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시장에 사라지는 기본권, 정부와 지자체 직접 나서야…
‘현실 반영 없는 주거복지, 쪽방주민들의 목소리로 다시 쓰도록’

시민사회단체 40여 개로 꾸려진 2017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이하 공동기획단)이 지난 18일~22일을 ‘홈리스 추모기간’으로 선포한 데 이어 20일에는 쪽방주민들의 주거권 문제를 진단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공동기획단은 20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주거복지 로드맵에 담겨야 할 쪽방 대책-쪽방주민 토론회’를 열고, 지난달 29일 정부가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이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대책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제자로는 동자동사랑방 주민 김정호, 김호태, 차재설 씨가 참여했다. 이들은 먼저 이른바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공공임대주택의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의 지난 2007년~2016년까지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공급량은 약 6,200호. 2016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숙인 현황은 1만1,340명, 쪽방주민은 6,192명이다. PC방이나 찜질방 등을 전전하는 경우까지 파악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지만, 공급량이 이 수치조차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공급량이 적은 것도 문제지만, 입주마저도 조건이 까다로워 쉽지 않다. 수도권의 경우 재개발과 치솟는 전세 등으로 정해진 한도(전세임대주택 수도권·광역시 6,000만 원, 기타 5,500만 원)에 맞춰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입주자선정위원회의 심사와 자활계획서를 요구하고 있다.

김호태 씨는 “소득기준을 보면 지난해 도시근로자가구 소득의 50%를 선정기준으로 하는데, 어디서 온 기준인지 모르겠다. 거기에 1인 가구는 선정기준의 60%를 기준소득으로 한다. 기준소득의 80% 이하인 사람에게 30점의 가산점을, 80~100%인 사람에게 15점의 가산점을 준다. 조금 더 벌어보겠다고 노력해서 소득을 올리면 점수를 매겨 ‘너는 잘 버니까 0점이야’라고 하는 것은 정부에서 할 일이 아니다. 결국 조금 더 잘 살아봤자 기초생활수급에서 깎이고, 기준에서 떨어지고, 노숙생활로 돌아가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자활계획서도 없앨 필요가 있다. 사람이 스스로 계획서를 써서 그대로 살 수 있다면 다 부자가 될 것이다. 쓴 대로 하지 않으면 위반이라는 것인데, 이는 사람을 더 몰아붙이는 꼴이다. 만들지 않으면 만들지 않아서 안 된다고 하고, 어쩔 수 없이 만들면 안 지켜서 안 된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또 매입임대주택의 경우 환경이 좋지 않아도 한 번 들어가면 옮길 수 없는 사례를 전하며, ‘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갔는데 불편해도 계속 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상업화·개발에 하나둘 사라지는 ‘주민’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주거지를 마련하고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차재설 씨는 지난 2015년 2월경 동자동 9-20번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말문을 열었다.(참고-동자동 쪽방 세입자들 ‘철거·단수 중단하라’ 촉구, 2015.06.15)

그는 “건물주는 하지도 않은 안전진단 결과를 근거로 40세대가 넘는 세입자들에게 모두 나가라는 퇴거 공지문을 붙였다. 겉으로는 안전을 내세웠지만 ‘게스트 하우스’로 바꿔 더 많은 이득을 챙기려는 속셈이었다. 동자동 9-20번지 강제퇴거는 쪽방촌 주거지 상업화의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게스트 하우스로 용도 변경된 건물이 7곳에 이른다. 모두 쪽방 주민들이 살던 곳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약 7개월간의 싸움 끝에 서울시가 임대해 관리하는 쪽방 건물로 남았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피해가 적지 않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사실 명확하지 않은 한시적 조치다. 막대한 이득을 챙기기 위한 상업화에 쫓겨난 주민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먼저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도시연구소 이원호 연구원은 정부와 지자체가 임대주택지를 지정해 직접 매입·공급하는 방식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전국실태조사 결과 쪽방 거주인은 2010년 6,200여명에서 2014년 3,680여명으로 줄었다. 정부의 주거정책에 따라 안전하게 이동했다면 다행이지만, 상업화 등에 밀려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현행 기초생활수급비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수 없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건강상태가 취약한 점, 일정한 소득을 넘으면 수급비가 깎이거나 수급 대상자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추가 소득이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다른 곳으로 옮길 만큼의 저축’은 불가능하다.

발제자들은 “갈 곳 없는 사람은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내쫓고 있다. 전세임대주택 기한은 (최대) 20년인데, 공과금을 내고 나면 모을 자금이 없다. 그 기한이 지나면 다시 길거리에 나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3인~4인 가구 위주의 대형주택만 늘고 있다. 결국 돈 있는 사람만 건물을 모으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이원호 연구원은 “프랑스 파리시의 경우 8,000세대가 사는 마을을 소형임대주택지로 지정했다. 건물주가 팔 때 1차적으로 개인이 아닌 파리시한테 팔도록 했다. 파리시는 이를 사서 저렴하게 임대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편하게 살고 싶은 집, 같이 사는 사회

▲ 보건복지부 자립지원과 배완복 사무관.
▲ 보건복지부 자립지원과 배완복 사무관.

발제자들은 쪽방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현행 복지정책이 마땅히 해내지 못하고 있는 의료, 돌봄, 공동 비용 등을 공동체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재설 씨는 “다른 동네 임대주택에 들어간 주민들 가운데 적응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 경우를 여럿 봤다. 새로운 곳으로 가면 가전제품 하나부터 모든 것을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 현행 수급비가 100만 원대로 오르면 모를까, 지금 수준으로는 인간답게 살기 어렵다. 서로 돕고 살피는 공동체가 형성돼 있지 않으면 턱없다.”고 말했다.

김정호 씨는 “외부에서 보기에 열악하겠지만 쪽방은 우리에게 소중한 곳이다.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생활터전이라 행복하다. 하지만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함을 늘 갖고 있다. 집주인이나 가진 자에 의해 밀려날 수밖에 없는데, 사회에서 말하는 복지는 우리와 상관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정부측 관계자로는 보건복지부 자립지원과 배완복 사무관만이 참석했다. 예정돼 있었던 서울시 자활지원과의 참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배 사무관은 “주거는 국토교통부, 고용은 고용노동부, 생계 등은 보건복지부가 각각 맡고 있어 입장을 말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돼 있다는 점에 대해 양해 부탁드린다.”며 질문에 대해 답변했다.

그는 먼저 기초생활수급비 등 생계비와 관련한 문제점은 “보건복지부에서도 잘 알고 있는 점이다. 다만 예산의 문제로 해소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노숙인 관련 민관협의체가 구성돼 있는 만큼 오늘의 의견을 잘 전달하겠다. 또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토론해야 한다는 지적도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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