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어느덧 ‘죽음’보다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이 더 두렵다는 사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87%가 질병 등으로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상황을 가장 우려했으며, 84%는 조력사에 찬성했다(이동휘, 2024). 이는 단순히 자기결정권의 문제를 넘어, 돌봄이 개인과 가족에게 감당하기 힘든 부담으로 전가되는 상황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호하는, 돌봄이 죽음보다도 두려워진 우리 사회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시대적 위기 속에서,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돌봄통합지원법)의 제정은 새로운 희망이라고 볼 수 있다. 돌봄이 필요할 때 정든 집과 이웃을 떠나 시설로 향하는 대신, ‘내가 살던 곳에서(Aging in Place)’ 존엄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겠다는 법의 취지 때문이다. 이는 2000년대 이후 장기요양보험, 장애인활동지원 등 주요한 돌봄제도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막막한 돌봄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 제대로 된 돌봄을 위해서는 개개인의 욕구에 맞춘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지원을 필요로 하지만 이 것이 그동안은 중앙통제적인 경직된 제도로 인해서 가능하지 않았다면 이 법은 일선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서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는 기존의 중앙통제적 관행을 고수하려는 시도에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올해 초 보건복지부는 시범사업 지역에서 기존에 지자체와 공동으로 진행하던 심화평가를 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통합판정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는 돌봄 계획의 수립 주체인 지자체를 욕구 진단 과정에서부터 배제하고, 재정 관리 기관인 건보공단이 모든 지원의 ‘문지기’ 역할을 하는 것이어서 통합돌봄의 근본 취지를 훼손한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학계와 시민사회, 현장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 따라, 지자체가 요청하면 건보공단과 ‘동행조사’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부 방향을 최근 수정했다.
이는 중앙통제적인 경직된 관행이 건설적인 논의를 통해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 긍정적 신호다.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이 한 걸음의 진전 뒤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제도적 관성이 여전히 법의 정신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그동안 지나치게 중앙집권적이었던 우리나라 돌봄제도의 근원적 문제를 살펴본 다음에 이러한 제도적 관행이 현재의 통합돌봄 개혁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 톺아보고, 앞으로의 정책적 방향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책임성이 성립되지 못하는 분절된 돌봄 시스템의 문제
대한민국 돌봄 위기의 근본 원인은 우리나라의 기존의 돌봄제도와 급여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비책임성’에 있다. 우리의 사회보장 전달체계는 역사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특성을 보여왔고, 전체적으로 돌봄제도를 설계하거나 재편하는 기회없이 그때 그때 사회적 요구와 필요에 따라 부분적인 급여나 공급체계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제도적 확대를 거듭해 왔다. 그 결과 이는 돌봄 영역에서 ‘수직적 분절’과 ‘수평적 분절’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낳았다.
수직적 분절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를 의미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장애인활동지원 등 핵심 돌봄 제도에 대한 핵심적인 운영은 중앙부처와 산하 공단(건보공단, 국민연금공단 등)이 독점한다. 반면 주민의 복지에 대한 포괄적 책임은 법적으로 지자체에 있지만, 이를 이행할 실질적 권한과 자원은 제한되어 있다. 결국 지자체는 중앙의 지침을 단순 집행하는 역할에 머물기 때문에 포괄적 책임을 이행할 수도 없는 구조로 결과적으로 책임성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중앙정부 역시 아무리 핵심 돌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해도 그 제도만으로 돌봄문제를 포괄할 수도 없고, 지역의 구체적 주민의 돌봄에 대한 직접적 책임을 질 수도 없으니 역시 책임성이 부여되지 않는다. 결국 일선 지자체도, 중앙정부도 주민의 복합적인 돌봄 문제에 대해 누구도 온전히 책임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수평적 분절은 지역 현장에서 한 개인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여러 기관에 의해 칸막이처럼 나뉘어 제공되는 현상이다. 이는 중앙정부에서 통제하는 핵심 돌봄제도와 대부분의 돌봄관련 급여가 서로다른 부서와 담당자에 의해서 개별적으로 전달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막 퇴원한 노인이 지역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건보공단의 장기요양급여, 지자체 복지 부서의 일상생활 지원, 보건소의 방문 건강관리, 주거복지센터의 주택 개조 지원 등이 동시에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각 서비스는 서로 다른 기관에서, 별도의 신청 절차와 상이한 선정 기준에 따라 제공된다. 이 과정에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조정해 줄 주체가 부재하기에, 당사자와 가족은 여러 기관의 문을 직접 두드려야 하는 ‘각자도생’의 상황에 내몰린다.
