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노역형 앞둔 전장연 박옥순 사무총장이 남긴 편지

지난 3년간 도로교통법 방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등의 죄목으로 부과된 벌금이 2,400만 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에 부과된 벌금 내역이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실질적인 활동지원서비스 제공 등 장애당사자의 생존과 직결한 문제들에 대해 해결해 달라고 노숙농성을 하고, 도로점거 등을 하며 목소리 높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2012년 최용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등 8명이 벌금을 거부하고 노역형을 선택한 데 이어 2014년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의 노역형에 이어 세 번째로 전장연 박옥순 사무총장,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광화문공동행동 이형숙 공동집행위원장, 의정부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경호 전 대표 등 3명이 노역형을 선택했다.

아래는 17일 노역형을 선택한 박옥순 전장연 사무총장이 남긴 글이다.

 

정의롭지 않고, 부당한 재판 결과를 이행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내일 노역을 합니다. 불법을 했다며 나온 벌금을 내고 싶지 않습니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판사를 차례로 만나면서 내가 왜 법률을 뛰어넘는 투쟁을 해야 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무엇이 만들어졌는지, 정말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내 얘기가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나봅니다. 그들은 내가 불법을 확인하느라 집중하였기에 내 얘기가 들리지 않았겠지요. 결과적으로 검찰의 항소까지 이어지면서 고등법원에서 벌금 300만원으로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나는 정의롭지 못하고 부당한 재판결과를 이행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차라리 노역으로 세상에 진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왜 법률을 뛰어넘는 투쟁을 해야 하는지 알리고 싶었습니다.

30여년 넘게 수용시설에서 생활한 고 송국현씨는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과 만나 그들이 말하는 <자유>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탈시설하면서 무엇보다도 걱정했던 것은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갇힌 시설 생활을 하였기에 당연한 걱정이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일상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제도가 있다는 말에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것도 장애인들이 열심히 투쟁해서 만들어낸 제도이기에 힘도 불끈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애등급제도라는 벽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장애 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보조를 신청할 자격조차 없었습니다. 센터의 활동가들과 함께 활동보조인을 신청할 수 있는 기관인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두 차례나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1주일 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사건으로 침대에서 화마에 휩싸였습니다.

온 몸을 화마로 뒤집어 쓴 송국현씨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는 동안에 나는 화재가 일어난 송국현씨가 살던 집에 갔습니다. 침대에서 현관까지 내 걸음으로 다섯 걸음이었습니다. 장애 3급이던 송국현씨는 그 다섯 걸음의 거리를 빠져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불과 1주일 전에 국민연금공단에 가서 그토록 활동보조인이 필요하다는 송국현씨의 요청을 거절한 국민연금공단에 쫒아갔습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게 송국현씨를 살려내라고 말하고 싶었고,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을 내놔야한다고 부탁하고 싶었고, 하루빨리 등급제를 없애야 한다고 요청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국민연금공단 현관 앞에는 경찰들만이 빼곡하게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어이 상실!

경찰 너희는 언제나 가진 자 편이 아니었지요. 민중의 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늘 이번 만큼은, 이번만큼은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나마 한국사회에서 민중으로서 기댈 존재가 누가 있나 찾아봐도 없으니, 나는 또 다시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 나는 화마로 병원에서 사경을 해매는 송국현씨 사건을 알고 있는 경찰이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에게 이 사건의 원인과 대책을 물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 나는 장애등급제로 이 사단이 났으니,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경찰이 물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 나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무진 반대를 무릅쓰고, 국가가 만든 제도로 인해 한 사람의 국민이 생명을 잃었으니, 대통령에게 공식사과를 해야 한다고 경찰이 요청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그런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 아닌가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역할이 아닌가요? 그래서 국민이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시설보호요청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이라니.

경찰이 그 역할을 하지 않으니, 우리가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만나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을 상의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의 벽은 두터웠고, 우리는 현관문 밖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고, 경찰은 막았습니다. 몸싸움은 당연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당연하게 나타난 몸싸움을 경찰은 고발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바람 앞에 촛불처럼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대해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경찰 스스로를 고발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역할을 하려는 사람들을 막아대고, 그것도 모자라서 몸싸움 자체를 가지고 경찰이 고발했습니다. 그야말로 개한민국의 경찰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우리 사회의 경찰 역할을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벌금을 낼 수 없습니다. 그 날 국민연금관리공단 앞을 막게 한 경찰 수뇌부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복지부장관, 대통령에게 이 사건해결을 요청하지 않은 경찰대표를 기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벌금을 낸다면 마치 이들의 역할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도저히 내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과정은 검사를 만났을 때, 판사를 만났을 때도 같은 맥락에서 만남이 이어졌습니다.

장애인인권 운동은 필요하나 불법을 하면 안된다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해서 들어야 했습니다.

법이라는 잣대로 인권운동을 살핀다면, 결과적으로 법률을 뛰어넘지 않는다면 인권은 우리에게 결코 오지 않습니다. 새롭게 꾸려진 문재인 정부는 경찰, 검찰, 그리고 판사들의 역할에 대해 재 논의해야 합니다.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노역을 선택하게 된 두 번째 이유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장애해방 세상을 꿈꿉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해방 세상을 향해 줄기차게 달리고 있습니다.

