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단 한 켤레 밖에 없는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발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맞춤구두를 만들고 있는 남궁정부(66) 소장이 바로 그. 열두 살 때부터 구두를 만들어 온 남궁정부 소장은 지난 95년 불의의 사고로 오른팔을 잃게 된 뒤 장애인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장애를 갖게 된 후 발이 불편한 사람들이 마땅히 신을 신발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한쪽 팔을 잃은 뒤 장애가 그를 옭아매고 세상은 등을 돌렸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아들과 며느리가 원서를 번역해주면 밤새워 족부의학을 공부하고 입으로 물고 뜯는 연습을 거듭하며 장애인을 위한 특수구두를 만들어냈다. 장애인구두를 만드는 과정은 발을 컴퓨터로 스캔을 떠 정확한 치수를 잰 후에 석고로 모형을 만드는 고된 작업
이제 우리나라도 입양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돼 입양을 하는 부부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 없는 자식으로 세상에 태어나 외국으로 보내지는 아이들이 아직도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을 못마땅해 하며 입양을 입양이 아닌, ‘우연’과 ‘인연’으로 정의 내리고 있는 멋진 남자가 있다.데뷔 27년이 지나도록 ‘인간적이고 의리 있는 사나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는 개그맨 엄용수가 바로 그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속에 엄씨에겐 2남 1녀의 세 자녀가 있다. 그런데 그 중 첫째(아들)와 둘째(딸)가 가슴으로 낳은 자녀들이다.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엄씨는 시골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다. 그의 시골집에 세를 살던 가족의 아이들이 부
서울 강남에서 단돈 1만원에 안면장애 수술을 해주는 괴짜의사 한성익씨. 성형외과 의사라고 하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는데 “단돈 만원이 뭐냐”며 아내도 처음에는 이해해 주지 못했다고 한다.그가 만원으로 수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99년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안면장애를 가진 환자를 맞고부터였다. 선천적으로 얼굴이 찌그러져 고통을 받고 있던 분이었는데 돈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를 중간에 중단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미가 부여되고 미화되었지만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한성익 원장은 도리어 이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안면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사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의 연속과 아픔을 가진 이들이다. 이들은 화장을 하고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것처럼
아버지, 어머니, 형, 남동생이 나란히 등교를 하고,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다. 바로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장남 송성규(28)씨의 대학 공부를 위해 온 가족이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다니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 대구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 편입시험에 온 가족이 나란히 응시해 합격했고, 이미 2년 전부터 아시아대 사회복지학과에서 함께 공부해 왔다. 바로 대구에 사는 송희근, 홍숙자 부부와 송씨의 작은아들 송주현씨가 그들이다.송씨 가족은 수업이 있는 날이면 주현씨가 운전하는 자동차로 학교 캠퍼스에 도착해 휠체어에 뇌성마비 1급인 성규씨를 앉히고 강의실로 이동한다. 수업시간에 듣는 강의 내용 정리는 주현씨가 도맡아 하고, 나머지 세 식구도 수업에 열중한다.온 식구가 어떻게 함께
세계지도 속에 우리나라는 쉽게 찾을 수 없을 만큼 작은 크기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지도 속의 작은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결코 작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국인이 세계무대에서 펼치는 활동이 우리나라를 크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한국을 빛냈던 100인의 위인들 못지않은 큰 활동으로 우리나라를 국제사회로 이끌어가고 있는 이를 만나본다.국제10021클럽 이준구 총재. 사람들은 그를 ‘미국 태권도의 아버지 이준구 사범’, ‘그랜드 마스터’라고 칭한다. 그는 태권도를 한국의 대표적 문화로 미국에 처음 보급해 한국의 무예를 알렸다.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 사범은 단순히 ‘싸움의 기술’을 가르치는 무술인이 아닌, ‘인간을 가르치는 무도인’으로 그 진가를 발휘
