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복지의 일환으로 도입된 영화 관람료 장애인 관련 제도가 실효성이 없어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질타를 받고 있다.

창녕군장애인종합복지관 김학천 사무국장은 지난 12일 뇌병변장애가 있는 아들과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있는 한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관 장애인 할인이 현장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김 사무국장은 관람석을 확인한 뒤, 보고자 하는 영화가 상영하기 40분 전에 영화관에 도착했다.

하지만 영화관측은 “장애인석은 미리 확보돼 있는 상태지만, 영화가 시작될 때쯤 구매가 가능하다.”고 말했고, 이에 김 사무국장은 다시 대기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영화가 시작하기 5분 전 김 사무국장의 차례가 됐지만, 기다리는 사이 장애인석까지 모두 매진돼 영화를 볼 수 없게 됐다.

김 사무국장은 화가 났지만 당장 영화를 볼 수 없었기에 아들과 함께 씁쓸함을 뒤로한 채 영화관을 나와야만 했다.

“장애인 할인, 유명무실한 제도”

▲ 창녕군장애인종합복지관 김학천 사무국장.
▲ 창녕군장애인종합복지관 김학천 사무국장.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장애인할인제도를 운영 중인 전국의 복합 영화관들은 장애등급에 따라 4,000원~5,000원을 관람료에서 할인해주고 있으며, 일부 영화관은 동반자 1인까지 할인 해주고 있다.

문제는 장애인할인제도가 매표소에서 직접 구매할 때만 적용된다는 점. 온라인 또는 모바일을 통한 예매에서는 장애인할인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 영화관 관계자는 “본인 확인을 위한 장애인 복지카드가 연동돼 있지 않고, 복지카드의 도용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 사무국장은 영화관측에서 주장하고 있는 신원 확인 및 도용은 지나친 우려라고 바라봤다.

철도·항공·선박의 경우, 온라인으로도 장애인할인제도를 적용 받아 표를 구매할 수 있기 때문.

이 같은 경우 먼저 할인을 적용 받아 예매를 마친 뒤, 현장에서 할인 대상 확인이 가능한 신분증 등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영화관 또한 예매를 먼저 한 뒤 현장에서 확인하는 과정을 도입하면 된다는 것.

김 사무국장은 “철도·항공·선박 이용 예매와 영화·체육 관람 예매 절차 및 체계가 비슷하기 때문에, 같은 과정을 도입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단지 현장에서 확인하는 번거로움을 이유로 이 같은 불편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 할인을 도용 등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며 “도용하는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는 그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하면 되지 않냐.”고 주장했다.

이어 “장애인할인제도를 ‘기업의 배려’라고 생각하지 말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양쪽 모두 ‘Win-Win’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애인은 ‘좌석 선택’에서부터 차별… 직원의 인식 부족 또한 문제

▲ 영화상영관 장애인 전용 좌석 설치현황(2012년 기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 영화상영관 장애인 전용 좌석 설치현황(2012년 기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장애계는 장애인할인제도 뿐만 아니라, 장애인석 부족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들의 인식 부족 또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2012년 2월 20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서울시로부터 제출 받은 정보 공개 자료에 따르면,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서울 시내에 있는 대형 영화관 대부분 장애인 전용석 비율은 전체 좌석의 고작 1~2% 정도였다. 그나마 가장 많은 곳은 3%였고, 이마저도 몇몇 영화관에 불과했다.

특히 장애인석은 전부 앞자리 또한 뒷자리에 배치돼 있어 ‘선택권 박탈’로 이어진다.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가 2012년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으로 전국 173개 영화관 1,143개 상영관을 조사한 결과, 장애인석을 설치한 1,130개 상영관 가운데 81.1%인 722개 상영관이 스크린 가장 앞줄에 설치했다. 18.9%인 168개 상영관은 제일 뒷줄 또는 중간에 장애인 관람석을 설치했다.

수원중증장애인센터 한경숙 소장은 “장애인석은 대부분 앞자리에 배치돼 있다. 영화를 볼 때 두 시간 동안 목을 뒤로 젖히고 있어야 하는데, 영화를 보고나면 목이 아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한 영화 상영관의 좌석 현황. 장애인석(연두색)은 맨 앞에 배치돼 있어 다른 위치를 선택할 수 없다. ⓒCGV홈페이지
▲ 한 영화 상영관의 좌석 현황. 장애인석(연두색)은 맨 앞에 배치돼 있어 다른 위치를 선택할 수 없다. ⓒCGV홈페이지.
뿐만 아니라 장애인석이 설치돼 있어도 상영관의 접근성이 매우 낮아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한 소장은 “지난해 10월 수원 인근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니 계단이 있었다. 나는 휠체어를 이용하기 때문에 계단을 오를 수 없다. 다시 밖으로 나가 문제를 제기하자 다른 곳으로 안내해줬는데, 그 길도 마찬가지로 계단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너무 화가 나서 ‘도대체 왜 이러느냐’고 물었더니, 직원은 ‘보호자가 안고 올라갈 줄 알았다’고 답했다.”며 직원들의 인식 개선 교육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자막 및 화면해설 거의 없어… ‘모두’가 볼 수 있는 영화여야

▲ 연도별 한국영화 제작·수입 및 개봉 편수 및 한글자막 및 화면해설 제공 영화 상영 실적(단위: 편). ⓒ영화진흥위원회
▲ 연도별 한국영화 제작·수입 및 개봉 편수 및 한글자막 및 화면해설 제공 영화 상영 실적(단위: 편). ⓒ영화진흥위원회
장애와정보문화누리 김철환 활동가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를 ‘서비스 제공이 모두가 아닌 비장애인 위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활동가는 “특히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및 화면해설 서비스는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자막 영상과 화면해설을 삽입해 상영해주는 ‘장애인영화관람데이’ 등의 행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1년에 15회가량 정도만 상영되고 있고, 영화 역시 본인 선택이 아닌 행사 주최 측이 선정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영화 상영이 제한되고 있다.

▲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철환 활동가
▲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철환 활동가.
국내 영화상영관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는 지난해 기준 459편, 외국영화는 1,157편으로 총 1,616편이 개봉했고 이 중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자막·화면해설 영화의 상영 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단 15편에 불과했다.

김 활동가는 “영화 관람은 국민들이 일상에서 TV 시청만큼 자주 즐기는 여가 생활로 꼽힌다. 하지만 화면 해설·한글자막 영화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시각·청각장애인들은 자주 즐길 수 없다.”며 “미디어와 영상물이 빠르게 발전하고 점점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는 현재, 시각장애인에게는 영상을 소리로 설명한 화면 해설이, 청각장애인에게는 자막이나 수화가 필수적인 요소.”라고 전했다.

이어 김 활동가는 “정부 입장에서는 사업자들을 강제적으로 규제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장애계에서는 사업자들에게 일정 부분 의무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같은 경우는 영화관이 공공시설로 분류돼 있지만, 아직 한국은 인식의 부족으로 법 취지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며 “법률 개정을 통해 보편적으로 어느 극장이든 어느 시간대든 장애인들이 영화를 보고자 할 때 불편 없이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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