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대 ‘장애인이 나설 때(장때)’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장애인운동을 진행하면서 문화적 코드로 사회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서 문화적 코드로 장애인운동을 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고민을 하게 됐고 ‘장애인이 나설 때’라는 단체명을 만들게 됐다.△요즘 주로 진행하고 있는 일들은?- 캐리커처 사업을 하고 있다. 보통 장애인분들은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한다. 사진을 찍으면 항상 보조도구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장때는 이런 점을 생각해 캐리커처를 통해 장애인의 모습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려내 티셔츠로 제작해 준다. 장애인분들이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장애인분들보다 비장애 활동가분들이 더 좋아해서 보람을 느낀다. 현재 제주, 광주, 부산의 중증
한국인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이자 미 백악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인 강영우 박사가 지난 4일 인천광역시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강 박사는 강연회에서 시각장애인으로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구체적인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정진할 때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어린 시절 열병으로 시력ㆍ청력을 잃고 언어장애마저 잃었던 헬렌켈러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육안을 갖고도 비전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했던 말을 인용해 자신도 인생에 3단계의 뚜렷한 목표를 갖고 노력한 결과 오늘에 이르렀다고 강 박사는 말했다. 특히 교육학 박사출신인 그는 시각장애인 아버지인 자신이 아
올해로 35년째를 맞이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971년 가족계획연구원으로 출발해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종합적인 연구기관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현재 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김용문 씨를 만나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대한 문제점과 대책에 대해 들어봤다.▷저출산에 대한 준비를 미리 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60~70년대를 거쳐 오면서 강한 인구억제정책을 펼쳤다. 그로인해 90년대 중반 출산율이 1.6명 정도로 떨어졌다. 굉장히 심각한 상황임에도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있었다. 일본정부가 90년대 중반 출산율이 1.57명 일 때부터 적극적으로 저출산 대책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것과 비교하면 정부의 대처가 늦었다고 본다.그러나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도 지난해 ‘저출산·고령화 기본법’을
▶한미 FTA 저지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지난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 한미 투자협정(BIT)을 접하면서 참 불합리한 협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BIT를 맺을 경우 투자에 대해 내국인 대우를 해주겠다는 것인데 이럴 경우 국적법 자체가 무력화된다. 한 나라의 방송ㆍ신문 등 언론 및 영화 등 문화 영역까지 외국자본이 침투되더라도 막을 방안이 없다는 것인데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이후 FTA(자유무역협정), WTO(세계무역기구)협상, MAI(다자간투자협정) 등 각 영역에 대해 두루 공부하면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해 본격적인 저지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FTA란 과잉자본의 활로를 열어주는 하나의 통로다. 크게 관세와 투자 영역에서 자유로운 무역을 가능케
오는 23일 일민미술관에서 막을 올리는 동아ㆍLG 만화페스티벌 극화부문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만화가 박경배 씨. 현재 인기게임 카트라이더와 메이플스토리의 카툰 연재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지만 만화가의 길을 걷기까지는 남모를 아픔이 있었다. 지난 2001년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를 어머니와 함께 극진히 간호했으나 결국 3년 만에 돌아가시고 말았고, 박경배 씨는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가장 사랑했고 아꼈던 만화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무일푼에 혈혈단신으로 광주에서 서울로 상경한 그는 노숙생활 등 갖은 고생을 하면서 만화를 그렸다. 박 씨는 “노숙생활을 하다가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구타를 당해 여자화장실에서 잠을 청한 적도 있었다”며 어려웠던 그때를 회상했다. 또한 “만화학
25세의 젊은 감독 박재현 씨. 그는 청각장애 2급의 농아인이다. 그는 지금까지 6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해 지난 4월에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서 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를 들고 나와 세상과 소통하게 된 박 씨. 하지만 그만의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그에게는 수많은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비장애인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구화학교를 거쳐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진실한 대화를 나눌 사람들은 없었다. 친구들도, 선생님도 너무 먼 대상일 뿐이었다. 박 씨는 “문화가 다른 사람들끼리 함께 있다는 건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말과 돼지가 함께 살아갈 수 없듯이 각자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사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송을 경험하기 위해 엑스트라에
“일하고 싶었어요. 내가 방송국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다른 게 없더라구요. 영화를 하면, 회사에서 이 사람에게 일을 줘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지난 1998년 시청률 50.2%를 기록한 KBS 드라마‘야망의 전설’의 연출자 김영진 PD. 드라마 연출가에 대한 꿈과 열망을 갖고 3년 만에 방송국에 입사해 평범하게 지냈던 그에게 지난 2000년 커다란 시련이 닥쳤다. 미국에서 유학중이던 가족들을 만나 함께 여행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며 장례식을 준비하라고 했지만 가족들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 교인들과 아내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교대로 간병을 하면서 의식을 되찾았고 비록 지금도