‘당신이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당신의 꿈이 이뤄지길 돕는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 나온 말이다. 열정을 갖고 모든 일에 임하면 결국 이뤄진다는 진리. 항상 나오는 말이지만 이 평범한 진리는 항상 기적을 만들어 낸다. 꿈을 향한 간절함으로 자신의 길을 성공적으로 걷고 있는 국악인 박공숙씨. 박 씨는 어린 시절 척추 장애를 앓아서 어머니의 등에 업혀 병원을 다녔다. 그때 언덕길을 오르시던 어머니가 부르던 한국 민요에 매료돼 국악인의 길을 걷게 된다. 지금은 무형문화제 57호 이은주 씨의 제자로 경기 민요를 전수받고 있다. 국악을 배우면서 장애에 대한 편견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다. 국악을 하기 위해선 한복을 입어야 하는데 “너는 그런 옷 안 어울린다”는 말은 가슴에
우리 신문에는 항상 “따뜻한 뉴스”라는 면으로 사람들 사이에 따뜻한 정이 오가는 소식을 전달하고 있다. 이런 따뜻한 뉴스에 들어갈 수 있는 일을 매일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를 거르지 않고 장애인ㆍ노숙인 600여명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는 영등포 밥사랑 열린 공동체. 생활 형편이 어려운 100여 개 가정에 도시락을 배달하는 부평글나라밥집. 98년 문래동 고가다리 밑에서 장애인들에게 무료 점심을 제공하던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그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영등포장애인사랑나눔의집 김금상 원장.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고자 장애인신문 기념식에서 사회에 온기를 불어 넣고 있는 이 사람들에게 쌀을 전달했다. 이들 외에도 사회 곳곳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설움을 달래주고자 애쓰는 분들께도 이 지면을 빌려 감
여우와 두루미가 한 마을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여우가 두루미에게 저녁 식사 초청을 했다. 잔뜩 기대를 하고 갔던 두루미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긴 부리로는 먹을 수 없는 편편하고 큰 접시에 담긴 수프가 나왔기 때문이다. “두루미님 맛있게 드세요.” 여우는 그렇게 말하고 수프를 맛있게 핥아 먹었다. 며칠 후 이번에는 두루미가 여우를 만찬에 초대했다. 음식은 주둥이가 길죽한 물병에 들어있었다. 여우는 주둥이를 내밀어 음식을 먹으려 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고도로 전체화 된 사회에서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 관계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인간
경기도 포천의 작은 마을. 그곳에서 피아니스트를 꿈 꾸는 소녀를 만났다.올해로 5살이 된 시각장애인 유예은 어린이가 그 주인공이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예은양은 세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들려준 노래를 곧바로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뛰어난 청력을 보이기 시작했다.예은이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고 오로지 컴퓨터로 음악을 들은 후 연주해내는 것이 전부이다. 흔히 말하는 ‘절대음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예은이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기자가 부른 노래를 단 두 번 듣고 건반 멜로디로 옮겼으며,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피아노 리듬을 한 번에 파악하고 그대로 연주했다.앞을 보지 못하고 아직은 손가락이 짧은 탓에 부분부분 정확하지 않은 연주가 보여지긴 했으나, 매스컴을
이제 꼭 한달이 되었다. 내 이름 석자 뒤에 ‘기자’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 것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달 동안 ‘장애계’를 알기 위해 또 ‘기자’라는 이름값을 하려는 초보기자에게 좌충우돌 많은 사건이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동료기자와 함께 보도블록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장애인을 위한 편의성을 취재하겠다고 휠체어를 타고 시내에 나갔던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실제 장애인들을 만나 대중교통의 실태에 대한 인터뷰를 한다면 개선점을 금방 알게 될 텐데... 초짜기자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동행취재였다. 하지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동료기자가 휠체어에 앉아 서툴게 휠체어를 끄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밀어주시던 아주머니, 전철을