이러한 총체적 분절 구조는 OECD 평균 수준의 막대한 공적 재정을 투입하고도 최악의 결과를 낳는 역설을 만들었다. 바로 ‘과도한 시설화’ 문제다. 노인인구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이미 노인돌봄 지출이 OECD 평균 수준에 이르렀지만 집에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건강 상태의 노인 10명 중 6명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소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김윤, 2023). 지역사회에서 통합적인 재가 서비스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결국 모든 것을 한 곳에서 해결해주는 시설이 유일한 대안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비효율을 넘어 심각한 인권 문제로 이어진다. 시설 입소 노인은 2년 내 사망률이 재가 노인보다 현저히 높고, 건강이 악화되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결국 국가는 국민의 존엄한 삶을 지키지 못하는, 값비싼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셈이다.
장기요양보험과 장애등급제 폐지 실패의 교훈
돌봄통합지원법을 둘러싼 현재의 논란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는 지금까지의 돌봄제도들의 실패를 반복하는 ‘데자뷔’와 같다. 우리나라 돌봄제도는 2007년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이후에 규모면에서는 비약적으로 확대되었지만 그 결과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첫 번째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이다. 법 제3조는 ‘재가급여 우선 제공’을 명시하며 법 취지 상으로는 지역사회 중심 돌봄을 지향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실제 제도의 설계와 운영은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재정 관리 책임이 있는 건보공단이 등급 판정까지 독점하면서, 제도의 무게중심은 ‘필요한 돌봄 보장’이 아닌 ‘재정 지출 통제’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지역 주민의 민주적 위임절차에 의해 구성되는 지자체와 달리 건강보험공단은 중앙에서부터 본부와 지사로 이어지는 중앙집권적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민의 돌봄보장에 대한 책임성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하루 최대 4시간에 불과한 방문요양 서비스 등 재가급여의 보장성 수준이 지역사회 생활을 온전히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으로 설계된 제도의 개혁은 18년의 역사 속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가족의 돌봄 부담을 일부 덜어주는 역할에 그쳤을 뿐, 과도한 시설화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다.
두 번째로 장애등급제 폐지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2012년 대선 공약으로 시작된 이 개혁은, 의학적 손상 중심의 등급제가 아닌 개인의 욕구와 사회적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한국 장애인복지 정책의 대전환이 기대되는 변화였다. 3차에 걸친 시범사업에서는 읍면동과 시군구가 협력하여 맞춤형 전달체계를 구축하는 모델이 높은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김동기 외, 2017). 하지만 정작 본 사업에서는 예산 미배정으로 시범사업의 성과는 형해화되었고, 결국 장애인의 욕구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서비스를 연계하는 핵심 역할은 지자체가 아닌 국민연금공단의 ‘서비스지원종합조사’로 귀결되면서 기계적인 점수산정만 남게 되었다. 이용자 중심의 통합적 전달체계 구축이라는 개혁의 핵심은 사라지고, 또 하나의 중앙집권적 판정 제도가 들어서는 데 그치고 만 것이다(김경란, 2020).
2019년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부터 시작해서 지역중심의 통합적 돌봄을 제도적으로 실현시켜야 할 현재의 돌봄통합지원법 역시 이러한 실패를 반복할 위험을 보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지자체 주도적인 통합적 돌봄의 기획과 운영으로 적지않은 경험과 역량이 축적되고도 있지만 정작 제도의 전면적 시행을 준비하는 보건복지부는 중앙집권적 통제를 유지하려는 시도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했던, 올해 난데없이 등장한 공단의 ‘단독판정’ 시도도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지만 입법예고 된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도 통제적 관행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위법령에서 나타나는 여전한 중앙통제의 의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보편적 돌봄’을 부정하는 시행령안 제2조이다. 법은 ‘노쇠, 장애, 질병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라는 포괄적 원칙을 제시했지만, 시행령안은 이를 ‘65세 이상’,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라는 특정 행정적 기준으로 협소하게 한정한다. 이는 돌봄이 시급한 50대 치매 환자, 사고로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 정신장애인 등을 원천 배제하여 새로운 사각지대를 양산하는 명백한 상위법 위반이다. 더욱이 예외 대상자를 지정하려면 지자체가 보건복지부 장관과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한 조항은, 지역의 자율성을 옥죄는 관료주의적 통제 장치에 불과하다.
