안서연 기자
▲ 지난달 29일 불이 나자 누나 박준희 학생은 중증장애가 있는 남동생 박준수 학생을 데리고 안방으로 피신했지만, 문틈으로 들어오는 유독가스에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안서연 기자

▲ “그저께, 어제만해도 작은애가 손 발이 찼어요. 그런데 오늘 담당의사 얘길 들어보니까 작은애가 많이 좋아졌데요. 둘다 독같은 거 다 뺐고, 몸 속에 찌꺼기가 좀 남은 상태래요. 면회하면서 작은애 손발 다 만져봤는데 온기가 돌았어요 이제. 따뜻하고. 근데 뭐 아직도 둘다 혼수상태니까요. 빨리 깨났으면 좋겠어요.” ⓒ안서연 기자
▲ 지난달 31일 남매의 어머니는 “그제, 어제만해도 작은애가 손 발이 찼어요. 오늘 담당의사 얘길 들어보니까 작은애가 많이 좋아졌다고 해요. 둘다 독 같은 것은 다 뺐고, 몸 속에 찌꺼기가 좀 남은 상태래요. 면회하면서 작은애 손발 다 만져봤는데 온기가 돌았어요. 하지만 아직도 혼수상태니까요. 빨리 깨났으면 좋겠어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안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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