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기후위기, 불평등하게 다가오는 위험
여름이면 가장 먼저 걱정되는 것은 어르신들의 건강이다. 폭염 속에서 갈증과 탈수, 어지럼증으로 쓰러지는 어르신들의 소식은 매년 이어진다. 냉방기를 켜고 싶어도 전기요금이 두려워 선풍기 하나로 버티는 분들이 많다. 더위 앞에서 경제적 취약성이 곧 건강의 위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건설 현장이나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한낮의 뜨거운 햇볕과 열기 속에서 장시간 노동을 이어간다. 이로 인한 일사병과 열탈진은 이미 반복되는 사회적 재난이지만, 여전히 충분한 휴식과 냉방 장치가 마련되지 못한 현장이 많다. 기후위기는 일하는 사람들의 몸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영향을 주지만, 그 무게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반지하 주거에 사는 가구는 침수 위험에 가장 먼저 노출되고, 냉방비와 난방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건강을 위협받는다. 장애인이나 홀몸 어르신은 재난 상황에서 이동조차 쉽지 않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정보 접근성의 불평등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폭염·호우·한파 예보나 지원정책을 대부분 문자메시지, 앱 공지로 알린다. 그러나 개인 휴대전화가 없는 주민,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 수어가 필요한 청각장애인 등은 이런 정보를 늦게 접하거나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지원제도가 존재해도 접근하지 못한다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후위기는 단순한 기상이변이 아니라, 주거·경제·이동의 불평등과 더불어 정보 접근성의 불평등이 겹쳐지는 사회문제다. 사회복지사는 이러한 불평등을 가장 먼저 목격하는 위치에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후위기 대응을 사회복지의 핵심 의제로 다루어야 한다.
2. 사회복지의 사명, 기후정의로 이어지다
사회복지는 언제나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와 맞서왔다. 가난과 차별, 돌봄의 부재, 건강권의 침해 같은 문제들이 그동안의 과제였으며, 사회복지의 중요한 사명은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사회문제 앞에서 사회복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바로 기후정의(Climate Justice)를 실현하는 것이다. 기후정의는 기후위기의 원인과 결과가 불평등하게 분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기후위기의 피해와 부담, 전환의 혜택을 공정하게 나누는 것으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지금의 탄소배출 사회에서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 불평등을 최소화하면서 발생하는 이익은 공정하게 나누는 것인데, 이를 위해선 사회적 안전망이 잘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탄소배출을 많이 하는 직장인 석탄발전소가 폐쇄되면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고 지역경제가 흔들린다. 농민은 이상기후로 농작물 피해를 입고, 장애인·노인·아동은 전환 과정에서 참여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이를 방치한다면 탄소중립은 오히려 또 다른 사회적 불평등을 낳을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이들을 보호하고, 변화의 부담을 사회 전체가 함께 나누자는 정책방향이다.