이 규정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장애등급제의 부활이다. 장애등급제 폐지의 취지가 무색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는 ‘장애 정도’로 수급 자격여부를 구분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시행령안 제2조는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수급자격을 제한하여 명백하게 장애등급제 폐지를 부인하고 있다. 이는 복지부가 스스로 이행했던 장애등급제 폐지를 역행하는 자기부정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지자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시행령안 제5조의 문제이다. 이 조항은 지자체의 핵심 책무인 ‘조사’ 업무를 아무런 조건 없이 전문기관(사실상 건보공단)에 전부 위탁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미 돌봄통합지원법에서도 지자체 역할의 포괄적인 전문기관 위탁을 허용하고 있는 조항(제25조, 제29조)의 문제가 있었는데 임의조항인 이 조항을 조건없이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는 책임감을 갖고 통합돌봄을 추진하려는 지자체의 의지를 꺾고, 반대로 부담을 회피하고자 하는 지자체에게는 손쉬운 탈출구를 열어주는 셈이다. 이럴 경우 지자체는 주민의 복합적인 욕구를 직접 파악하고 계획을 세우는 유기적 과정을 포기한 채, 건보공단이 통보하는 제한된 정보만으로 ‘탁상공론’식 계획을 세우는 집행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셋째, 지역에서의 개인별 지원계획을 대체할 수 있게 하는 시행규칙안 제11조의 문제이다. 이 조항은 건보공단의 ‘통합재가서비스 계획’ 등으로 지자체가 수립하는 ‘개인별지원계획’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한다. 지자체 중심의 개인별지원계획을 건보공단 주도의 계획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여전히 지자체 중심의 돌봄체계를 기존 장기요양보험의 하위 제도로 종속시켜, 지역 자체적으로 지역의 특성과 개인의 욕구를 반영한 창의적이고 유연한 돌봄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기 보다는 언제든 공단 중심의 중앙통제적 제도로 회귀할 수 있는 장치를 남겨둔 것이다.
실용의 이름으로, 진정한 지역 주도 돌봄을 위한 제언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참여복지, 포용복지와 같은 복지정책의 방향성을 별도로 내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실용정부임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정부의 복지정책 방향성이 사실상 구호에 그쳐왔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측면이 없지는 않다. 진정한 실용주의는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가장 효과적인 해법을 찾는 것이다. 돌봄 문제의 해법은 중앙의 획일적 통제가 아닌, 주민의 삶을 가장 잘 아는 지역의 자율성과 책임성에 있다는 것이 지난 수년간의 정책 실험과 선진국의 경험이 공통적으로 증명하는 바다. 따라서 새 정부가 실용의 이름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돌봄통합지원법의 취지를 훼손하는 하위법령의 조항들을 시급히 수정해야 한다. 법의 보편적 원칙에 맞게 대상을 열어두고, 지자체의 조사업무는 직접 수행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인 경우에만 위탁하도록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또한 지자체의 개인별지원계획이 지역 돌봄의 명실상부한 컨트롤타워가 될 수 있도록 그 위상을 확고히 해야 한다.
둘째, 지자체가 통합돌봄의 주체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인력 확충과 재정 지원 계획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책임만 부여하고 권한과 자원을 주지 않는 것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고, 장애등급제 폐지의 실패를 똑같이 반복하는 길일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돌봄을 시혜가 아닌 모든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지자체에 명확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법의 전면 개정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모든 시민이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신이 살던 곳에서 존엄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소명이다.
최근에 건보공단의 단독 통합판정 조사를 지자체와의 동행조사로 전환한 긍정적 변화는 정부가 의지를 가진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중앙 통제의 낡은 관성에서 벗어나 지역 책임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면, 돌봄통합지원법은 또 하나의 실패한 개혁이 아니라 대한민국 돌봄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그 선택의 시간이 바로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