2006년에 극단 ‘미친(美親)’을 세운 기홍주씨를 만났다. 그는 시각장애 2급이다. 당뇨합병증으로 왼쪽 눈을 실명했고, 오른쪽 눈은 흐릿하게 보인다. 그런 그의 첫 작품 ‘if’가 관객들을 찾아간다.Q.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A.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반에서 활동했고, 서울예대에서 무대・조명디자인을 배웠다. 2001년 시력을 잃고, 3년간 두 번의 자살시도를 하는 고비도 겪었다. 연극 외에 다른 일도 해봤지만 실패했다. 배우를 해보라는 가수 강원래의 조언이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예술마케팅을 배웠고, 제작, 기획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역시 쉽지 않았지만, 학교동창들과 선후배들이 나의 눈이 돼주었다.Q. 극단 ‘미친’의 뜻은?A. ‘연극에 미쳐보자’는 뜻으
불의의 사고로 양팔목을 잃은 중국 조선족 여학생의 꿋꿋한 홀로서기가 감동을 주고 있다.그 주인공은 지린(支林)성 옌지(延古)시 제2고급중학교에 재학중인 김련화(18) 양. 그는 뭉툭한 양팔로 붓을 잡고 붓글씨를 쓰는가 하면 전자오르간 연주도 할 수 있다. 현재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김 양은 일상 생활에서의 일은 스스로 해나가는 등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다. 물론 이런 활동을 하기까지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다. 연필을 잡고 글을 쓰기 위해 팔목 끝에서 피고름이 나올 정도로 연습했고, 스스로 밥을 먹기 위해 팔에 숟가락을 묶었다. 또 자전거를 배우기 위해 수도없이 넘어지는 등의 많은 노력을 했다. 다른 친구들과 같이 전자 풍금을 연주하고 싶어 뭉툭한 두 팔을 이용해
비폭력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화해의 희생양을 하나 뺀 모든 사람의 일치다. 사회학자 르네 지라르의 말이다. 지라르의 이 말은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집단 내에서 동질성을 확보할 수 없는 사람을 타자화 시키고 그들을 배제하는 논리는 우리 사회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취재를 다녀온 동작구의 예를 본다면 그렇다.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서 정착하도록 도움을 주는 시설의 도입이 주민의 반대로 인해 지연되고 있다. 주민들은 시설의 도입으로 인해 치안이 불안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런 주민들의 우려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주민들이 정신 장애인들을 접해보진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TV나 영화에서 나오는 히스테리컬하고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오토다케 히로타다(30)가 다음 달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나선다. 오토다케는 4월 학기부터 도쿄 스기나미구의 한 구립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예정이라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작년 10월 도쿄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마쳤고, 지난달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교생 실습 때 그는 턱과 왼팔에 분필을 끼워 글자를 썼으며, 휴대용 컴퓨터에 입력한 문자가 나타나는 프로젝터를 사용했다. 체육 활동을 지도할 때는 말로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교사로서 문제가 없다’는 합격 판정을 받았다. 오토다케는 임기가 제한된 기간부 교사로 임용되며, 체육 등을 가르칠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왔다”며 앞으로 교사 활동에 대한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 선천적
초등학교 시절 ‘장애인’이라는 말은 내게는 ‘외계인’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렸다.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말에 섞인 편견의 탓도 있었겠지만, 실제로 장애인을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쌓여온 ‘무지의 편견’이 나타난 것은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할 때였다. 나름대로 이성적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해왔고, 장애에 대한 편견에 대해 목청 높여 반대해왔지만 실제로 장애인을 대하는 것과는 달랐다. 숟가락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하는 1급 장애인을 수발하며 느낀 것은 피로감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내 썩소(썩은 미소)는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때 느꼈던 부끄러움만큼 장애인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종이(이론)가 아닌 사람(실제)을 말이다. 그러면서 차차 내가 어린