▶ 안마사자격에 대한 위헌판결이 시각장애인에게 주는 불안감이 클텐데요?안마와 침술은 시각장애인에게 100여년간 이어져 온 독점적 권리이며 생리학·병리학·해부학 등 많은 공부를 통해 어렵게 습득해야만 하는 기술입니다. 이렇듯 어렵게 이어 온 시각장애인들의 안마사 자격을 비시각장애인에게도 개방하는 것은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며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경쟁을 한다면 시각장애인이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비시각장애인에게 안마사자격을 개방한 후 시각장애인들의 1.7%만이 안마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나머지 98%는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전락한 것이 현실입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실명을 하는 중도장애인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시각장애인 현황은
장애인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장애인 당사자다. 장애인 당사자가 주축이 돼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장애인에게 판매하는 기업이 있어 관심을 모았다. 전 직원의 50% 이상이 장애인인 기업 엘즈산업을 지난 21일 탐방했다. 엘즈산업은 지난해 7월부터 직원들의 합숙훈련을 통해 사업을 추진, 지난 2월 설립됐다. 소화기 및 스프레이 제품 생산 기업 세이지에서 분리된 엘즈산업은 현재 본사직원 18명 중 10명이 지체장애인으로 구성된 장애인고용기업이다. 이들은 모두 휠체어를 탄 장애인으로 홈페이지 개발 및 웹디자인을 담당하는 전산관리팀과 휠체어 A/S를 담당하는 휠체어기동수리반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전산관리팀 안동혁(23ㆍ지체1급) 씨는 직업능력개발센터에서 웹디자인
뜨거운 피로 꺼져가는 생명에 불씨를 지피는 이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11년간 지금까지 205회 헌혈해 지난 14일 세계헌혈자의 날 기념식에서 헌혈유공자 표창장을 받은 김종철(49ㆍ지체3급) 씨가 그 주인공이다. 4세 때 앓은 뇌염으로 장애인이 된 그는 1995년 첫 헌혈을 했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에서부터 출발한 헌혈은 현재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부분이 됐다. 피아노조율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적은 수입인데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자로 남들 보기에는 매우 어려운 형편에 놓여있는 김종철 씨. 그러나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긴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주변에 자원봉사를 하는 장애인이 없어 선뜻 나서기 어려웠던 김 씨는 동사무
시인 김영랑은 왜 봄을 찬란한 슬픔으로 표현했을까.꽃은 피고 진다. 계절은 돌고, 세월은 흐른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슬픔이 지나면 기쁨이 올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다림은 때론 사람을 힘들고 지치게 한다. 인생의 파도 앞에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고 움츠러든다. 과연 봄날은 올 것인가. 얼굴에 큰 점을 안고 태어난 김가연(25ㆍ신흥대학 2년) 씨. 선천성 거대모반증으로 얼굴 한 쪽을 늘 머리카락으로 가려야 했던 그녀의 젊은 날은 슬픔과 어둠으로 점철됐다. 내게 행복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항상 되물어야 했던 김 씨. 점을 가진 것이 죄는 아니다. 하지만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한국사회에서 그녀의 점은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우리 모두는 늘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배심원 석에 앉혀 놓고, 피고석에 앉아 우리의 행위를 변명하고자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 안셀름 그륀인간은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인간은 항상 남의 시선에 좋은 것은 무엇이든 쉽게 드러낼 수 있지만 반대로 나쁜 것은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억압되는 모순적 상황 속에 놓이게 된다. 자본주의와 매스컴의 발달로 도래한 대중문화. 대중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란 존재는 이 모순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 다수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만 갖춰야 하는, 못나고 부족한 것을 드러내면 대중의 비난과 질타의 화살을 언제 맞을지 모를 불안감에 떨게 되는 스타. 하지만 이 모든 불안과 고통을 뒤로
▲ 거리응원을 나온 소감은 어땠는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 전동휠체어가 없어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축구를 봤다. 부모님은 축구에 관심이 별로 없으셔서 주로 혼자 경기를 봤다. 골을 넣을 때마다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폐가 될 것 같아서 속으로만 조용히 좋아했다. 보조기구가 있었다면 10분 거리의 동네 초등학교에서 주민들과 함께 응원하고 즐거워 했을 거다. 친구들과 거리응원도 함께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아쉽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거리응원에 많이 참여하고 싶다.▲ 시청 앞까지 이동하는 동안 힘들었던 점은?- 우선 거리응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라는 생각에 장애인 콜택시를 불렀다.
▲ 거리응원을 나온 소감은 어땠는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 전동휠체어가 없어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축구를 봤다. 부모님은 축구에 관심이 별로 없으셔서 주로 혼자 경기를 봤다. 골을 넣을 때마다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폐가 될 것 같아서 속으로만 조용히 좋아했다. 보조기구가 있었다면 10분 거리의 동네 초등학교에서 주민들과 함께 응원하고 즐거워 했을 거다. 친구들과 거리응원도 함께 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아쉽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거리응원에 많이 참여하고 싶다.▲ 시청 앞까지 이동하는 동안 힘들었던 점은?- 우선 거리응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라는 생각에 장애인 콜택시를 불렀다.
