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더위와 싸우는 중증 장애인 “불덩이가 있는 것 같았다”
홀로 더위와 싸우는 중증 장애인 “불덩이가 있는 것 같았다”
  • 정두리 기자
  • 승인 2018.08.06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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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원 부족해 선풍기 못 켜고 밤 보내다 고열로 ‘병원행’
장애계,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 구제 진정 “활동지원 24시간 보장하라”
연일 최고 기온을 기록하고있는 '폭염 재난' 속에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해 선풍기도 켜지 못한 채 밤을 보내던 중증 장애인.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지, 불덩이가 있는 것 같았어…. 활동지원사도 없이 혼자 밤에 있을 때는 불이라도 날까 무서워 선풍기도 못 켜고 있어. 너무 더워 잠은 안 오고, 물도 못 마셔.”

연일 최고 기온을 기록하는 ‘폭염재난’ 속에서 끝내 병이 나고 만 김선심 씨(54, 뇌병변장애).

선풍기도 켜지 않고 베란다 문 만 열어놓은 채 밤을 견뎌온 것이 화근이었다. 활동지원사가 같이 있지 못하는 밤에, 혹여 누전이라도 될까 두려워 선풍기를 꺼 놓았기 때문이었다.

기록적인 폭염은 고열로 이어졌고, 지난 2일 견디다 못해 병원을 찾은 뒤 사흘 연속 링거를 맞고서야 겨우 조금의 기력이 돌아왔다. 

혼자서는 고개를 움직이고 힘겹게 대화를 하는 정도지만, 12년의 자립생활을 꿋꿋하게 꾸려온 그였다.

하지만 더 이상은 활동지원 없이 위험에 노출되는 두려운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졌다.

폭염에 노출된 중증 장애인의 생존권… 진단서 제출하고 활동지원 추가 요청했으나 ‘거부’

서울시 강서구에 위치한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김 씨.

11평 좁은 집에 살고 있는 그의 더위를 식혀주는 것은 벽걸이 선풍기 하나다. 활동지원사가 함께 있는 낮 시간에는 선풍기를 켜고 현관문과 베란다 문을 열어 바람을 통하게 하지만, 밤이 되면 집은 다시 찜통으로 변한다.

일주일에 절반은 활동지원사 없이 혼자 밤을 보내야 하는데, 혹여 과열이나 누전으로 불이나도 혼자 대피할 수 없어 선풍기를 켜지 못하기 때문이다. 쿨매트를 써볼까 했지만 스스로 체위를 변경할 수 없는 김 씨에게는 욕창이나 땀띠가 생겨 더 위험할 수 있어 포기했다.

김 씨의 진단서. 고열로 24시간 간병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긴급한 상황에도 24시간 활동지원은 거부당했다.

현재 김 씨가 받고 있는 활동지원은 월 599시간. 국비지원으로 402시간, 서울시 추가지원 197시간을 받는다. 이는 하루 24시간을 받는 720시간에서 121시간 정도가 부족하다.

결국 한 달에 15일 가량은 저녁 8시~오전 8시까지 활동 활동지원사 없이 혼자 밤을 지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통 목·금·일요일 밤을 혼자 보내는 김 씨는, 이날이 되면 선풍기를 끄고 더위와 싸워온 것.

지난 2일 고열을 견디다 못해 집근처 병원을 찾았고 체온이 38.6도 까지 올랐다. ‘발열의 원인 불명하며 약물 치료 및 보존적 치료 중으로 향후 안정 시 까지 24시간 간병 또는 경과에 따라 검사 및 입원이 요함’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김 씨의 고통은 공포가 됐다. 진단서를 들고 주민센터에 활동지원 24시간을 요청했으나 이마저도 거부당했다.

김 씨는 “손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선풍기를 끄고 켜겠지만 어쩌겠나, 참고 견뎌내야 한다.”며 “활동지원 24시간을 꼭 해줬으면 좋겠다. 참고 견뎌왔는데, 올해 같은 더위는 너무 힘들다. 심지어 아직도 폭염이 남았다니 걱정이다.”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들장애인야학 “우리 선심 언니, 살려주세요”… 인권위에 긴급 구제 진정

김 씨가 처한 상황에 노들장애인야학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긴급구제 진정서를 제출했다.

6일 인권위 1층에서 기자회견을 연 장애계는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을 촉구했다.

노들장애인야학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6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긴급구제 진정서를 제출했다.

노들장애인야학 박경석 교장은 활동지원이 없는 모든 상황이 ‘생존의 위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교장은 “중증 장애인에게 폭염은 여름만이 아니다. 활동지원을 받지 못해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상이 폭염.”이라고 비유하며 “일상에서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중증 장애인에게 필요한 대책은 활동지원 24시간의 필요성을 정부가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촉구했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 뒤 장애계는 인권위 조영선 사무총장과 면담을 진행, 24시간 활동지원이 되지 않는 데 대한 심각성을 전달했다.

이에 인권위는 내일(오는 7일) 김 씨를 직접 만나고 병원과 관할 동사무소 사회복지과 등을 찾아 조사를 진행, 필요한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는 입장을 비췄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상임대표는 “장애인 뿐 아니라 사회약자들이 폭염과 재난 문제에 노출돼 생존의 위협까지 느끼는 데 대해 인권위가 인권적 관점에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장 긴급한 김 씨의 진정건에 대해 해결이 필요하지만, 이 문제는 한 사람에 국한 된 것이 아닌 24시간 활동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정책적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단순히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혼자 있는 중증 장애인이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없어 위험에 노출되는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