몸이 불편해서 장애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사회, 결국 사회가 장애를 만들어내는 그런 파국을 우리는 더 이상 원치 않습니다. 그 문제를 안고 있는 장애인이 중심이 되어서 사회를 바꾸고 싶습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단지 장애인만의 이동수단이 아니듯이, 장애인이 편안하고 안전하면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안하다는 진실로 장애해방 세상이 곧 인간해방 세상이 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투쟁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일년에 많게는 5천만원에서 적게는 3천만원의 벌금 고지서를 받습니다. 지난해 연말에 <함께 소리쳐> 콘서트로 모금한 돈은 벌써 다 썼습니다.

내가 일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투쟁을 하면서 투쟁기금을 모금하고, 단체회원들이 회비와 1천여명이 넘는 후원회원들의 후원으로 활동가들의 활동비와 투쟁기금을 해결하는 아주 훌륭하고 건강한 조직입니다. 정부와 기업으로부터의 재정지원을 거부하고 오로지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회원들의 후원회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투쟁으로 인한 벌금입니다. 벌금 납부가 시급한 분들에게 결국은 본 예산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활동가들의 활동비를 포함하여, 사무실 임대료를 낼 수 없어서 지난해 말에 영등포 사무실에서 짐을 싸서, 불광동의 민주노총 서울본부 앞에다 천막을 치고 그곳에서 두달여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추위로 인해 더 이상 활동이 어렵게 되어 서울혁실파크의 공유 공간을 점유했고, 급기야는 고소고발도 당했지요. 서울혁신파크는 감사 등으로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서울혁신파크에 미안하다. 그러나 벌금 납부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 죄를 묻는다면 당연히 그 죄를 달게 받겠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지금은 조정기간이고, 뭔가 변화의 물꼬가 있으나, 이는 임시방편에 해당됩니다. 나날이 쌓여가는 벌금을 해결할 방도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도 투쟁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 아닌 이상, 정부에 우리의 요구를 얘기하기 위해 면담을 요청했을 때, 만나준다면 불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늘 도로를 점거하거나, 삭발, 단식 등을 해야만 만남을 주선하는 정부가 바뀐다면, 우리는 불법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우리도 벌금 걱정을 조금은 덜 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정부가 그런 점에서 크게 방향을 바꿨으면 하는 바람과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찾아가는 길은 법률을 뛰어넘는 투쟁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법률을 뛰어넘는 투쟁은 정당합니다.

따라서 정의롭지 않고, 부당한 재판 결과를 이행하지 않겠습니다.

2017년 7월 현재 자그마치 2천4백만원의 벌금이 밀려있고, 하반기에 재판 결과에 따라서 또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조직의 이름으로 투쟁했고, 그 벌금은 조직의 이름으로 해결해야 마땅합니다.

내게 부과한 벌금 300만원 납부도 어렵지만, 수많은 활동가들의 벌금 납부가 정말 어렵습니다.

실무 책임자로서 매번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투쟁으로 받은 벌금을 모두 노역을 살 수도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 사정이 다르고, 환경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 조직의 실무책임자로서의 역할은 시급하게 모금을 해서 상반기에 받은 벌금 고지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노역을 결심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하신다면 십시일반, 적은 금액이라도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노역 하루 전날입니다. 사실 조금은 떨립니다. 구치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주 살짝 긴장이 되기도 합니다. 담담했던 마음이 아주 조금은 ‘흔들’합니다. 그러나 구치소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고, 그 안의 사람들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레임도 있습니다.

벌금이 300만원이니, 하루 10만원의 노역금이라면 약 한 달여동안의 노역이 될 것입니다. 모금 목표액 4천만원이 모아진다면 참 좋겠습니다. 하루라도 빠르게 모금이 된다면, 나는 30일을 구치소에서 지내지 않아도 되겠지요. 많은 분들의 성원과 지지, 그리고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5년 전에 건강 악화로 아예 활동을 하지 못하는 시기를 가졌습니다. 지금도 그 질병으로 직접적인 활동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분들의 걱정과 우려를 듣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선택했으니, 마음이 담담한 것에 비해, 주변의 지인들과 활동가 그리고 가족들의 걱정과 우려로 내가 오히려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녀와서 열심히 건강을 챙기겠습니다. 더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운동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리 댄스 친구들이 모금을 하는 모습에 힘 받았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알게 되면 걱정과 우려로 내내 힘들어할 것 같아서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활동이면 무조건 지지하는 사랑하는 내 남편이 이번 상황에 대해 우려와 걱정을 하지만,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니, 그저 고맙고 사랑합니다. 노역 다녀와서 남편이 원하는 대로 아주 잠시라도 제주에 가서 남편이랑 일상의 시간을 함께 갖겠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나를, 우리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모든 분들이 계시기에 든든합니다. 모두를 사랑합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7년 7월 17일 노역을 시작하는 박옥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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