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장애인이 ‘생존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성적 권리’를 요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장애인 당사자가 겪고 있는 성 문제를 들어보고 건강한 대안을 끌어내기 위해, 앞으로 총 4부에 걸쳐 ‘장애인의 성’에 대해 보도합니다. 오늘은 그 첫 순서로 ‘편견에 사로잡힌 장애인의 성’을 주제로 안서연 기자가 문제를 짚어봤습니다.

1부 “장애인도 성관계가 가능한가요?”

영화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한 장면
제가 성경적 의미로 여자와 동침하는 게 가능할까요? / 육체적 관계를 말하는건가? / 말하자면 그렇죠 / 결혼하기 전에? / 거긴 살아있어요 신부님

한 중증장애인이 신부님에게 ‘성적 욕구’에 대해 털어놓습니다. 영화관을 찾은 비장애인들에게 ‘과연 이 남자의 성관계가 가능할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INT 오세욱 (학생)
“장애인은 몸이 불편하니까 사랑은 별로 못할 것 같아서…”
INT 신지선 (직장인)
“사실적으로, 현실적으로는 좀 어려운 편이지요.”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은 ‘신체적 장애가 있으니 성기능에도 장애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사람들의 인식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장애인 성에 대한 인식도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장애인에게 성적능력이 있다’라고 답한 사람은 68%에 다다랐으며, ‘장애정도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32%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성적 능력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영화’라는 매체가 주는 파급력은 상당합니다. 처음으로 장애인의 성을 둘러싼 논의를 표면 위로 끌어올린 영화 ‘오아시스’. 뇌병변장애인 공주와 종두의 성관계 장면을 목격한 경찰은 종두에게 묻습니다.

영화 ‘오아시스’의 한 장면

-저런애를! 참나 인간으로서 이해가 안되네. 얌마 솔직히 성욕이 생기대?

영화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여성장애인을 비정상적인 성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일 뿐, 정작 여성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INT 황진미 영화평론가
“남성비장애인 감독의 시선에서 여성장애인(공주)이 자신을 성폭행하려고 들어온 사람(종두)을 다시금 사랑하게 되는 사실, 그런 서사는 여성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끔찍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오아시스 이후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들 역시 장애인의 성적 소외를 당연시 하거나 아예 무성적인 존재로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영화 ‘말아톤’의 한 장면
-초원이 얼룩무늬 치마를 입은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자, 여자의 애인이 초원을 때린다. 초원의 입에서는 엄마가 늘 말하던 ‘우리 아이에게 장애가 있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자폐성장애인 초원이가 마라톤을 통해 사회와 소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말아톤’. 초원이는 성적인 욕구가 왕성한 시기지만, 성욕에 대한 모습은 ‘장애’를 이유로 무시되거나 묵살되고 맙니다.

INT 황진미 영화평론가
“동물 무늬의 옷을 입은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는 대목에서는 아 저 주인공은 아이와 같은 존재이고, 성적인 욕구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욕이 있다는) 그런 시각으로 보면 안되고 하는 식으로 장면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설령 장애인을 성적인 존재로 인식했다 하더라도 남성장애인을 성범죄자로, 여성장애인을 성범죄 피해자로 그려내 장애인은 ‘조심해야 할 존재’, ‘성적 결정권이 없는 존재’로 비춰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대중문화(매체) 속 장애인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장애인은 성적 활동에 있어서까지 ‘욕구도 없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성적 능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뇌병변장애 1급 구자윤 성 활동가는 이와 같은 시선에 대해 ‘편견’이라고 꼬집었습니다.

INT 구자윤 성 활동가
“장애인들이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다보니까 성을 누릴 필요도 없고, 누리기도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무시해버리면 되고, 무시해 버리면 되기 때문에 알려줄 필요도 없다 이런 생각에서 생겨난 편견들이죠.”

성적 욕구는 누구에게나 존재합니다. 다만 장애유형에 따라 성관계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직접적인 성관계가 어려울 경우에도 제2의 성감대를 통한 성적 활동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장애인이 성적 권리를 누리기에 철저히 비장애인의 시각으로 그려진 성문화는 크나큰 장벽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같은 현실을 반영하듯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9조에는 ‘장애를 이유로 성생활을 향유할 공간과 기타 도구의 사용을 제한하지 말고, 국가는 장애인의 성 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책을 강구하고, 차별적 관행을 없애기 위한 홍보와 교육을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법조항이 여전히 선언적인 차원에만 머무르고 있으며, 법이 제정돼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인식과 이해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앞서 시행했던 설문조사 결과, 이 법에 대해 ‘잘 안다’고 답한 사람은 2%에 불과했으며, ‘처음 듣는 얘기’라고 답한 사람은 64%에 다다랐습니다.

권리로서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는 장애인의 성. ‘생존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왜곡된 성문화 속에서 ‘성적 권리’까지 요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영상취재/김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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