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ㅣ 최봉혁 칼럼니스트 ㅣ 한국구매조달학회
RE100. 이제 이 단어는 단순한 환경 캠페인을 넘어 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됐다. 글로벌 투자사와 고객사는 기업의 재무제표만큼이나 RE100 달성률을 중시한다.
그러나 수많은 기업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재생에너지 인증서(REC)를 구매하는 데 열을 올리는 동안, 이 거대한 전환의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퍼즐 한 조각을 놓치고 있다. 바로 ‘사람’, 그중에서도 ‘장애인’이다.
에너지 전환이 기술과 자본의 논리로만 흐를 때, 필연적으로 새로운 소외 계층을 낳는다. RE100이라는 거대한 목표 뒤편에서, 장애인은 그저 수혜나 배려의 대상으로 남겨지거나 아예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현실.
이는 ESG 경영의 본질을 망각한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진정한 RE100의 완성은 기술적 목표 달성을 넘어, 그 과정에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을 실현하는 데 있으며, 그 출발점은 바로 장애인, 특히 전문성을 가진 중도장애인의 잠재력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 구호에서 행동으로
‘정의로운 전환’은 화석연료 산업 노동자의 일자리 보전을 넘어, 새로운 녹색 경제 시스템을 설계하는 단계부터 포용성과 공정성을 내재하는 적극적 개념이다. 이는 과거 산업화 시대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되며 만들어낸 구조적 차별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특히 교통사고, 산업재해, 천재지변 등 예측 불가능한 사회적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중도장애인’에게 이 약속은 더욱 절실하다.
이들은 장애 이전,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과 경력을 쌓아온 인재들이다. 사고로 신체적 제약은 생겼지만, 그들의 지식과 경험, 문제해결 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역경을 이겨낸 강인한 의지와 새로운 관점은 기업에 예측 불가능한 위기를 헤쳐 나갈 독창적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다.
이들을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배제하는 것은 개인의 불행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막대한 인적 자원 손실이다. 기업은 이들을 단순한 ‘채용 할당’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기업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핵심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
스티븐 호킹이 증명한 잠재력, AI 시대에 만개하다
“나의 목표는 단순하다. 우주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루게릭병으로 전신이 마비되었지만,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우주의 비밀을 탐사했던 스티븐 호킹. 그의 뇌는 우주를 향했고, 그 뇌를 세상과 연결한 것은 바로 보조공학기기였다.
안경에 부착된 적외선 센서와 뺨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그리고 그의 생각을 예측하는 소프트웨어는 그의 신체적 한계를 넘어 인류의 지성을 확장시켰다.
호킹의 사례는 극적인 예시가 아니다. 이는 보조공학의 발전이 인간의 잠재력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오늘날 AI, 딥러닝, IoT 기술은 제2, 제3의 스티븐 호킹을 탄생시킬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 특히 기후테크(Climate-Tech) 분야는 이러한 잠재력이 만개할 최적의 토양이다.
미국의 최신 고용 데이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의 2024년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의 고용률(22.7%)은 여전히 비장애인(65.5%)에 비해 현저히 낮지만, 주목할 점은 고학력 장애인일수록 고용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춘 장애 인재 시장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 데이터 분석 등 기술 기반 직무는 물리적 장벽이 낮아 중도장애인의 전문성을 발휘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이들이 기후테크 생태계에 합류한다면, 에너지 전환의 속도와 깊이는 상상 이상으로 달라질 것이다.
녹색 일자리, 장벽을 허물고 기회를 열다
그렇다면 RE100을 추진하는 기업은 중도장애인의 전문성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녹색 일자리는 더 이상 발전소 건설 현장의 육체노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에너지 데이터 분석가:전국 스마트그리드에서 수집되는 방대한 에너지 소비·생산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에너지 분배 모델을 설계한다. 이는 고도의 분석력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직무로, 물리적 이동과 무관하게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
AI 기반 원격관제 전문가:드론과 AI 영상분석 기술을 활용해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등 전국에 흩어진 재생에너지 설비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하고 유지보수 계획을 수립한다.
기후테크 접근성 컨설턴트:전기차 충전소, 에너지 관리 앱 등 새로운 녹색 기술과 서비스가 개발 단계부터 장애인 사용자의 접근성을 고려하도록 설계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테스트한다.
AI 모델 윤리 감사관:기후변화 예측, 에너지 수요 예측 등에 사용되는 AI 모델이 특정 계층이나 지역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감사하고 수정한다.
이러한 직무들은 기업이 유연근무제, 원격근무 시스템을 도입하고, 화면낭독기, 특수 입력장치 등 개인 맞춤형 보조공학기기를 지원할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이는 비용이 아닌, 최고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 투자다.
기술과 포용, 지속가능성의 두 날개
RE100은 단순한 에너지원의 교체가 아니다. 이는 기업의 경영 철학과 사회적 책임의 수준을 드러내는 바로미터다. 기술적 목표에만 매몰되어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놓친 RE100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사회적 사고로 인해 예기치 않은 장벽을 마주한 전문가들, 그들의 멈추지 않는 두뇌와 보조공학기기, 그리고 AI 기술의 발전은 기후테크 시대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
기업이 이들의 잠재력을 끌어안고 녹색 일자리의 문을 활짝 열 때, RE100은 비로소 마지막 퍼즐을 맞추게 된다. 기술적 목표(RE100)와 사회적 가치(장애인 포용)라는 두 날개로 비상하는 기업만이 ESG 시대의 진정한 승자로, 흔들림 없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자료 출처]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BLS), “Persons with a Disability: Labor Force Characteristics – 2024” News Release.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 “Just Transition of the Workforce, and the Creation of Decent Work and Quality Jobs.”
World Resources Institute (WRI), “What Is a ‘Just Transition,’ and Are Countries Really Making Progress?”
Intel, “Intel's Role in Giving Stephen Hawking a Voice.”
고용노동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AI·ICT 장애인 보조공학기기 공모전” 관련 자료.
최봉혁 ESG칼럼니스트 약력
- ESG·RE100·DX·AI 융복합 전문가 사내교육
- 직장 내 장애인인식개선교육 전문가
- 한국AI.ESG교육협회 부회장
- 한국구매조달학회 이사
- 한국언론정보기술협회 이사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출판사 대표
- 더이에스지뉴스(THE ESG NEWS) 편집인
-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직장 내 장애인인식개선교육 전문강사
- 문화예술장애인인식개선강사 민간자격발급기관 대표
*웰페어뉴스·장애인신문에서는 독자 여러분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최봉혁 ESG칼럼니스트의 ‘ESG 경영 칼럼’을 연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