사회복지사는 바로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기후위기를 단순히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책의 문제로 바라보고, 우리가 만나는 이용자와 주민이 탄소중립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옹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생활 속 실천, 그러나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생활 속 작은 실천’으로 떠올린다. 분리수거, 텀블러 사용, 전기 아껴 쓰기. 물론 이런 실천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기후위기의 거대한 흐름을 바꾸기 어렵다. 그 이유는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이 우리의 에너지 체계에 있기 때문이다. 물건을 생산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소비되는 데 그 에너지의 대부분은 화석연료에서 나온다. 우리가 전기를 조금 아낀다고 해도, 그 전력이 여전히 석탄과 석유에서 생산된다면 탄소 배출은 크게 줄지 않는다. 따라서 생활 속 실천은 출발점이지만 반드시 정책 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 주민의 작은 행동이 제도와 정책 변화를 촉발하는 경험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 많이 확산된 플로깅은 단순한 봉사활동에서 그치지 않는다. 주민들이 직접 쓰레기의 양과 종류를 경험하면, “지역에 분리수거 체계가 부족하다”거나 “일회용 플라스틱이 너무 많다”는 문제의식이 생긴다. 이 경험은 곧 지자체에 재활용 분리수거 시설 확충이나 다회용기 세척 지원 제도 같은 정책 제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정 공원이나 하천에서 반복적으로 쓰레기를 수거하다 보면, “청소 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는 지역 환경 관리 조례 보완 요구로 확장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복지관이나 마을에서 시도하는 작은 텃밭 가꾸기와 도시농업 활동도 있다. 주민들은 직접 채소를 심고 가꾸며 자연의 변화를 몸소 체험한다. 그러나 여름철 폭염과 가뭄, 장마로 인한 작물 피해를 겪으면서 기후위기가 농업과 식량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하게 된다. 이 경험은 곧 “도시농업을 위한 지자체 지원 확대”나 “도시 내 빗물 재활용 시스템 구축”, “지역 농산물 소비를 늘리는 로컬푸드 정책” 같은 구체적 정책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활동은 주민들이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로 성장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사회복지사가 이를 지원하면 단순 활동이 아니라, 주민의 경험이 제도와 정책 변화로 연결되는 중요한 과정이 된다. 결국 생활 속 실천은 작은 출발점이지만, 그것이 정책 전환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사회복지사는 주민들의 작은 경험을 모아 제도와 정책 변화의 목소리로 확장하는 가교가 되어야 한다.
4. 사회복지사의 길, 정의로운 전환을 함께 만들기
사회복지사가 기후위기 대응에서 맡는 역할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후재난 대응 및 이재민 지원이다. 폭염, 폭우, 폭설 등 기후재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주민 곁에 서야 한다. 취약 주거지 및 주민 점검을 통한 예방, 재난 발생 시 긴급 지원, 일생 생활 지원, 재난 이후의 회복을 위한 서비스 연계, 상다 및 정보 제공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과제다. 그리고 향후 전략 개발을 위해 재난 후 관련 통계자료를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 지역사회 역량강화이다. 기후위기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지만 구체적인 대응방법은 지역 특성에 따라 다르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사회복지사는 주민들이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로 서도록 지원해야 한다. 교육을 통해 주민 및 사회복지시설 직원들이 기후위기 대응과 실천의 필요성을 내재화하고 지역사회에 공유될 수 있도록 한다. 다양한 시설과 기관들을 연계하고 주민들이 다양한 의사결정에 의미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환경 교육, 마을 숲 가꾸기, 플로깅, 에너지 협동조합 참여는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주민을 기후위기 대응의 행동 주체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셋째, 정책 변화를 위한 옹호이다.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은 결국 정책 변화에 달려 있다. 그러나 현재 시행 중인 탄소중립 지원 정책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다. 예를 들어, 탄소중립 실천 포인트는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편리하게 설계되어 있고, 기후동행카드와 같은 지자체의 교통정책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만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는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 거주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교통약자,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 주민들이 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참여 대상에서 배제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책 설계 과정에서 비롯된 구조적 불평등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동등하게 탄소중립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책이 개선되어야 한다.
사회복지사는 바로 이러한 사각지대를 드러내고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지자체 조례에 취약계층 참여 보장을 명문화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수립하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불평등 해소 관점이 반영되도록 제안하며, 학계·산업계 중심으로 꾸려진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 기후위기 피해 당사자인 취약계층 대표가 반드시 포함되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 참여가 아니다. 모든 주민이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동등하게 참여하고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곧 절차적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다.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불평등은 심화될 수도, 완화될 수도 있다. 작은 생활 실천은 출발점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책 변화로 이어지고, 무엇보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이 근본 해결책으로 자리 잡을 때, 우리는 비로소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는 주민 곁에서, 지역사회 속에서, 그리고 정책 변화의 최전선에서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옹호자로 서야 한다. 사실 새로운 역할은 아니다. 우리가 언제나 해왔던 사회정의 실현의 사명을 기후위기라는 시대적 과제에 맞추어 더욱 강화해야 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정의로운 전환이다.
장애인신문·웰페어뉴스=정유정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