세무법인 석성의 조용근 회장. 그에게 나눔이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 길 가다가 우연히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어려운 이웃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면 바로 후원금을 보내고 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면 주변에 있는 지인들을 종용하는 것이 주특기이다. 지난 1994년 하반신 마비의 지체장애인인 김정자 씨를 만나면서 장애인에 관심 갖게 된 그는 매월 첫주 일요일 오후 거여동 소망의 집(정신지체장애인 생활시설)을 방문해 30여명의 정신지체장애인들에게 이용과 목욕 봉사를 해오고 있다. 국세청 공보관과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지낸 바 있는 그가 지난해 공직생활을 떠나면서 설립한 세무법인의 개업식 때는 축하 화한 대신 사랑의 쌀을 받아 소망의 집을 비롯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겨우내 황폐해진 땅에서 만물이 소생하고 새 생명이 움트는 봄이 찾아왔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딱딱한 땅 가운데 생명이 피어나는 것은 T.S 엘리엇의 말처럼 가장 잔인해 보일 수 있지만 또한 가장 희망적인 일이기도 하다.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으로 단단히 굳은 땅을 딛고 일어나, 희망을 품고 새 텃밭을 가꾸는 한 사람이 있다. 세종사이버대학교 오윤진(39ㆍ시각장애1급) 사회복지학부장이 그 주인공이다.잘못된 두 번의 비류관 수술로 시신경을 다쳐 4세 때 한쪽 시력을 잃고, 12세 때 나머지 한쪽의 시력마저 잃어버린 오 학부장. 전맹인 상태로 초등학교를 마친 그는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대전맹학교와 서울국립맹학교에서 수학한 후 마침내 중앙대학교 사회복지
■ 네오위즈 박진환 사장 정신지체인 김민수씨의 멘토이자 원정대 대원들의 비공식 개그맨을 자처했던 박진환 사장. 샤프한 두뇌와 재치 있는 입담을 전가하던 박진환 사장은 정신지체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도 훌륭하게 멘토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됐다. 지난 2일 열린 희망원정대 해단식에서 가장 훌륭한 멘토상을 받고 그 부상으로 엄홍길 대장의 하나밖에 없는 가방을 받기도 했다. 박진환 사장은 김민수씨가 등산을 하면서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 일기를 쓰는 법, 돈을 관리하는 법 등 정신지체인에게 수월치 않은 행동에 대해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박진환 사장은 “가장 늦게 희망원정대에 합류하면서 생각한 건 한가지 밖에 없었다”며 “장애인과 함께 등반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고 이왕 오르는
***▲언젠가 자신의 두 다리로 히말라야를 다시 딛고 싶다는 이윤오(사진 가운데) 대원.원정 3일째(1월 26일)너무나도 좋은 이들과의 산행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서 태국을 거쳐 지금 이곳 네팔에 도착했다. 네팔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해서 들떠있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마냥 행복하고 즐겁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분명히.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로 이뤄진 희망원정대였지만 3일째인 지금, 다들 너무나도 친해졌다. 너무나도 좋은 이들과의 산행. 고달프고 힘든 산행이 되겠지만 지금의 내 기분이 이렇게 좋은 걸 보면 먼 훗날까지 추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래, 이런 기분이라면 죽어도 후회는 없다.’
“히말라야 등반은 힘들겠지만 얻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히말라야 등반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 돌아오겠다는 김민수씨. 히말라야 희망원정대 김민수(28·정신지체2급)씨는 현재 근로복지센터 ‘WE CAN’에서 쿠키를 굽고 포장하는 일을 하고 있다. 활동적인 성격에 열심히 근무하는 모습을 보고 센터 사회복지사들의 추천으로 히말라야에 도전하게 됐다고 한다. 김민수씨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외국에는 처음 나가 본다”고 말하며 희망원정대 대원으로 선정된 것에 대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김민수씨 어머니인 서인석(55)씨는 “처음 히말라야를 간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됐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민수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라 생각해 도전하라
***▲길창덕 옹은 최근 1년사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사진은 지난해 길 옹이 건강했을 때의 모습이다.*8일 데뷔 50주년 ‘꺼벙이 전’ 개최 *개구쟁이 친구 ‘꺼벙이’로 유명한 만화가 길창덕 옹. 서울신문에 한 컷 만화 ‘머지않은 장래의 남녀상’을 게재하며 만화계와의 인연을 맺은지 벌써 50년이다. 경기도 산본의 한 아파트에서 아내와 함께 조용한 삶을 살고 있는 길옹을 만나봤다. 70년대 당시 최고의 히트였던 친근한 캐릭터 ‘꺼벙이’. 꺼벙이에 대해 길옹은 개구쟁이이지만 좋은 일을 하려고 하지만 실수를 연발하는 밉지않은 캐릭터라고 얘기한다. 꺼벙이 제작 당시 순악질여사 등을 각종 언론매체에 연재하다보니 매일매일 작업의 연속인 나날을 보냈던 길옹. 그 당시를 생각하면 특별히 어려운 점은