햇살이 따가운 오후. 서울대학교 교정에서 만난 김예솔 양의 표정은 햇살보다 밝았다. 김예솔 양은 1급 지체 장애인이지만 장애인 전형이 아닌 수시 모집으로 서울대에 입학해 화제가 되고 있다. 김예솔 양은 “어차피 대학에 와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특별 전형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와 달리 강의실마다 이동을 해야 하는 점이 생소하다는 김예솔 양은 그러나 “대학 생활은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에 굉장히 마음에 든다” 고 새내기로서의 생각을 이야기했다.김예솔 양의 꿈은 유니버셜 디자이너다. 유니버셜 디자이너란 장애인이나 고령인이 일상 생활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디자인을 구성하는 직업이다. 김 양은 “장애를 겪고 살아오면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겪어
한 젊은 청년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멋진 구성원으로 거듭나고 있다.수원시장애인종합복지관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중증 장애인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 1월말 장애인 1명을 TGI.Friday 북수원점 ‘디시 워시’로 첫 지원고용 하는데에 성공했다.주인공은 바로 22살의 꿈 많은 하종우 씨.하종우씨는 정신장애2급의 젊은 청년으로 현재 지원고용에 발탁되어 TGI.Friday 북수원점에서 주5일 근무를 하고있다.하종우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월급을 받아서 돈을 모으고 싶었다. 아주 재미있고 계속 다니고 싶다”면서, 일에 대해 흥미를 보였다.그의 아버지 또한 “어딘가에 소속되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된 아들이 자랑스럽고 기특하다며 본인이 할 수 있는 시점까
이번 대회 빙상 종목에서는 유달리 눈에 띄는 선수가 있었다. 다른 선수들을 한바퀴 이상을 제치며 10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이영석 선수. 이영석 선수는 이번 동계체전 남자 1000m 결승에서 우승하면서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중학교 때부터 스케이트를 배운 이영석 씨는 현재 국가대표 선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2006년 나가노 동계 특수 올림픽에서도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금메달을 딴 바 있다. 대한민국 1등이 세계 1등이라는 말을 이영석 선수가 증명한 것이다. 발달장애인은 혼자 다니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영석 선수의 옆에는 항상 어머니 김미리(44) 씨가 함께 다닌다. 김미리 씨는 “영석이가 어렸을 적부터 집에 있기보다는 밖에 나가서 활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며 “아이가 재미있어
그가 풍선을 들었다. 그의 입김이 닿자 풍선이 부풀어 오른다. 그의 손끝이 닿자 아무것도 아니던 풍선이 아름다운 형상을 갖춰 나간다. 죽어 있던 풍선이 살아 움직인다. 벌룬아티스트 고홍석(36세ㆍ시각1급) 씨. 사무실에 들어서자 사람들 앞에서 매직풍선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는 들고 있는 풍선의 모양과 세밀한 선까지 정확히 설명했다. 정말 시각장애인일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저보고 진실을 밝히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길을 가다 잘 보이지 않아서 부딪히거나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죠.”고홍석 씨는 처음부터 시각장애인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베체트병에 걸리면서 피부질환을 앓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시력이 점점 나빠졌다. 베체트병은 눈ㆍ구강ㆍ성기 등에 염증
나이가 들면 변비가 많이 발생하는 경우를 본다.한방에서의 변비의 발생원인은 다양하다. 그런데 보통 보면 변비에 기상 시 공복에 찬물을 먹으면 변비가 좋아진다는 둥 뭘 먹으면 변비가 낫는다는 둥 다양한 설들이 많이 있다.다들 잘못된 방법이다. 아침에 공복 시 찬물을 먹으면 오히려 복통이나 몸이 냉해지는 분들도 있다. 또 단방약을 찾아 복용하다 처음에는 효과를 보다가 며칠 지나서 부작용이 되어서 오는 경우도 종종 본다. 심지어 관장까지 자주하다 장기능이 마비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전문가에게 상담하고 치료를 받지 않아서 나타난다. 일단 변비의 원인은 다양하다.변비의 원인을 열거해보면1.장에 열이 있어 발생하는 경우2.음식물을 잘 못 먹어 위장장애가 있어 발생하는 경우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